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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의 신존재증명, 불교학의 발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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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ymaxion 211.♡.249.184
작성일 2024.05.06 22:56
80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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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서양 철학의 발전과정을 보면,
논리학, 수학 그리고 언어학에 관한 지식들이 많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칸트도 그렇고 러셀도 그렇고 비트겐슈타인도 그렇고요.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를 폈는지, 너무 난해해서 저도 내용을 이해는 못하고 있지만요.)
암튼 그런 과정에서 나온 재미있는 논증 중에서,
괴델의 신존재증명이 있던데
어떤 분이 개인 블로그에서 수리논리학 기호로 그걸 위 그림과 같이 요약을 해 주셨더군요.

Ref :

무슨 외계인 문자 같네요.
해설을 읽어보니, 공리(Ax) 5개랑 정의(Df) 3개를 토대로 정리(Thorem) 4개를 도출했고, 제일 마지막 정리가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에 도달한 거라고 하네요.
뭔 소린지 모르겠어서 말로 풀어서 요약한 걸 보면...

"모든 긍정성을 가진 존재 = 신" 이라고 신을 정의를 일단 하고
이 정의를 만족하는 대상이 존재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대상 즉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라고 합니다.

​Ref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25647
뭐 암튼 수리논리적으로 신이 존재한다고 하네요.

반론으로는, '신' 대신 '절대 악' 같은걸 넣어도 똑같이 증명된다는 함정이 있다는 것이 지적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암튼 이런 사례를 보면,
서양 철학의 접근 방법이 매력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편, 불교를 보면...
불교학의 최고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원효의 '금강감매경론'을 잠시 보면,
(역시 너무 난해해서 뭔 소린지는 저도 잘 모름)
내용이 대충 어떤 단어나 체계를 먼저 소개하고, 그게 뭔 뜻인지 예를 들거나 다른 거랑 비교해서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하는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첫 구절을 보면...

일심(-心)의 근원은 유(有)·무(無)를 떠나 독자적으로 청정하며 3공(空)의 바다는 진(眞)·속(俗)을 융합하여 밝고 고요하다.
밝고 고요하다는 것은 둘을 융합했다고 해서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니요,
독자적으로 청정하다는 것은 양 극[邊]을 여의었다해서 중간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중간도 아니며 양극도 여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법[不有之法]이라 해서 무(無)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없지 않다[不無之相]해서 유(有)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Ref : https://abc.dongguk.edu/ebti/c2/sub2_pop_ls.jsp?nbooknum=286&startpage=0&endpage=263

일단 사용되는 개념들, 즉 '일심', '밝고 고요하다', '독자적으로 청정하다', '존재하지 않는 법', '모양이 없지 않다' 등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불교 한문 논설이 그러하듯 너무 간략하게 문장들이 쓰여져 있어서 이것만 봐서는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참선만 열심히 한다고 갑자기 이해가 팍팍 되고 그럴 것 같지도 않단 말이죠.
그래서 원효의 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서양식 수리논리학 같은걸 도입해서 연구하는 분야도 생기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동서양의 학문적 통섭이나 융합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점
고대,중세 불교의 표현 방법에 대한 현대적 방법론의 해석이 거의 없다는 점
불교 이론(교학/철학)의 발전이 사실상 정체상태로 1천년 이상 지난 것 아닌가 하는 점
입니다.

물론 종교로써 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은 이래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문이나 철학의 한 분야로써 불교를 대하는 학자라면, 이런 방법론을 시도해 볼 만 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그러면 AGI(일반인공지능)의 출현 이전에 어느정도 대비가 될 수도 있을 거고요.

불교철학을 공부하는 분들 중에 수학에 능한 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런 시도가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일 거라고 추측됩니다.
또 이공계 쪽의 학문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노년이 되어서 동양철학이나 불교철학에 빠진 분들이 종종 있던데, 그분들이 쓴 글들을 보면 대부분 불교철학과 현대물리학의 우연적인 유사성을 보고 감탄하다 끝나는 수준이더군요.
심각하게 각잡고 파고들 생각을 하는 학자가 하나도 없다는게 오히려 놀랍습니다.

오늘 종교 이야기가 여러개 올라오길래,
저는 불교 쪽에 관심이 있는 축이라서 든 생각이라서 단상을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그럼 당신이 직접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쿠르트 괴델이 아닙니다.
그정도급 천재 학자가 이런 식의 아이디어에 꽂혀서 업적을 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댓글 11 / 1 페이지

WindBlade님의 댓글

작성자 WindBlade (82.♡.57.138)
작성일 05.06 23:02
신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존재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소위 말하는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냥 태초의 아무것도 없는 공허에서 빅뱅으로 인해서 우주가 탄생이 되었는데 그런 빅뱅을 탄생시킨 계기(?) 또는 의지(?) 같은걸 그나마 신이라고 칭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Dymaxion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Dymaxion (211.♡.249.184)
작성일 05.06 23:04
@WindBlade님에게 답글 넹 저도 고전물리학 신자라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철학은 자연과학적 방법론보다 좀 더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도록 범위가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발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이 아니고 철학 관점에서 써 본 글이에요.
그리고 동양철학도 서양철학적 방법론 즉 논리학 같은걸로 해석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단순히 신은 없을 것 같다, 신을 뭐라고 정의해야 하느냐 이런 합의가 일치되지 않은거 아니냐 등등 좀 막연하고 엉성한 논설들로는 성에 차지가 않더군요.

Bcoder™님의 댓글

작성자 Bcoder™ (221.♡.162.27)
작성일 05.06 23:02
괴델의 증명은 불가지론 아닌가요. 신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는 공리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수학에서 공리가 종교의 도그마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Dymaxion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Dymaxion (211.♡.249.184)
작성일 05.06 23:07
@Bcoder™님에게 답글 괴델 자신은 유신론자였다고 하더라고요.

Bcoder™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Bcoder™ (221.♡.162.27)
작성일 05.06 23:09
@Dymaxion님에게 답글 코페르니쿠스부터 시작해 뉴턴 다윈 모조리 유신론자인 것도 흥미롭죠. 피상적 이해지만 천재들이 품고있던 신의 정의는 조금씩 달랐던 것 같습니다.

Dymaxion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Dymaxion (211.♡.249.184)
작성일 05.06 23:15
@Bcoder™님에게 답글 네, 그런 고민을 하면서 계속 발전해 온게 서양 철학, 과학인 것 같아요.
신이 존재하든 안하든 우리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전혀 없는 글자 그대로 철저한 지적 유희에 가깝지만, 이런 순수 학문에 대한 고민들이 쌓여온게 거대한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0sRacco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0sRacco (210.♡.160.234)
작성일 05.06 23:29
저는 에피쿠로스의 말에 동의합니다.

PINECASTL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INECASTLE (39.♡.79.180)
작성일 05.06 23:37
@0sRacco님에게 답글 비슷한 걸 여러 번 생각해본 적 있는데, 신이 전능하든 혹은 반만 그러하든 간에 인간을 만들어놓고 지켜보기만 한다면 굳이 인간을 만들지 않아도 비슷한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하나와 만약 그 인간이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나오는 질문처럼 만든 신을 능가하게 되면 계속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때에 가서야 뭔가 압박이나 제한을 가할 것인가? 라는 걸요.

솔직히 뭘 생각해도 딱히 이거다 할 답은 없고, 현세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공기같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네요.

0sRacco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0sRacco (210.♡.160.234)
작성일 05.06 23:49
@PINECASTLE님에게 답글 저는 신이 있기는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현세에 간섭한다고 봅니다.
학폭에 시달리는 지옥같은 날을 피하려 투신을 했을 때 여지 없이 중력의 힘으로 온몬이 바스라지게 만드는 것. 그 가족이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게 만드는 것. 그리고 별다른 태클이 없으면 가해자는 멀쩡히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고 죽게 만드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오차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 투신했는데 안 죽는다거나, 아이가 죽었는데 부모가 슬픔을 느끼지 않거나, 갑자기 가해자가 개과천선을 하거나 하는 요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 늘 불같은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신이라 생각합니다.

PINECASTL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INECASTLE (39.♡.79.180)
작성일 05.06 23:54
@0sRacco님에게 답글 아마도 각자의 입장과 세계를 보는 관점, 그리고 여러 가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뒤섞여서 정확하게 구별하거나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있다 없다의 문제보다도 관여 유무의 불확실성에 기초해 관여하지 않으면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생각했습니다만, 그 자체가 존재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할 수 있으니까요.

Dminor님의 댓글

작성자 Dminor (39.♡.80.125)
작성일 05.07 06:47
이론으로 집필하는 교수는 말씀하신 방식을 활용할 수는 있어보이네요.
어디서 줏어듣기로는 불교는 이론 개념을 쥐는게(자승자박) 아니라 체득하되 머물지않고 계속 흘러야 하는듯 하더군요.
단어 해탈 처럼요.

'중간도 아니며 양극도 여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법[不有之法]이라 해서 무(無)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없지 않다[不無之相]해서 유(有)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어느쪽에 치우쳐 쥐거나 머물지않게 하는 괜찮은 방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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