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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조용해진 밤에 읽기 적당하군요. 「민들레광장」 김종대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왜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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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뿐한소리 112.♡.214.72
작성일 2024.12.1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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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속보 보느라 뭘 차분히 읽기 어려운데 약간 뜸해진 시간이라 딱 머릿속을 정리하기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올립니다.


원문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55



작전개시시간(H아워) 뜻 이해 못한 윤과 김용현

불분명한 명령으로 출동시간 늦어진 주력부대

시민들 저항 앞에 부끄러워 머뭇거린 쿠데타군

계엄상황 대비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던 민주당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쿠데타였다. 한국 현대사에서 5·16이나 12·12처럼 성공한 쿠데타는 있어도 실패한 쿠데타는 없었다. 이전의 쿠데타는 기존의 지배권력을 파괴하는 ‘전복형 쿠데타’였다. 이런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최대한 많은 무력을 기습적으로 동원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유혈사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제압해야 할 대상도 많았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그렇게 어려운 군사 계획을 대담하게 실행하였고 또한 성공했다. 반면 2024년의 12·3 쿠데타는 ‘친위 쿠데타’다. 이런 쿠데타는 기존의 지배권력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쿠데타군이 상대해야 할 무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규모 군대만 동원해도 충분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명령하고 국방부 장관이 실행을 하는데 어떤 방해 세력이 나서서 막겠는가.

오만과 환상으로 H아워 이해하지 못했던 윤석열 일당

바로 이 점이 12월 3일의 밤, 윤석열과 김용현이 내란을 도모하던 시점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날 군사 쿠데타의 목표는 단 하나, 국회 무력화였다. 정해진 시간에 쿠데타군이 국회만 점령하면 끝나는 일이었고, 나머지 정치적·법적 문제들이야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 정해진 시간에 계엄군이 국회를 장악하여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차단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그 일이 일어나던 밤, 어쩌면 윤석열과 김용현은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국회 점령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질 국민들의 저항을 더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쿠데타가 처참하게 실패했다.

문제는 시간(timing)이었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이 쿠데타의 개시 시점, 군사 용어로 H-Hour를 이해하지 못했다. 밤 11시가 계엄이 선포되는 H아워라면 대통령의 담화는 정확히 11시에 끝나야 하며, 그 마지막 문장 “현 시간부로 계엄을 선포한다”여야 했다. 그런데 밤 10시 23분에 시작된 윤석열 담화는 27분 경에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이어지다가 30분경에 끝났다. 이로부터 30분 간의 공백이 문제였다. 담화를 접한 민주당이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시간이 10시 42분, 피를 말리는 시간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에 김용현이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소집한 시간이 10시 43분이었다. 민주당은 이미 국회로 달려가고 있는데 군이 지휘관 회의를 그제서야 소집했다는 거다. 11시의 계엄 발령 이전인 10시 47분에 민주당이 먼저 계엄 무효를 선언하고 나서고 이에 한동훈 대표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밤 11시에야 계엄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고 계엄사 포고문 1호는 그로부터 30분이 더 지난 11시 30분에야 발표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 상공을 군 헬기가 비행하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 상공을 군 헬기가 비행하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 상공을 군 헬기가 비행하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분명치 않은 작전명령에 우왕좌왕한 주력부대

밤 11시가 H아워라면 특전사령부의 예하 1공수·9공수와 707 특수임무부대는 11시까지 국회를 점령해야 했다. 실제로 그날 저녁 7시부터 특전사 계엄부대는 이미 출동 대기 상태였다. 8시경에 다소 눈발이 날리는 악화된 기상으로 인해 헬기 출동 준비가 해제되고 있었다. 이날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저녁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특전항공대와 출동 대기 중인 부대는 단지 야간훈련 상황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기상 악화로 훈련이 취소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출동은 해제될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자 밤 8시에 재차 출동 준비 지시가 내려와 퇴근하던 부대원들을 다시 대기시켰다. 이 무렵부터 부대원들 사이에는 무언가 실제 상황이 있는 것 같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에 어떤 상황이 발생했거나, 무장 탈영 사건이 터졌거나, 그도 아니면 계엄 상황이 아니냐는 거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대통령 담화가 끝난 10시 30분경에 곽 사령관이 계엄부대의 헬기 출동을 지시하였는데 정작 특전항공대는 기상이 여의치 않아 위험한 야간 비행이라며 준비 중이라고만 했다. 이에 곽 사령관이 엄청 화를 내면서 재촉을 하자 밤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헬기는 출동을 할 수 있었다. 결국 H아워를 놓친 계엄군은 11시 48분이 되어서야 국회에 도착했는데, 이때는 이미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국회에 진입을 한 상태였다. 이 어설픈 출동에 화가 난 윤석열은 계엄군이 헬기로 이동하는 중에 곽 사령관에게 전화를 하여 출동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에 이른다. 한편 출동이 더 늦어진 3공수의 경우에는 12시가 넘어 헬기 출동을 하다가 국회 상황이 여의치 않자 공중에서 회항을 해버렸다. 곽 사령관은 원래 707 특임부대로 밤 11시에 의사당 점령을 끝내고 당일에 3공수를 추가로 국회로 출동시키고, 그 다음날에는 전북의 7공수, 충북의 13공수를 차례로 투입할 계획이었다.

계엄 대비했던 민주당, 분노와 증오로 분별력 잃었던 윤석열

계엄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야당은 어떻게 사간과의 싸움에서 윤석열과 김용현을 이길 수 있었을까. 오래 전부터 계엄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경고가 있었고 이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전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윤석열이 계엄을 발표하는 장면에 너무 충격을 받아 허둥지둥했을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윤석열 담화가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의원 소집명령을 전파시키고 실제로 국회에 도착해서 허술한 경찰의 봉쇄를 뚫고 국회에 진입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개시할 수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즉각적인 감각, 이것이 없었더라면 경계도 느슨했을 것이고, 대응도 느렸을 거다.

계엄이 선포되고 두 시간 만인 새벽 1시에 질서 있게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이는 쿠데타를 결행하는 측보다 쿠데타를 막는 측이 더 용기와 대담성에서 앞서 있었고 또한 냉철했기 때문이다. H아워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윤석열은 권력의 오만으로 사태를 진단하고 판단하는 지혜와 분별력을 잃었다. “국회를 다 쓸어버려라”는 윤석열은 분노와 증오에 불타고 있었지만 무능력했고 몹시 흥분해서 도무지 계엄을 지도할 자질이 아니었다. 사태가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은 특전사령관과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전화하여 자신이 직접 군을 지휘하려고 했지만 이는 윤석열 자신이 내란 수괴라는 치명적 증거를 남기고 말았다. 그 이전에 조태용 국정원장이 아닌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한 것도 스스로 증거를 남긴 잘못된 행동이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4일 오전 국회 앞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다. 2024.12.4. 민들레 이명재 에디터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4일 오전 국회 앞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다. 2024.12.4. 민들레 이명재 에디터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4일 오전 국회 앞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다. 2024.12.4. 민들레 이명재 에디터

민주항쟁의 오랜 역사에서 다져진 시민의 힘

여기에 현장 계엄군이 태업을 했다고 비춰질 만한 지리멸렬한 행동을 하게 한 다른 요인이 있다.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압도적 기세로 계엄군을 저지하려는 시민과 보좌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언의 힘, 여기에 인간 병기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 미세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계엄군의 대오를 무너뜨린 진정한 힘, 그것은 민주항쟁의 오랜 역사에서 다져진 시민의 힘이었다. 이 힘은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군을 움직여 사령관들의 양심선언으로 이어진다.

한편 그 와중에서도 윤석열과 김용현이 명령하면 정당성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맹종형 군인도 있었다. 바로 여인형 방첩사령관이다. 그에게는 쿠테타 실패 이후에도 고뇌가 보이지 않는다. 명령을 수행한 것이 뭐가 잘못이냐는 뻔뻔함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여인형 사령관의 계엄 준비 상황을 부하들이 고발하고 있다.

정작 연구 대상은 김용현이다. 이 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4성 장군 진급이 좌절된 이후 자신의 진급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육사 7년 선배인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골프장에서 만나 면전에서 욕을 퍼부었고 민주당을 저주했다. 애초 민주당에 대한 정치 보복 의도를 갖고 국방부 장관으로 부임한 인물이다. 권력에 한이 맺힌 그는 윤석열을 신처럼 떠받들면서 온갖 아첨과 아부의 기술을 선보였다. 권력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믿음에다가, 의리나 도덕이 정의가 아니라 힘이 곧 정의라고 믿는 극단적 권력 지향성이다.

쿠데타 성공 이후 다른 꿈을 꾸었을지도 모를 망국신(亡國臣) 김용현

어쩌면 그는 쿠데타 이후 다른 야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바로 그런 인물이기에 그가 경호처장이던 시절부터 필자는 여러 방송에서 ‘위험한 인물’이라고 수십 번을 경고했다. “당장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들 끌어내라”고 특전사령관에게 전화한 김용현은 권력 장악에 대한 불타는 야망을 여러 번 드러냈다. 민주화 이후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위험한 인물이다. 어쩌면 윤석열은 김용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제대로 된 합리적 심의 과정도 없이 내란에 경도되었을 수도 있다. 김용현은 단순한 간신 차원을 넘어선 망국신(亡國臣)이다.

대한민국은 폭력이 이성을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을 견뎌냈다. 그 위대한 힘은 민주항쟁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댓글 3 / 1 페이지

콘헤드님의 댓글

작성자 콘헤드 (124.♡.160.101)
작성일 어제 23:24
이 시국에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좋은 글입니다.
49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luminext님의 댓글

작성자 luminext (118.♡.250.163)
작성일 00:07
김종대 전의원 목소리하고 글이 엄청 다르네요.
쭉쭉 잘 읽혀요...
글빨이 훨씬 좋으십니다.
92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사뿐한소리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사뿐한소리 (112.♡.214.72)
작성일 00:13
@luminext님에게 답글 저도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리가 잘 되어야 말도 잘 할 수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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