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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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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얀후니 119.♡.162.151
작성일 2024.07.04 00:38
1,648 조회
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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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변호사를 이 와중에서 여러 번 만날 뻔했다. 그러다가 직접 대면한 것은 1987년 한여름이었다. 나는 1987년 6월민주항쟁을 기획한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이었고, 노무현 변호사 역시 국민운동본부의 부산지부 상임집행위원장이었다. 6·29선언으로 인해 나는 짧은 징역을 굿바이하고 감옥 문을 박차고 나온 직후, 노동자를 선동한 죄로 구속된 그를 면회하러 마산으로 갔다.


유치장 쇠창살 너머로 씨익 웃는 노무현을 처음 보았다. 흡사 못줄 잡고 모내기하다가 막걸리 한 사발 하러 논둑으로 뚜벅뚜벅 마악 걸어 나온 젊은 농부처럼 보였다. 유난히 숱 많은 시커먼 더벅머리, 그을린 얼굴로부터 막강 포스가 건너옴을 느꼈다.

몸이 움칫 떨렸다. 돌아 나오며 동행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간사인 최민희에게 물었다.


“저 사람 진짜 변호사 맞아?”


그리고 1988년 국회의원 노무현이 5공청문회에서 장세동과 정주영에게 숨 가쁘게 질의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흔들리고 눈물이 맺힌 것은 그때가 유일하다.


(중략)


그리고 가슴 에는 일은 그와의 마지막 악수이다.

2009년 4월 30일 오전 8시경.

그는 검찰에 출두하기 위해 봉하의 집을 나섰다. 나는 어쩌다 그 자리에 20여 명과 함께 있었다. 사면초가에 둘러싸인 그의 몸은 여위었고 흰머리가 부쩍 늘어 있었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 잠시 뒤돌아보더니 내게 말했다.


“날 위로해 주느라고 좀 억지를 쓰셨더라.”


내가 일전에 한 인터넷 매체에 쓴 글을 읽으셨던 듯했다. 나는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가까 이서 본 그는 더 초췌해 보였다. 왜 그때 말해 드리지 못했을까?

당신이 계셔서 못난이들이 잠시나마 마음대로 활개치고 살았노라고.

 

나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자유, 정의, 인권,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일렁인다.

노무현 이름을 들어도 그러하다.

그에게서 희랍 비극의 원형을 본다.

제왕이나 천재가 주어진 거대한 운명에 맞서다가 장렬하게 산화하는 비극으로부터 인간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인권’을 열 걸음쯤 나아가게 한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라기보다 시인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는 봉하에 있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또한 인디언의 구전 시를 빌리고자 한다.


“바람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 <그가 그립다>, 유시민외21명 지음 - 밀리의 서재 

댓글 4 / 1 페이지

하얀후니님의 댓글

작성자 하얀후니 (119.♡.162.151)
작성일 07.04 00:41
글에 언급된 최민희 간사님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입니다.

하얀후니님의 댓글

작성자 하얀후니 (119.♡.162.151)
작성일 07.04 00:55
노무현 대통령이 하신 말 “날 위로해 주느라고 좀 억지를 쓰셨더라.”  가 어떤 글인지 찾았습니다.

https://opinion.azoomma.com/Column/view.htm?main_idx=132&sub_idx=630

삐딲썬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삐딲썬 (172.♡.54.252)
작성일 07.04 06:03
@하얀후니님에게 답글 수고에 감사드려요

유리멘탈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유리멘탈 (203.♡.43.193)
작성일 07.04 07:49
그 때 이후 우리나라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뒤쳐지고 있죠.
몹시도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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