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줄펌글 씨리즈#1 푸른알약 - 10. 반복을 발견하는 생각의 도구, 실습편 (2/3) (feat. 윤동주의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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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줄한당 소모임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다가 싸커라인 게시판에서 같이 읽어볼만한 가치로운 글을 찾아서 다모앙에 소개해보는 것을 기획해보았습니다.
그 시작으로 싸커라인 필명 '푸른알약'님의 인공지능 관련 시리즈물의 챕터 1을 저자의 허락을 구하여 퍼왔습니다. 저자의 설명과 같이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고 작성된 펌글이라는 점 이해해 주시고,내용의 무단 전제나 도용 및 다모앙 이외 사이트로의 전달은 금지되니 관련하여 필요하신 분들은 원문 링크를 통해 저자의 동의를 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내용이 쉽지 않아 친구와 대화하는 형식을 빌었습니다.)
서시
윤동주
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2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3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4 나는 괴로워했다.
5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6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7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8 걸어가야겠다.
9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으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게. 이전 글에서 정리한 게 여기까지 였지. 시리즈 리스트는 (링크) 참고.
모든 죽어가는 것에는 ‘나’도 포함돼. 1, 2행에서 그날까지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7, 8행에서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는 다짐을 밝히지. ‘나’가 반복되는 1, 2행과 7, 8행이 시인의 태도를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 행들이 연결되는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어.
또한 2행의 마지막에 있는 쉼표는 단순한 강조가 아니라 도치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1, 2행의 원래 자리는 8행의 바로 뒤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어. 시 전체에서 모든 행이 붙어있는데, 8행이 유일하게 9행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지. 이걸 고려해서 행을 다시 배열하면 이런 모양이 나와.
3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4 나는 괴로워했다.
5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6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7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8 걸어가야겠다.
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2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9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대상의 연결을 고려하면 9행이 5행의 바로 앞에 들어가야 하는데 제일 아래로 빠져나와 있다는 건 9행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유는 이렇게 배치하면 3행과 9행의 ‘대비’가 처음과 마지막에 선명하게 부각된다는 점이야. (시에서는 이걸 대구법이라 불러)
행을 재배치 하고 나면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다 보면 죽는 날을 만난다는 것이 뚜렷하게 보여.(7-8-1-2행) 그러니까 나도 ‘죽어가는 것’에 포함된다는 거지. 죽어가는 것이라는 반복이 보였으니 이걸 틀에 반영해보자고.
틀에서 발견되는 (ㄹ), (ㅁ)의 공백에 같은 정서를 채울 수 있을거야. 이 공백을 채우고 나면 이제 전체 시에서 틀에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 1행과 2행 뿐이라는 걸 알게 되지. 이걸 정리해보면 이렇게 돼.
(ㅂ)과 (ㅅ)의 공백이 발견되는데 여기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속성을 채울 수 있느냐? 아니, 다른 공백과 달리 이건 시 내부에서 알 수 없어. 대응되는 연결고리가 없으니까. 따라서 ‘속성3’이야 말로 진정한 차이점이 돼.
이제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구나. ’본질은 차이점에 있다‘고.(들뢰즈) 이전 글에서 논의한 ‘틀 내부의’ 6과 10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6을 6이게 한 것은 2야? 만약에 그렇다면 10도 2를 인수로 가지니까 6이 돼. 따라서 ‘틀 내부에서’ 6을 6이게 한 것은 3이라고 할 수 있지. 차이점 3이 6의 본질이라는 거야. 본질은 항상 차이점에 있어. (틀 내부라는 건 전편에서 언급한 ‘같은 정보뭉치 속에서’ 라는 의미야)
이 논리를 따라 서시를 이해하면 서시의 본질, 즉 시인이 하고싶은 말은 1, 2행이 돼. 시 전체에서 유일한 차이점이니까. 이 본질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칠까봐 시인은 이 행을 굳이 제일 앞으로 도치시켜 강조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거지. 이걸 도치의 두 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겠지.
이제 시 내부에서 할 수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의 분류가 끝났어. 내재적 해석이 끝났다는 거지. 그런데 두 가지 찝찝한 부분이 있어. 9행을 제일 마지막에 두지 않고 5행의 앞에 두면 1, 2행이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니까 굳이 도치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강조가 된다는 점. 그리고 시적 화자의 태도가 왜 전환되었는가를 알 수 없다는 점이지.
시 내부에서는 파악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으려면 시의 바깥으로 나가야 해.(외재적 해석) 도치된 1, 2행을 돌려놓으면 3행과 9행이 대구를 이뤘으니까 나란히 보자고.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건 잎새에 바람이 이는 것과 형태가 같지. 그런데 잎새에 바람이 불면 흔들리잖아? 그럼 별이 바람에 스치면? 반짝여.. 별의 반짝임은 대기의 일렁임 때문이니까. (과학적 사실이라도 시 내부에 없다면 내재적 해석이 아니야)
잎새가 바람에 떨리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듯
별이 바람에 반짝이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지.
그러니까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는 건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반짝인다. 라는 거지.
결국
오늘 밤에도 별이 죽어간다. 라는 것이고
오늘 밤에도 나는 죽어간다. 라는 것이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죽어간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시적 화자는 이것을 거꾸로 죽어가는 것은 곧 살아간다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삶의 예찬(사랑 노래)으로 태도를 전환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시인이 처한 식민 시절의 유학 상황을 고려하면 숭고함까지 느껴져..)
ps) 정말 긴 챕터였다.. 따라오느라 고생했어. 다음 글은 문학 이외의 글(비문학)에서 생각의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해.
(참.. 읽어주신 모든 분들, 댓글/추천해주신 분들 따로 글까지 써가며 시리즈 알려주신 분까지..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연재 마지막까지 꾸준히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1편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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