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 산문집 -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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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람만이희망이다 121.♡.250.177
작성일 2024.06.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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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7)

사람이 죽어간다는 것은, 삶에 대한 희망과 감사를 잃는다는 것이고, 인간과 신성에 대한 뜨거움과 설레임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살리라. 죽어도 죽어도 살아 가리라.


(P. 31)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 타인에게 삶의 높이를 재면 자존심이 되고, 자기 가치에 삶의 높이를 맞추면 자존감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진정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보다 많은 시간과 관심을 기울일 일이다.


(P. 33)

점점 손에 물 묻히는 일이 마음 편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거겠지.
광야에서 부엌으로, 소비에서 설거지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일단 부드러워진 다음에 향기를 입히는 일일 테니까.
커피 잔 세 개 헹구는 사이에 잔 받침 한 개쯤 깨먹을 수도 있는 거니까. 아이고~


(P. 42)

사람들은 흔히 돈이 많은 사람들을 증오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돈이 없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어느 쪽이 나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증오는 속으로 하면서 경멸은 드러내놓고 한다는 것이다.


(P. 48)

우리 어머니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얘야,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칭찬과 긍정이 늘어가면 '어른'이 되고, 비난과 부정이 늘어가면 '꼰대'가 되는 법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 되는 건 아니더라.


(P. 61)

나보다 잘된 사람의 기쁨에 기꺼이 동참하라고
오늘도 우주는 제가 가진 모든 별자리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봄과 여름과 꽃밭과 구름을 살리고 삶과 죽음을 살리고
결국 내 마음의 깊은 흠집을 살리고 가난한 마음 앞에 곧게 굳게 바르게 서게 하신다.


나보다 잘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나보다 잘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축복하고
나보다 잘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일.


하느님의 기쁨과 축복과 행복을 대신하는 일.
그리고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는 일.
결국 하느님의 마음을 대신하는 일.

사람의 일.


(P. 64)

숙제하듯 살지도 말고, 의무처럼 죽지도 말고, 노동처럼 연애하지도 말 것. 그냥 그것들 모두를 살아낼 것.


(P. 95)

그럼 측근도 아닌데 도대체 누가 바쁜 입을 바쳐서 나를 씹고 흉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원래 가까운 사람이니까 피해를 끼치고 배신을 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사기당한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라. 다 친구에게 당하고, 형제에게 당하고, 선배에게 당하고, 후배에게 당하고, 약혼자에게 당하고, 사돈의 팔촌에게 당하고, 요즘은 페친에게까지도 가끔 당하고······.

9할이 측근에게 당한 사람들이다. 예수도 제자에게 당했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다.


(P. 115)

누구도 울지 않을 때 우는 힘


(P. 141)

사랑해, 라고 말하자 어느 꽃나무 아래서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 사랑이 뭔지 알아요?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사랑이 뭔데? 그러자 그녀가 아주 슬픈 표정으로 다시 대답했다. 아끼고 좋아하는 거예요. 아끼고 좋아하는 거... _ 꽃비가 내리는 시절이다. 저 꽃들은 제 꽃나무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기꺼이 허공에 몸을 던지는가


(P. 149)

우리는 언제나 가진 것보다 가지지 않은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자꾸만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을 더 가지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지금 가졌으나 별로 사랑받지 못했던 목숨을 놓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죽음 쪽으로 건너가는 게 아닌가.


(P. 152)

나: 거울 보니까 나 진짜 '귀족적'으로 생긴 거 같아요.

박: 뭐? (비)'규칙적'으로?


어떤 술집에 갔더니 기억도 안 나는 나의 시바체 낙서가 벽에 쓰여져 있다. 술에 취해서 방금 읊조린 누군가(박)와의 대화를 옮겨 적은 것 같으다.

유쾌하다. 저렇게 의미 없는 이야기가 그 어딘가의 벽에서 오래도록 살아 나부낀다는 거······. 인생 또한 이 낯선 지구별의 한 구비에서 별 뜻 없이 오래도록 살아 나부끼는 일이겠지.


(P. 191)

나에게 순 쓰레기 같은 일들이 몰리고, 순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생각해보면 다 내가 쓰레기장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장 맹글어놓고 왜 쓰레기 버리냐고 분노하고 부르르 떨고 꼭지 돌리면서 뚜껑 여는 짓, 어리석기 짝이 없다.


(P. 243)

아무리 의연한 척, 아무것도 아닌 척, 가벼운 척 했어도 속으로 혼자서 감당해야 했을 공포와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을까. 자신도, 반려자도, 하느님도, 결국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의 빛과 그늘을 다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깊고 높은 울음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P. 255)

나, 딱 국화 한 송이 살 돈이 있길래 그걸 샀지,
내가 나를 위로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거든.


(P. 276)

진정한 부자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게 적은 사람이다.


꽤 통쾌한 직관이어서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말인데 평소엔 늘 잊고 산다. 불필요하게도, 필요한 것들만 점점 더 늘어간다.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만하면 됐지!" "이만하면 괜찮아!" "이만해도 고맙지!"······ 이런 말들은 사실 전무후무한 항암 만트라인데도 늘 잊고 산다. 필요한 것을 적게 하자. 탐욕의 범람만큼 천박하고 추한 게 또 없다. 역시 몸이 아프면 사람이 겸손해진다. 시바, 이만해도 참 다행이다.


(P. 277)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마음이 약해져서도 늙는 게 서러워서도 아니다. 생애에 한번 생겨난 슬픔과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사람의 몸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인데, 몸 안에 강물처럼 고이는 것인데, 어느 날 그것들이 가슴의 수위를 넘어서면, 그때부터 세상의 사소한 슬픔과 상처가 와 닿기만 해도 눈물이 못 참고 범람하고야 마는 것이다. 응앙응앙 울면서 몸 밖에 눈물의 길을 내고야 마는 것이다.


(P. 290)

하필이면 아끼는 것들만 잘도 잃어버린다. 안 아끼는 것들은 잘 안 잃어버린다. 안 아끼는 것들은 몸 가까이 지니고 다니지 않으니까.

사람 관계도 그러할까. 아끼는 사람은 자주 잃게 되고, 안 아끼는 사람은 그저 그런대로 무심하게 세월을 함께 건너가게 되는 걸까. 그래서 어느 날 돌아보면 어떠한 집착도 애착도 없었던 사람들이 더 따스하고 미덥게 느껴지는 그런 거······.

아끼는 물건을 만들지 않을 일이다. 아끼는 사람도 만들지 않을 일이다. 그냥 세상 만물과 생명들에게 큰 집착과 애착을 가지지 않는 일, 담담하게 제자리를 그저 바라봐주는 일······. 상처받지 않는 방법 아니고 무엇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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