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416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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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달냥님 후기를 보고 저도 간단하게 적을까 싶어서 PT-416 후기를 남깁니다. 라이딩 중에 사진을 남기는 성향이 아니다 보니 사진은 없고 글로만 짧게 대신합니다.
1. 출발하기 전
PT-416 코스는 원래 알고 있었지만 작년까지는 미뤄두고 있었어요. 저한테 추모 ‘라이딩’의 의미가 뭔지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했거든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랑 답은 그냥 단순했습니다. 작년에 10주년 후기 중에 슬픔을 공감하고 함께 기억해주는 것도 위로라는 말을 보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저도 달려 보기로 했습니다.
3월 쯤부터 자당에 글을 올려서 파티라도 구해볼까, 혼자서 갈까 고민하던 중에 랜사모 카페에서 오동도님의 모집글을 보고 냉큼 신청했습니다. 알고 보니 매년 단체 라이딩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그저 감탄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내려가는 교통편, 식사, 동행, 코스 등 많은 부분의 고민거리가 해결 되었....던 것 같았으나 의외의 복병이 둘 있었으니…
제일 큰 문제였던, 3월말까지 안 끝나던 탄핵 정국은 다행히 4월 초에 적체가 해결되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준비를 할 수 있었고요.
그 다음 문제는 날씨였습니다. 12일에 비, 그것도 많은 비가 예보가 되었던 거죠. 원래 비 오면 라이딩 안 하는 주의입니다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라. 전날까지도 일기예보가 바뀌는지 계속 새로고침 해 봤으나 결국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했습니다. 비... 맞죠 뭐.
2. 그런데 날씨의 상태가...?
일단 정확한 예보가 필요합니다. 날씨와 바람 정보로 windy를 많이 사용하시는데,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windy에는 gpx를 넣어서 경로를 오버레이하거나, 경로 상의 일기 예보를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요기서 거리 및 계획을 사용합니다. 고도표와 함께 나오고, 즐겨찾기 설정을 해두시면 수시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다른 방법은 https://www.epicrideweather.com/ 앱을 사용하는 건데, windy 쪽은 전체적인 비구름, 바람, 먼지 등의 시각화 맵을 같이 볼 수 있고 epic ride with weather 쪽은 전체 정보를 한 눈에 보기 쉽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설이 길었는데, 아무튼 예보를 종합하면,
- 5~15도까지 기온 변화 대비 (체감은 여기서 -5 정도)
- 토요일 저녁 7~8시에 폭우 (시간 당 7 ~ 10mm)
- 우중 라이딩과 새벽 한파를 동시에 대비해야 함
아침 7시 정도에 출발해서 일반적인 날씨와 페이스면 300km 지점인 청양, 좀 더 빠른 분들은 335km 지점의 신례원을 숙박지로 선택하는 편이 다음 날을 생각할 때 좋은데, 그러면 저 폭우와 한파를 뚫고 야간 라이딩이 불가피 합니다.
준비 톡방에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270km 부여 숙박 플랜인데, 폭우가 오는 시간을 피해서 일찍 숙박한 후 새벽 2시 출발하는 내용입니다. 달냥님이 이쪽으로 가셨죠. 저는 출발 전까지 고민하다가 당일 예보가 바뀔 지도 모르고 + 당일 페이스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생각으로 예약은 미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보는 안 바뀌었고 꽤 정확해서 예측대로 14시 부안 근처부터 우중 라이딩이 되었습니다.
3. 짐 싸기
창고를 뒤져서 우중 라이딩 장비를 다 꺼내 봅니다... 반팔 우의, 방수바지, 헬멧 커버, 슈커버, 펜더가 나옵니다. 왜 있는지 모르지만 암튼 기본적인 건 다 있네요. 장갑이 방수가 안 되는데 손이 얼 거 같아서 네오프렌 3mm 장갑을 하나 추가했고요.
출발은 카스텔리 퍼페토 긴팔 자켓+ 브린제 + 빕숏 + 니워머. 더우면 니워머를 벗을 경우 5~15도까지 커버가 가능한 복장입니다. 우의가 반팔인 게 문제인데 팔 부분은 자켓으로 그냥 맞기로 했습니다.
- 옷이 젖을 경우와 일요일 한파를 대비해서 여벌 장갑, 메리노 양말과 긴팔 상의.
- 1박 대비로 수면용 반바지 (중요!), 충전기와 각종 케이블(만 거의 5개... 하아...),
- 장거리에 야라가 있을테니 여벌 전조등, 보조 배터리, 타이어 응급 수리용 키트, 펌프, 비상용 니트릴 장갑....
짐이 끝도 없어요!
우라용 장비만 아니면 핸들바 백에 새들백 작은 걸로 간단하게 해결될 짐인데. 여벌 옷과 우비 때문에 부피가 커집니다. 몇 번 쌌다가 풀었다가 하고 겨우 마무리를 했습니다.
4. 진도까지 ~ 출발 전
금요일 밤에 전세 버스로 진도까지 이동했고, 오동도님이 예약해 주신 민박집에서 버스, 전날 단체 숙박, 개별 숙박, 제주도 돌고 오신 팀들이 전부 합류했습니다. 달냥님과 다른 자당 분들은 전날 오신 걸로 톡방에서 봤는데 이 때 뵙고 짧게 인사 드렸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아침 먹을 곳이 없어 보였는데, 민박집에 미리 식사 예약을 해주셔서 한 상 가득 든든하게 먹고 출발할 수 있었고, 추모 라이딩 완장과 정관장, 아르기닌 같은 보급품을 챙겨 주신 분도 계셔서 든든했습니다. 같이 라이딩 하신 분들 말고도 많은 분들 도움을 받았어요.
아침 식사도 마치고 이제 가까운 기억의 등대로 이동. 세월호 인양 된 후에 한 번 왔었던 것 같은데,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날이 흐리고 추워서인지 라이딩 준비 중인 저희 일행 외에는 사람이 거의 안 보이네요. 오동도님의 간단한 라이딩 설명, 그리고 참가자들의 자기 소개, 출발 전 PT 인증 용 단체 사진 후에… 416km 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5. 어쩌다 보니 앞으로 버려졌습니다
처음에는 슬슬슬 가고 있는데 어떤 분이 앞으로 치고 나가고, 그 뒤를 달냥님이 쫓아가시길래 저도 생각 없이 따라 붙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등바람을 업고 그렇게 3인팩이 형성 되었는데, 너무 봄날님만 끄시는 것 같아서 한 번씩 교대하다 보니 어느새 뒷 그룹과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함평까지 무정차를 갈 생각이긴 했습니다만 자연스럽게 50km 쯤의 첫 보급 포인트로 지나가고, 80km가 되어서 달냥님이 물이 떨어졌다고 해서 짧게 보급을 가집니다. 여기서 “19시부터 폭우 예보고 우리가 7시 10분에 출발했으니 25km/h 로 청양까지 뚫으면 소나기는 피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20km를 더 간 함평에서 달냥님은 이미 부여에 숙소를 예약했으니 후미조와 합류하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갈등. 봄날님을 따라 청양까지 12시간 트라이를 해볼 건가, 후미조와 합류해서 부여에서 숙박을 노릴 건가.
그리고 전자를 고릅니다. …비 맞기 싫었거든요.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함평을 지나쳤으니 160km 정도에 있는 노드바님의 스페셜 보급 (전원 보급 조건으로 특별히 허가 받았다고 합니다)까지 가야 합니다.
6. 이게 되네
그래서 또 무정차로 160km 지점에 12시 40분쯤 도착합니다. 노드바님이 보급을 정말 산처럼 쌓아주셨는데… 묘하게 속이 안 좋아서 김밥은 두고 다른 탄수화물 위주로 우겨 넣습니다. 그리고 이걸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데…
160km 까지는 비가 안 왔고, 30km 후방의 후미조 쪽은 이제 비가 오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또 빠르게 움직이기로 합니다. 근데 제가 방전이 되어서 이제 속도가 안 나네요… 여기서부터는 로테를 안 돌고 비겁하게 봄날님 말선을 세우고 따라가게 됩니다. 네. 제가 봄날님 고속 택시를 탔어요… 평지는 어떻게든 따라가겠는데 오르막에서는 무산소 파워는 안 쓰겠다고 z3, 4만 언저리만 밟으면 죽죽 처지더라구요. 살을 빼야 해요 진짜…
약간 핑계를 대자면 올해 장거리 야외 라이딩 마일리지가 좀 부족했고, 패드 크림 까먹었더니 엉덩이가 슬슬 까지기 시작했고 패드 없는 방수 장갑 땜에 손바닥도 아프고 속도 안 좋아서 당도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다 핑계죠 뭐….
2시까지는 그렇게 비를 피해 잘 달렸으나, 슬슬 비가 오기 시작하여 버스 정류장에서 잠깐 멈추고 황급히 우중 라이딩 채비를 합니다. 여기서도 봄날님은 비닐 장화를 자른 걸로 즉석 바미트를 만드는 센스를 보여주셨는데, 그 후에는 장갑도 안 끼고 청양까지 가셨습니다. 대단.
가랑비를 슬슬 맞으며 225km 정도의 대야 중국집에 도착한 것이 3시 반 정도. 순풍을 업고 거의 27km/h 페이스로 왔는데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이고 스페셜 보급 후에도 시간이 얼마 안 지났기 땜에… 아예 좀 더 가서 편의점 보급을 한 번 더 하고, 7시 전에 청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이후 비가 좀 더 거세지기도 했지만 해 지기 전에 청양에 도착해 버렸고요.
문 연 식당이 안 보여서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본 끝에 들어간 식당에서 동태탕을 흡입하고 나오니… 걱정했던 폭우와 한파가 도래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모텔 들어가는데도 몸이 덜덜 떨리더라구요.
자전거를 본 모텔 주인 분이 친절하게 전실이 넓은 온돌방을 주셔서 방 안에 넉넉하게 둘 수 있었고, 씻고 옷 말리고 카톡을 보니 임천 도착하신 분들이 청양까지 오신다는 글을 봤습니다. 이 비와 이 기온에… 걱정스럽지만 경험 많으신 분들이라 잘 오실 거라고 믿고 저희는 9시 전에 취침을 해버립니다. 다음 날 일기예보를 봤을 때 10시 경에 서울에 또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남은 거리 120km는 순풍 없이 달려야 하므로 6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2시에 일어나서 3시 정도에 출발, 9시에 도착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눕고…. 혼절했습니다.
알람 듣고 일어나니 단톡방에 밤새 정말 청양 오신 분들, 그리고 2시에 출발하는데 가민 고장났다는 에피샘님 글이 보입니다. 가민은 당장 회복이 안 된 거 같던데 나중에 무사히 도착하셨더군요. 편의점에서 이른 아침을 때우고 남은 거리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차랑 길에 뭔가 희끗희끗한게 보입니다?
눈이네요? 4월인데?
헛웃음만 나오는 상황에 올해 농사 정말 큰일이라는 걱정, 2시에 출발한 부여팀은 괜찮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남 걱정할 상황이 아닌지라 여전히 빠와 넘치는 봄날님을 앞에 세우고 덜덜 떨면서 달립니다.
7. 아무일 없었습니다
남은 120km는 정말 아무 일 없었습니다. 전날에 비하면 느긋한 페이스로 달리면서 해 뜨니까 기온도 슬슬 올라가고, 자켓 벗어서 다시 패킹하다가 제가 고글을 놓고 오는 사소한 일과 위협 운전하는 트럭 만난 정도…?
예상한 9시에 기억 교실 도착하고, 원래 10시 오픈이지만 배려를 해주셔서 문을 살짝 미리 열어주셔서 안에서 나머지 분들은 언제 오나 기다립니다. 익산 랜도너님이 먼저 도착하시고, 빡샘님이 거리가 살짝 모자라다고 지나쳤다가 들어오시고, 이제 제한 시간이 간당간당한데 10시가 되니 갑자기 눈과 태풍급 바람이 몰아칩니다…? 바람을 뚫고 부여 출발하신 자당팀이 도착한 후에 제한 시간 거의 다 채워서 나머지 분들도 무사히 도착! 19명이 완주에 성공합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봄날님 고속 택시를 탄 저는 역대급 고난 라이딩을 하신 분들에게 좀 죄송스러울 정도로 아무 일 없이 험한 날씨는 다 피해서 도착했습니다 (…)
8. 기억 교실
교통편 등등의 문제로 먼저 돌아가신 분들은 제외하고 남은 분들은 기억 교실 안내를 받습니다. 알고 있던 이야기도 있고, 몰랐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잊혀지지 않게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유가족의 의지는 확실히 전달되었습니다. 추모에 왜 기한이 있어야 하나요. 비극은 꼭 잊혀져야 하나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해야겠죠.
달리던 내내 머릿 속을 맴돌던 말이 있습니다.
기억 교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르지만 문득 이게 생각 나더군요.
비극 이후에도 계속되는 다시 살아가야 하는 삶에 희망을 만들었으면 하고, 주제넘지만 위로와 추모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9. 기타 잡설
코스 :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청양 진입 시에 업힐이 하나 있는데 남산 or 하오고개 정도로 높지 않습니다. 270km를 달리고 나서 야간에 넘을 확률이 높아서 그렇지…
출발 전에 오동도님도 주의를 주셨는데 위험 구간은 크게 2곳입니다.
첫 번째는 진도를 빠져 나간 후 목포 진입까지인데, 대형 차량이 통행이 많고 노면이 불량합니다.
두 번째는 충청 라이더 분들은 익숙하신 것 같던데… 아산만 방조제 길입니다. 저희는 비교적 일찍 통과해서 차량은 적었지만 그래도 신경질적으로 위협 운전하는 트럭 때문에 사고 날 뻔 했었고, 길에 1톤 트럭이 대파되어 경찰 출동해 있는 것도 봤네요. 여기는 8시나 9시에 통과하려면 차량이 더 많아서 힘들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구간은 칠목재부터 부여까지, 여기는 벚꽃 기간에 라이딩 하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10. 감사합니다.
의미 깊은 라이딩 준비해주신 오동도님, 여러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아 주신 홀로석님, 노드바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봄날님 거의 전 구간 말선으로 끌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저만 편한 라이딩을…
자당팀 달냥님, 에피셈님, 담담님, 해인두밀님, 우헤헤님 제대로 인사 못 드렸지만 반가웠습니다. 길게 이야기는 못 했지만 그래도 시작과 끝은 함께 한 다른 분들도 감사드립니다.
해인두밀님의 댓글

날씨가 너무 아쉽네요

lazycat님의 댓글의 댓글
DAM담님의 댓글

저희는 lazycat 님이 함평 육회비빔밥을 못드신걸 내내 안타까워했답니다 ㅎㅎ
lazycat님의 댓글의 댓글
박달냥님의 댓글

lazycat님의 댓글의 댓글
일단 설악에서 또 뵙겠습니다!
lazycat님의 댓글의 댓글
uhehe님의 댓글

lazycat님의 댓글의 댓글
고네이님의 댓글

저도 언젠가 기억교실에 가봐야겠습니다.
봄날님은 정말 잘 타시는 것 같습니다.
연세도 조금 되시는 편이신 듯 한데도요.
브레베 메달 케이스 뚝딱 뚝딱 만들어 내시는 능력자시기도 하구요.^^
lazycat님의 댓글의 댓글
샤일리엔님의 댓글

매번 416퍼머넌트 해봐야지.. 하면서도 올해도 집회로인해 참석하지 못했네요..
부디 내년엔 저도 앙님들과 함께 도로를 달려 기억교실까지 함께한다면 좋겠네요..
세월호가 잊혀지지 않도록 무사안라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이대갈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