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골, 10.26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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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이야기는 건조한 관찰에 더한 주관적 느낌일 듯 합니다.

이런 방식의 서술을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기억이 정확한지도 모르겠어요.

어릴 때 기억은 시간과 공간이 막 뒤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 들어가며.

  당시 살던 곳은 시골이지만 깡시골은 아닌 경기도의 흔한 시골이었습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는 읍내쪽으로 2~3km 떨어져 있었고 걸어다녔지요.


  근처에는 군부대가 좀 있었고,

  간혹 군인들이 학교 운동장에 건빵이나 군것질 거리를 한 트럭 싣고 와서 나눠주곤 했죠.


  집에는 TV가 있었고,

  저보다 10살 많은 큰형은 서울에서 신문/우유 배달을 하며 유명 고등학교 장학생으로 있었고,

  한두달에 한번은 집에 와서 동생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저는 즐겁게 듣곤 했었지요.


- 박정희 사망.

  어느 날인가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가 들려왔고,

  저는 별 생각 없었던 것 같아요.


  학교에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대통령 빈소 참배를 하러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빈소는 학교에서 읍내쪽으로 2~3km 쯤 떨어진 곳의

  마을회관 마당 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이미 줄을 서서 걸어왔고,

  순서대로 10명 정도 영정 앞에 세우면 묵념을 하고 반대쪽으로 나오는 식이었는데,

  그런데, 애들 몇몇이 웁니다.

  속으로 "쟤들은 왜 울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 군인들의 반공 교육.

  그렇게 박정희 빈소 참배가 끝나고 얼마인가 날짜가 지났을 때

  학교에 군용트럭이 들이 닥쳐서 강당에 아이들을 모읍니다.

  8mm 영사기로 전쟁 영화를 틀어주거나,

  대장쯤 되는 사람들이 불순분자 어쩌고 연설을 하거나 하더군요.


  전쟁영화는 그냥 저냥 봐줄만 했고요,

  대장 연설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남아있지 않군요.

  집에 가고 싶은데, 집에좀 보내주지…


  그렇게 몇번인가 비슷한 행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때로는 마을 주민도 모아서 비슷한 걸 보여주고, 연설하고, …


- 정리

  그런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있네요.

  저는 박정희가 독재자인 걸 알고 있었습니다. 

  (왜지?, 저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게, 박정희의 사망에 대해 별 감정이 없었고,

  우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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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BonJovi님의 댓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박정희가 죽은 것과 온 동네 사람들이 반장의 강요로 모두 회관에 모여서 곡을 하는 것과의 상관관계가 전혀 매칭이 되지 않았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Java님의 댓글의 댓글

@BonJovi님에게 답글 몰라서 그랬겠죠~
그 당시만 해도 가부장제 사회였고, 군사부일체니 하던 시대였으니 말이죠.

으뜸원님의 댓글

저는 남영동에 살았었는데 우리집 앞으로 (대로변이 집 ㅡ.ㅡ) 박정희 꽃차가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이 니가 네살때인데 어떻게 그게 기억나냐? 라고 했었는데 제가 주황색 빨래줄을 잡고있었던것도 기억난다고 하니, ㅎㄷㄷ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게 맞다고 인정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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