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광주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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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12.1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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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며 읽어온 많은 글들 중에 가장 잊혀지지 않고 눈물나게 만든 글귀였어요...
"그 날의 광주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방송으로 지켜보고 많은 국민들이 함께 했던 3일의 상황도 두려웠는데 정말 1980년 5월의 광주는 얼마나 공포스럽고 절망적이었을까요... ㅠㅠ
그 때의 희생과 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오늘이 반란군 수괴와 그 패거리들이 박살나고 우리나라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날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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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형광등님의 댓글의 댓글
@음악매거진편집좀님에게 답글
네에,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절망 그 자체였죠...
ㅠㅠ
ㅠㅠ
새벽안개1님의 댓글
[삭제된 댓글입니다]
조형님의 댓글의 댓글
@새벽안개1님에게 답글
사태라는 표현은 폄훼표현입니다.
비상계엄문건에도 사태운운하고 있고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맞는 표현이라고 하네요.
아래는 위키피디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980년 5월 21일에 계엄사령관 이희성이 "광주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라고 군부 발표에서 언급한 것이 처음으로, 이후 신군부와 관변 언론 등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또는 '광주사태' 등으로 보도되면서 일반화되었다.[10][11] 이는 광주 자유 민주화 항쟁을 "불순분자들이 체제 전복을 기도한 사태"로 왜곡한 신군부의 주장에 근거한 호칭으로 제5공화국 기간 내내 사용됐으며, 현재는 당시 호칭에 익숙한 노년층이나 신군부를 지지하는 일부 극우 인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현재의 명칭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 직후인 1988년 3월 24일 노태우 정부 산하 민주화합추진위원회가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면서 나왔다.
비상계엄문건에도 사태운운하고 있고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맞는 표현이라고 하네요.
아래는 위키피디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980년 5월 21일에 계엄사령관 이희성이 "광주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라고 군부 발표에서 언급한 것이 처음으로, 이후 신군부와 관변 언론 등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또는 '광주사태' 등으로 보도되면서 일반화되었다.[10][11] 이는 광주 자유 민주화 항쟁을 "불순분자들이 체제 전복을 기도한 사태"로 왜곡한 신군부의 주장에 근거한 호칭으로 제5공화국 기간 내내 사용됐으며, 현재는 당시 호칭에 익숙한 노년층이나 신군부를 지지하는 일부 극우 인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현재의 명칭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 직후인 1988년 3월 24일 노태우 정부 산하 민주화합추진위원회가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면서 나왔다.
새벽안개1님의 댓글의 댓글
@조형님에게 답글
광주민주민주화 운동이 끝나고도 아주 오랫동안 광주와 전라도는 자유롭지도 못하고 농산물이나 향토제품을 타 지역에 팔아먹지 못했어요, 오랫동안 탄압을 받았는데 ...
슬픈역사 입니다.
수정란을 못 찾아서 다시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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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untnoh1987님의 댓글의 댓글
@새벽안개1님에게 답글
조형님 답글처럼 "광주사태"라는 표현 수정 부탁드립니다...
kes5713님의 댓글
<오월의 사회과학> 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광주, 전라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어마어마한 일을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어 입을 닫았다고 표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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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형광등님의 댓글의 댓글
@말뚱님에게 답글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모두 저 마음일거예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36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음악매거진편집좀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