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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대학원은 언제부터 사람을 서브에이전트처럼 굴렸나
지나가던행인이

Lv.1 지나가던행인이 (61.♡.201.240)

2026년 6월 1일 PM 09:09

조회 1,749 공감 0

AI당 프로잡담러입니다. 🥲 초저녁에 한잔하고 자려다가 문득 또(!) 잡생각에 나불거려봅니다. 참고로 전 지잡대학부 - 일본지잡대(나름 제국대) 대학원 출신입니디. 물론 공부는 못했고 안하고 싶기도 했었지만 주변에 흔히 보시는 운이 좋아 학업으로는 실패하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 주위 선후배동료들 얘길 들어보면 왜 이런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아더월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늘 그렇듯 긴글주의 부탁드립니다 🙏


AI 에이전트를 여러 개 띄워놓고 작업을 시키다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코드를 짜고, 하나는 리뷰를 하고, 하나는 문서를 정리하고, 하나는 반례를 찾고, 하나는 테스트 실패 원인을 분석합니다. 저는 그 결과를 보고 다시 지시합니다.

근거가 부족한데요. 그건 다른 에이전트한테도 물어보죠. 이 부분은 다시 검토하세요. 초안은 괜찮은데 구조가 약합니다. 테스트 돌리고 실패 원인 정리해 오세요.

처음에는 그냥 AI 시대의 개발 워크플로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익숙했습니다. 이거 대학원 연구실 아닌가. 교수가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일을 나눠주고, 선행 연구 찾아오라고 하고, 실험 돌리라고 하고, 논문 초안 써오라고 하고, 랩미팅에서 탈탈 털고, 다시 해오라고 하는 그 구조 말입니다.

웃으려고 꺼낸 비유였는데 생각할수록 안 웃겼습니다. AI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최신 기술의 표면 아래에서 오래된 연구실 구조가 그대로 비쳤기 때문입니다.

먼저 선을 긋습니다

이건 교수 혐오가 아닙니다. 학생을 동료 연구자로 대하고 지적 성장을 돕는 지도교수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분은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다만 좋은 지도교수의 존재가 대학원이라는 제도 안에 반복되는 권력 비대칭을 지워주지는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으면 좋은 연구실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충분히 성찰하지 못한 사람이 과도한 권한을 쥐면 연구실은 쉽게 작은 왕국이 됩니다. 개인의 인성으로 결과가 갈리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뜻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야만 착취를 피할 수 있는 구조라면, 그건 구조가 잘못된 겁니다.

그러니 이 글이 겨누는 건 교수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 직함이 가능하게 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입니다.

대학원은 지식을 가르쳤나, 권력 사용법을 가르쳤나

대학원은 지식 생산의 공간입니다. 논문을 읽고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듭니다. 좋은 의미에서 가장 밀도 높은 배움의 장소일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의 대학원은 동시에 노동 조직입니다. 과제 보고서, 실험, 코드 작성, 데이터 정리, 논문 초안, 학회 준비, 연구실 행정, 후배 지도, 때로는 교수의 잡무까지. 이 많은 일이 수련, 지도, 성장, 연구 경험이라는 말 아래 묶입니다. 말은 고상한데 구조를 뜯어보면 다른 게 보입니다.

교수는 지도자이면서 평가자입니다. 졸업을 승인하고, 추천서를 쓰고, 논문 저자 순서에 영향을 미치고, 연구비를 따오고, 과제를 배분하고, 연구실 자원을 통제합니다. 반면 대학원생은 배우는 사람이면서 연구 노동자인데,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의 조건을 협상할 힘은 약합니다.

회사라면 싫으면 퇴사한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만두면 관계가 끝납니다. 대학원은 더 교묘합니다. 나가면 몇 년의 시간과 논문과 학위와 커리어 경로가 함께 흔들립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은 월급이 아닙니다.

학위입니다.

학위가 인질이 되는 순간 학생은 연구자가 아니라 졸업 승인 대기 중인 고숙련 노동자가 됩니다.

끌려가는 게 아니라 영업당합니다

대학원생은 보통 강제로 끌려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업당합니다.

너는 연구에 소질이 있다. 같이 좋은 논문 써보자. 박사까지 하면 길이 열린다. 우리 연구실에 오면 많이 배운다. 네가 하면 잘할 것 같다.

입학 전에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입학 후에는 과제가 쌓입니다. 처음에는 연구를 말하고 나중에는 보고서와 일정과 실험과 논문 실적이 남습니다.

모든 연구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적지 않은 곳에서 이 구조가 반복되고, 학위라는 탈출 비용이 커질수록 학생은 버티는 쪽으로 몰립니다. 그 안에서 지도와 노동 통제의 경계가 흐려지고, 성장과 착취의 경계가 흐려지고, 공동 연구와 공로 가로채기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경계가 흐려진다는 게 핵심입니다. 명백한 착취라면 차라리 빠져나오기 쉽습니다. 문제는 그게 지도라는 이름을, 수련이라는 이름을, 학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름이 정확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어렵습니다. 착취가 고상한 단어를 입으면 당하는 사람도 그게 착취인지 한참 뒤에야 압니다.

배운 것은 연구 방법만이 아닙니다

씁쓸한 지점은 여기입니다. 일부 교수는 자신이 대학원에서 겪은 구조를 성찰하지 못한 채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반복합니다.

박사 과정에서 배운 게 연구 방법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권력 쓰는 법, 침묵하게 만드는 법, 버티게 만드는 법, 공은 위로 올리고 책임은 아래로 내리는 법도 같이 배웁니다. 그리고 일부는 그걸 그대로 답습합니다. 학문을 한다는 사람이 자기가 속한 구조는 보지 못하고, 학생에게는 비판적 사고를 말하면서 정작 자기 연구실의 권력 구조에는 둔감합니다.

교수라는 직함은 지식의 이름을 빌립니다. 그래서 그 권력은 더 잘 가려집니다. 돈이나 지위로 행사되는 권력은 그나마 눈에 보이는데, 학문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은 권력으로 안 보입니다. 가장 안 보이는 권력이 가장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서브에이전트처럼 굴리던 시대

AI 에이전트를 굴리며 느낀 기시감은 여기서 옵니다.

저는 에이전트에게 일을 나눕니다. 하나에게 구현을 맡기고, 하나에게 리뷰를 맡기고, 하나에게 선행 자료를 찾게 하고, 하나에게 실패 원인을 분석하게 합니다. 결과가 이상하면 다시 시키고, 근거가 없으면 근거를 요구하고, 서로 다른 에이전트에게 같은 문제를 던져 교차 검증합니다.

이 구조가 너무 연구실 같았습니다. 교수도 모든 실험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나누고, 학생에게 맡기고, 결과를 검토합니다. 좋은 교수는 이 과정에서 학생을 성장시키고, 나쁜 교수는 이 구조로 학생을 소모합니다. AI 오케스트레이션은 그 구조를 기술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이 아닙니다. 학위가 필요 없고, 졸업을 기다리지 않고, 추천서가 필요 없고, 밤에 호출해도 되고, 틀리면 다시 시켜도 되고, 마음에 안 들면 끄면 됩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웃기면서 씁쓸합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서브에이전트처럼 굴려졌는데, 이제는 진짜 서브에이전트를 굴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지식 생산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었습니다

근대 과학의 역사는 흔히 천재들의 역사로 쓰입니다. 몇몇 이름이 앞에 서고 나머지는 지워집니다. 그런데 지식 생산은 한 번도 혼자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조수, 제자, 기술자, 계산원, 실험 노동자의 노동이 늘 있었습니다.

이건 감상적인 주장이 아니라 과학사의 연구 영역입니다. 1989년 스티븐 셰이핀이 「보이지 않는 기술자(The Invisible Technician)」라는 논문에서 17세기 실험실의 이름 없는 조수들을 다룬 이후로, 과학사 연구는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꾸준히 추적해왔습니다. 실험을 실제로 수행한 손, 데이터를 계산한 사람, 표본을 관리한 기술자. 이들의 노동은 논문에 이름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위로 올라가고 반복 노동은 아래에 남았고, 명예는 위로 올라가고 실패와 야근은 아래에 남았습니다.

현대 대학원은 그 오래된 구조를 학위, 논문, 연구비, 추천서, 저자성이라는 제도와 결합해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니 AI 에이전트에서 연구실이 떠오른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식 생산은 늘 작업을 나누고 결과를 검토하고 반복하게 만드는 구조를 필요로 했습니다. 문제는 그 구조 안에서 누가 권한을 갖고 누가 노동하며 누가 공을 가져가고 누가 책임을 지느냐였습니다.

결국 이것도 비대칭의 문제입니다. 지도라는 이름의 권한, 수련이라는 이름의 노동, 성장이라는 이름의 인내, 공동 연구라는 이름의 저자성 비대칭, 학문이라는 이름의 침묵. 이 말들이 쌓이면 착취는 꽤 고상한 얼굴을 합니다.

대학원은 원래 인간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이었습니다

처음에는 AI 에이전트가 대학원생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방향이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AI 에이전트가 대학원생처럼 보인 게 아닙니다.

대학원생이 원래부터 지식 생산 시스템 안에서 에이전트처럼 호출되고, 배치되고, 평가되고, 소모되어 왔던 겁니다.

AI 오케스트레이션이 대학원 연구실을 흉내 낸 것이 아닙니다. 대학원 연구실이 원래 인간으로 만든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이었습니다. 문제를 쪼개고, 하위 작업자를 호출하고, 결과를 평가하고, 다시 시키고, 최종 판단은 위에서 내리는 구조. 이 구조는 연구실에도 있었고 회사에도 있었고 지금은 AI 오케스트레이션에도 있습니다.

차이는 하위 작업자가 사람이냐, 소프트웨어냐입니다.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AI는 성장을 가져갈 필요가 없으니 소모해도 윤리적 문제가 없습니다. 그 점에서 이 전환은 사람을 갈아 넣던 자리에서 사람을 빼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질문이 한 단계 위로 올라옵니다.

우리는 비대칭을 없앤 걸까요, 아니면 비대칭의 대상을 바꾼 걸까요.

사람에게 시키던 방식을 그대로 AI에게 시키고 있다면, 우리는 지식노동의 구조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구조에 새로운 하위 작업자를 끼워 넣은 것입니다.

기술이 오래된 구조를 비춥니다

AI 에이전트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쓰다 보면 오래된 구조가 다시 보입니다. 기술의 미래를 들여다보다가 지식 생산의 과거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처음으로 에이전트를 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사람을 에이전트처럼 굴려왔고, 그 일을 수련과 지도와 성장이라는 말로 불러왔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대학원 구조는 지식 생산의 필연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이 도구처럼 취급된 결과였을까요. 둘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하위 작업자가 결과물만이 아니라 성장도 가져가느냐, 아니면 결과물만 위로 올려보내고 소모되느냐.

좋은 연구실은 전자였고, 나쁜 연구실은 후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든 건 기술이 아니라 권한을 쥔 사람의 자세였습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AI를 굴리게 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윗자리에 서는 경험을 대규모로 하게 됐습니다. 문제를 쪼개 던지고, 결과를 평가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시키는 그 자리 말입니다. 사람을 상대로는 죄책감 때문에 못 하던 일을, AI를 상대로는 마음껏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익힌 자세는 몸에 남습니다.

기술은 사람을 갈아 넣던 자리에서 사람을 빼냈지만, 윗자리에 서는 사람의 자세까지 바꿔주지는 않습니다. 그건 여전히 각자의 몫입니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방식이 결국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방식을 비춥니다. 하위 작업자를 소모품으로 다루는 손에 익으면, 그 손은 상대가 사람으로 바뀌어도 똑같이 움직입니다.

좋은 은사는 여전히 존재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좋은 은사의 존재가 나쁜 구조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좋은 은사를 만든 건 제도가 아니라, 윗자리에 서고도 아랫사람을 소모하지 않기로 한 개인의 선택이었습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래 가려져 있던 권력의 작동을, 사람이 아닌 에이전트를 굴리게 된 지금에서야 똑바로 보게 됐습니다. 이제 봤으니, 어떤 자세로 그 자리에 설지는 우리가 정할 차례입니다. 사람에게든, 에이전트에게든.

댓글 (16)

  • 야생곰

    야생곰 Lv.1

    06.01 · 220.♡.181.26

    저도 회사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ERP가 없는 중소기업이라 다른 담당한테 "해줘"를 하게 되는데말이죠...

    xx씨, 작년 매출자료에서 oo사 12월 매출좀 주세요.

    xx씨, 회의 자료 정리해서 메일로 공유 해주세요.

    oo씨, 이번 달에 납품된 제품 중에 yy제품은 언제 들어온거에요?

    이거 잘생각해보니 제미나이나 챗gpt한테 시키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지나가던행인이

    지나가던행인이 Lv.1 → 야생곰 작성자

    06.01 · 61.♡.201.240

    협업의 영역으로 보입니다! ㅎㅎ

  • 도깨비방뫙

    도깨비방뫙 Lv.1

    06.01 · 222.♡.161.205

    본래 기계는 인간의 위험한 역할을 대체하면서 해방시켜온 온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지요.

    각종 위험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게되었듯이... 이제 대학원생이 구원받을 차례가 된 것 아닐까요?!

  • 지나가던행인이

    지나가던행인이 Lv.1 → 도깨비방뫙 작성자

    06.01 · 61.♡.201.240

    이른바 산업혁명이군요 🤯 그리고 모든 랩에는 천국이 없습니다. 🥲

  • 겨자나무

    겨자나무 Lv.1

    06.01 · 211.♡.125.204

    좋은 생각할꺼리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슈퍼 갑이 되면 모두 행복할까요? 기계에게 명령 내리는 게 너무 익숙해지면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겠습니다. 전에는 아주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그랬다면, 나중엔 안타깝지만 소수의 사람만 그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다.
    AI 시대의 새로운 윤리학, 인공지능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지 고민하는 좋은 실마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 지나가던행인이

    지나가던행인이 Lv.1 → 겨자나무 작성자

    06.01 · 61.♡.201.240

    모두가 슈퍼 될 수 없는 구조적 비대칭이 더 아쉽죠 이미 llm이란 도구를 통한 양극화는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아직은 정말 인공인 지능까진 아니라 막할 수 있지만 대비는 해야되는건 맞지 싶습니다 🤯🤯🤯

  • YBman

    YBman Lv.1

    06.01 · 211.♡.3.119

    저는 대학원 생활을 해본적이 없고 구경해본 적도 없는데도, chatGPT 처음 사용할 때, 똘똘한 대학원생 한 명 데리고 일하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부터 알려주고 달래고 해야했죠. 요즘 AI agent를 쓰다보면 명령만 내리면 알아서 쭉쭉(오토모드) 해내려가고 뭔가 막히거나 결과가 나오면 쪼로로 들고오는 모습이 조교(?)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정이 들어서... local llm도 잘 못끄겠더라구요..ㅎㅎ

  • 지나가던행인이

    지나가던행인이 Lv.1 → YBman 작성자

    06.02 · 61.♡.201.240

    조교님들 술도 먹이고 밥도 먹이고 해야 더 잘하지 않겠습니까? ㅎㅎ

  • 규링

    규링 Lv.1

    06.02 · 170.♡.228.34

    정말 돈걱정 없는, 혹은 여유가 좀 많은 분들은 교육적 관점으로 해주시는 분들이 좀 많더군요.

    연구 과제 따서 그 안에 업무 분할하고 하면서 배우는 것도, 새로 알아낸 것도 있겠지만

    돈이 좀 오고가고 하면 갑질이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게 되기도 하고요.

    참 쉽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나가던행인이

    지나가던행인이 Lv.1 → 규링 작성자

    06.02 · 61.♡.201.240

    랩바랩이긴한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맞는거 같아요. 마치 군대 부조리처럼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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