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독립기념일 라이딩
Hann

Lv.1 Hann (71.♡.140.229)

2025년 7월 6일 AM 04:57 · 수정됨(07. 08. 13:37)

조회 1,249 공감 0

해외 인증을 해야 해서 뻘글도 댓글도  올리지 못하다 오늘 초스피드로 주인장님의 승인을 받고 올립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제법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인데 거기고 자전거 타고 30분 정도만 가면 논밭이 펼쳐지고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 나옵니다.자전거 길 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도 운전자 분들이 잘 비켜서 안전하게 운전해 주셔서 좋아하는 길입니다.

그래도 본격적인 차도 보다는 이런 한적한 동네 길 좋아합니다. 나무가 많아 시원한 그늘도 있고, 차도 별로 없이 산책하는 분들과 인사합니다. 지도 상에서는 길이 다 똑같아 보여도, 자전거 타다가 이렇게 나무도 우거지고 길도 깨끗하게 포장된 경로로 오면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아침에 나오는데 물통을 안 채우고 나와서 루트 중간지점에 위치한 공원에 들렀습니다.

동네 공원이나 도서관/ Community Center등에 들러서 화장실도 들리고 물도 채웁니다.


공복으로 30Km 탄 지점인데, 배는 별로 안 고프지만 그래도 어중간한 곳에 서서 먹는 것 보단 공원이 운치 있겠다 싶어 의자를 차지하고 치즈랑 아보카도 끼운 빵을 천천히 먹었습니다. 분명 맛있는 빵인데, 라이딩 중에는 식욕이 없어서 그런가 반 정도만 겨우 먹고 저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방울 토마토랑 청포도를 라이딩 중에 하나씩 꺼내 먹으면 참 좋은데, 사 두는 걸 깜빡했네요.

라이딩 할 때는 뭐 먹는 게 참 귀찮긴 하더라구요.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을 쭉 따라 달리다 보면 길 양쪽에 논/밭/목장 이 보입니다.

말은 윤기가 흐르는 털도, 근육도 그렇고, 달리는 모습도 시원시원하고 멋지지 않나요?


사진 찍는 걸 원체 귀찮아 하고 , 소셜 미디어 이런 것도 안하는데,

요즘은 우리 동네 참 이쁘다. 내 자전거 참 이쁘다 싶어서 기록을 남겨 보고 싶네요.

페달질 하다보면 아~ 좋다 싶은데 갈 길 가기 바빠 지나쳤던 순간들을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 파랑 오베아가 연식이 좀 오래 됐을 텐데도 아직 잘 달려줍니다. 페이스북에서 중고로 사갖고 올때 부품들이 꽤 연식있음에도 반짝반짝 빛나게 반질반질 정성스럽게 손질이 되어 있었거든요. 3년차 될때 까지 체인 한번 바꿔주고 크랭크 작은 거 하나 교체 한 거 말고는 큰 정비가 없었습니다만 요즘 페달질 쎄게 할 때 뿌득뚜득 소리가 납니다. 다음주가 내내 비 소식 있으니까 그 때 손 볼 예정입니다.


제가 로드 자전거 세계를 접하고 자전거 글과 유투브를 열심히 보면서, 카본, 디스크 브레이크, 파워미터 어쩌구 이런 신기술들을 처음 접하고 ' 나도 비싸고 가볍고 좋은 로드 자전거 갖고 싶다' 하고 매일매일 어떤 자전거를 살까 골몰하던 때였어요.

여름이었던 거 같은데, 자전거 타고 집으로 향하는 살짝쿵 오르막을 오르던 때에 , '자전거가 신식 카본이면 이 오르막도 더 시원하게 올라갈텐데'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제 앞에 라이더 한 분을 발견했어요.


양 갈래로 땋은 은빛 머리칼의 연세가 지긋하신 여성 라이더 였고, 그 분 자전거는 드롭바 끝에 변속기가 달린, 아무튼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클래식한 모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옆으로 인사하고 지나치며 보니까, 부드럽게 허밍으로 흥얼거리시면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타고 가시더라구요. 저 그때 너무 충격 받아서 횡단 보도에서 멈춰서 멍하니 서 있었어요.


'새 자전거 뭐 사지?' 라는 그 며칠간의 물음이 그 라이더 분의 은은한 미소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분앞에서 자전거가 빠르고, 에어로 다이나믹하고, 카본 품질이 어떻고 이런 건 모두 웅얼거리는 소음처럼 느껴질 만큼, 그 분 주위의 공기만 행복으로 부드럽게 감싸져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 라이더와 저는 한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 있기도 했습니다.

부끄러움이 지나가고 ' 나도 저렇게 행복하게 타고 싶다. 오래오래 ' 라는 싹이 마음에 심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제가 지금 갖고 있는 자전거 더 아껴주고 잘 닦아주며 잘 타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이클리스트 들 볼 때 빠르게 잘 타시는 분을 보면 물론 멋지기도 하지만, 볼이 약간 붉어진 채로 웃음이 가득한 분을 볼 때면 저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자당라이더 아니 취미 생활 하시는 분들이 오래 오래 건강하게 행복함 듬뿍 느끼면서 마음껏 즐거우시길 소망합니다.


그래도 조만간 비포장 자전거여행을 준비중이라 디스크 브레이크 그래블이나 올라운더 하나 사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물욕을 벗어나진 못한 때묻은 중생이네요.



댓글 (16)

  • 다이해해 Lv.1

    25.07.06 · 112.♡.18.227

    여름철 계곡의 그늘 같은 맑고 시원한 수필을 읽은 기분입니다! 아침에 눈떠서 읽은 글인데 덕분에 오늘 하루 상쾌하게 시작합니다^^
  • Hann

    Hann Lv.1 → 다이해해 작성자

    25.07.08 · 71.♡.140.229

    이해님 표현이 더욱 멋진데요. 여름 계곡 그늘 같은 글이라는 칭찬을 들어서 저도 너무 기분 좋은 하루 입니다! 감사합니다
  • Bumblebee

    Bumblebee Lv.1

    25.07.06 · 210.♡.11.51

    자전거 너무 예뻐요 ❤️ 거주하시는 동네도 ^^
  • Hann

    Hann Lv.1 → Bumblebee 작성자

    25.07.08 · 71.♡.140.229

    오래된 자전거에 조금 촌스런 동네지만 정겹습니다. 범블비님 라이딩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 포크리스

    포크리스 Lv.1

    25.07.06 · 59.♡.130.199

    한가한 휴일 아침의 여유가 느껴지네요. 그리고 즐기면서 라이딩하시는 Hann님이 상상돼요. 일단 집을 박차고 나가야 되겠죠? 현실은 이불 속입니다만.
  • Hann

    Hann Lv.1 → 포크리스 작성자

    25.07.08 · 71.♡.140.229

    이불 속이 제일 안전하쥬~ 주말엔 푹 쉬시는 것도 좋아요
  • BANDI

    BANDI Lv.1

    25.07.06 · 211.♡.122.2

    너무 예쁜 동네 거주하시는 거 같습니다. 저의 꿈이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인데 언제나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늙으면 몸이 안 따라주니 어느 시점에는 결정을 해야 할거 같은데 생각보다 맘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해외에서 직업을 갖기엔 넘 늦어서 이제 은퇴를 하고 가야하거든요... 55세를 기준으로 준비중이긴한데 그 이후에도 자전거 타고 선생님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요?
  • Hann

    Hann Lv.1 → BANDI 작성자

    25.07.08 · 71.♡.140.229

    반디님, 자전거를 타고 지나시는 길 어디서든 행복하실거예요.
  • 개내대래매배새

    개내대래매배새 Lv.1

    25.07.06 · 115.♡.56.19

    님 말씀 다 공감하는데

    그래도 새거 들이시면 더 좋을거에요 ㅎㅎ

    저도 저런 한적한 곳에서 라이딩하고 다니면 즐거울 것 같네요

    근데 현실은 전투적인 한강 자도를 다녀야 하는 서울 라이더 입니다 ㅠㅠ
  • Hann

    Hann Lv.1 → 개내대래매배새 작성자

    25.07.08 · 71.♡.140.229

    넵 좋은 새자전거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강 자도는 그 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 근교는 또 좋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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