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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182.♡.66.93
작성일 2024.07.0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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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조회
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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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회색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 구름이 잔뜩 찡그리고 있다.

마치 거울을 본 듯 비슷한 표정의 얼굴은 한 사내가

각진 뿔테 안경에 끼워져 있는 고압축 사각 렌즈 너머로 그런 하늘을 고개를 들어 바라 보고 있었다.

흡사 신내림 받은 무당처럼 입술을 달싹 거리며 작은 소리로 무언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그러다 일제 치하에 나라를 찾기 위해 힘쓰던 독립투사만큼이나 결연한 표정으로 굳은 결심을 한 듯

성큼성큼 걸어가 근처에 있던 커피숍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 문에는 여느 가게처럼 손님이 온 것을 주인과 종업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작은 종이 달려 있었는데

사내의 귀에는 그 소리가 마치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이 우렁차게 크게 들렸고

긴장한 그의 심장을 더욱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놀란 사내는 문을 반쯤 열고는 더 열고 들어가야하나, 아니면 문을 닫고 뒷걸음을 치고 도망을 가야하나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깊은 고민을 하다가 쭈볏거리며

괘종시계의 시계추마냥 눈알을 좌우로 굴려 가게 안을 살펴보았으나

다행히 가게 안의 사람들 중 사내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내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굳은 표정과 근육들을 이완시키고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고 수상하기 그지 없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는 들어가 카운터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큰 소리로 카라멜 마끼야또 주세요!라고 선언을 하였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미 주문받은 음료를 만들고 있어서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완성된 음료를 다른 고객에게 전달해주던 사장이 그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당차게 선언을 하고 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절도 있게 꺼내 카드를 꺼내려고 지갑을 펼치던 사내는

예상치 못한 기다려 달라는 사장의 말에

떨리는 손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반쯤 꺼낸 카드를 다시 집어 넣으려 했으나 잘 들어가지 않아 식은 땀을 흘리다가 지갑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황급히 허리를 숙여 지갑을 줏어 들고 머리를 들다가 카운터 모서리에 부딪히고 말았으나

역시나 아픔보다 창피함이 더 컸다.

땀과 함께 코끝에 흘러내린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는 직원들 머리 위에 있는 메뉴만 황망히 보는 그의 두눈은

휑하니 풀려버렸고

부자연스러운 두 팔은 황급히 지갑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차렷자세로 서 있었다.

이것이 고작 사장이 계산대 앞으로 걸어오는 3초가량의 시간 동안 벌어진 작은 소동이었다.

이내 정적이 깨지고 사장이 카라멜 마끼야또가 맞는지 물었고

사내는 이등병때 선임에게 대답을 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을 하고 마무리를 하려 했으나

사장은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 시원하게 또는 뜨겁게 인지, 휘핑크림은 어떻게 할지, 먹고 갈지 가지고 갈지 등을 집요하게 물었다.

사내는 방문전까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수많은 연습을 했었지만

자신의 시나리오에 없던 대사들이라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리고는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를 찍듯이 심사숙고를 하며 묻는 말에 필사적으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장은 만족스런 얼굴로 웃으며 카드를 받아서 계산을 하는 동안 사내는 혼이 나가 멍한 얼굴로 여기가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문을 써서 교수님에게 컨펌을 받다가 크게 혼나는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몇 번을 연습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던 실패한 상황으로, 나름 성공적인 카라멜 마끼야또 첫 주문 및 계산을 한 사내는 그 결과물을 들고 가게 밖을 나섰다.

허탈하면서도 뿌듯하면서도 시원섭섭한 사내는 근처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톨사이즈의 휘핑크림을 얹은 차가운 카라멜 마끼야또를 한 모금을 빨고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

입안은 달달하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날씨는 어느 새 파란 하늘로 풀려 있었다.

여름이었다.

댓글 3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7.01 09:57
이제 막 서문이 끝난 듯 한데 이야기가 끝나 버렸네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잘 쓰셨습니다. ^^

프로그피쉬님의 댓글

작성자 프로그피쉬 (112.♡.76.76)
작성일 07.01 19:35
주문이 이리 어렵습니다.

적운창님의 댓글

작성자 적운창 (42.♡.63.161)
작성일 어제 04:09
서브웨이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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