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나의 80년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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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를 아끼세요 후~ 후~ 후~"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 이 켐페인 광고는, 같은 80년대를 공유하는 세대에게는 어떤 세뇌 같은 것이 되어있는 것 같다. 결이 비슷한 켐페인으로는 인구 폭발과 식량 위기, 들어보면 다들 기억하실 멜더스의 인구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 당시 노잼 KBS 에서 특집 다큐로까지 편성했던 식량 위기 특집이 기억나실 것이다. 인도에서는 1루피 짜리 빈대떡같이 생긴 아침식사 크기를 가지고 노점상이랑 소비자랑 주먹다짐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무척 쇼킹했다. 석유 파동의 여파, 그리고 이란 회교 혁명 (그 당시 뉴스에는 호메이니 이름 뒤에 꼭 '옹' 자를 붙여서 호메이니옹 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 이름이 호메이니옹인 줄 알았다.) 으로 유가는 진정될 줄 몰랐고, 게다가 앞으로 20년이면 지구상에 기름이 바닥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이론을 펼쳐댔다.

몰론 우리집은 새마을 보일러를 땠다. 화덕 세 개 짜리 3층 연탄 보일러는 난방 성능이 지지리도 별로였다. 게다가, 불완전 연소로 발생된 일산화탄소 연탄가스로 우리 형제는 죽을 위기를 넘기고, 깨질 듯한 머리를 동치미 국물로 달래야 했다. 누가 그랬던가, 연탄가스 마셔서 생긴 두통에는 동치미 국물이 최고란다.

아무튼, 그렇게 물자 절약을 부르짖는 사회 분위기와는 반대로, 세상은 점점 더 에너지를 펑펑 써 대는 시대가 도래했다. 칼라 테레비 방송이 시작되었고, 이듬해에는 아침 방송도 시작했다. 슬슬 부잣집 녀석들 집에 비디오 샀다고 자랑하는 놈들이 늘어났고, 자동차 운전면허 따려는 남여노소가 시험장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그 시절 즈음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셨다.

연일 방송에서는 불경기네 절약이네 떠들어 댔지만, 사회는 점점 더 느슨해 갔다. 불경기와 호황기가 공존하는 이 요상한 사회가 80년대였지 않았을까?

아직 해외 여행은 쉽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래 저래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은 귀국길에 한결같이 '코끼리 밥통' 을 사 갖고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90년도 즈음에 잡지에 기고된 관련 내용이 있었는데,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 가전회사 대표들을 불러다가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면전에서 "밥통도 하나 못 만드는 밥통같은 새X들" 이라는 욕을 했다는 후문을 전했다. 아 고마워라 XXX


댓글 2

도미에님의 댓글

호메이니옹에 딸려오는 팔레비옹~~
당시 소년중앙.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생활. 소녀생활 등에 단골로 나왔던 뉴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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