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베디드 시스템 소프트웨어 (펌웨어) 엔지니어가 보는 AI의 습격.
에헤라디야

Lv.1 에헤라디야 (76.♡.185.129)

2025년 12월 17일 AM 08:37 · 수정됨(01. 20. 06:50)

조회 1,867 공감 0

AI 때문에 동종 업계라고 볼 수 있는 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수 만명씩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언제 내 밥줄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제 직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입니다. 프로그래머라고 쉽게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코딩해서 돈버는 사람이지요. 그 중에서도 임베디드 시스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입니다. 흔히 그냥 펌웨어 쟁이라고 합니다. 주로 하는 일은 매년 새로운 SoC를 다른쪽 팀에서 설계해서 개발하면 해당 SoC를 브링업(Bring-up)하는 일입니다. 베어메탈(Bare-metal) 작업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니까 그냥 아무것도 없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올려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도 예외 없이 AI를 적용하려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몇 소프트웨어 분야 처럼 LLM 에이전트에 "이거이거 하는거 만들어줘" 한다고 뭐가 나오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LLM 입장에서도 알고 있는 학습 데이터가 없거든요. 새로운 SoC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들, 예를들면 마이크로 아키텍쳐 문서, 스팩 문서, 레지스터 설명 문서, 히스토리컬한 변경 사항, 개별 IP에 대한 국제 표준 등등. 이런 학습 데이터들을 미리 LLM에 때려 넣어야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이 대외비라는 겁니다. 따라서 외부 모델을 쓸 수 없으니 회사 내부에서 구축한 내부 모델을 쓰거나 외부 기업과 제휴해서 모델의 학습 정보 유출을 막는 등 기술적 문제보다 이런저런 정책적 문제가 큽니다. 아무튼 덕분에 저는 어쩌면 몇 년 정도는 AI의 습격으로부터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레가시 코드 베이스의 문제도 큽니다. 제가 하는 일은 코드를 새로 작성해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양이 많고 규모가 큰 코드 베이스를 기반으로해서 새로운 SoC에 해당 코드 베이스가 돌게 만드는 일입니다. 직접 비교할 순 없지만 쉽게 말해 리눅스 커널을 포팅해서 부팅시키는 작업하고 비슷합니다. 해당 작업을 하면서 수정하는 코드의 양은 절대적 수치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드 베이스의 구성과 구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정확하게 필요한 위치의 코드를 찾아서 수정해야 합니다. 어떤 부분은 수정해야 하고 어떤 코드는 이제 필요 없으니 지워야 하고 당연히 새로 생긴 기능에 대한 코드는 새로 개발해야 하지요. 이런 작업에 AI를 사용하려면 컨텍스트 윈도우가 엄청나게 커야 합니다. 물론 부분 부분 잘라서 AI에게 분석 시킨다음 사람이 하나하나 지시해 가면서 코드를 만들면 되겠지만 숙련된 엔지니어에게 이 작업은 생산성이 향상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직접 코딩하면 30초면 할 일을 AI를 쓰겠다고 10분 넘게 걸리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AI는 어디에 쓰면 효율적인가.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처리할 때 좋습니다. 멀티 플랫폼을 지원하는 코드 베이스에 여러 플랫폼을 타겟으로 해서 동일한 특정 코드를 하나씩 집어 넣어야 하는 등의 작업을 할 때는 AI를 시킨 다음 최종 결과물만 사람이 확인하면 되니까요. 이런류의 작업은 원래 시니어 엔지니어가 필요한 코드를 만들고 실제 작업과 테스트는 주니어 엔지니어가 한 다음 마지막에 시니어 엔지니어가 승인하는 식으로 일이 돌아갔었는데 이제 주니어 엔지니어의 자리를 AI가 대체하는 셈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AI가 시니어 엔지니어의 일자리도 빼앗을테지만 아직은 시니어 엔지니어가 밥 벌이를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론은 펌웨어 바닥에서 아직은 사람이 몇 년 더 버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입니다.

회사에서 우리끼리 농담하면서 했던 대화가 있어요.

"AI를 쓰더라도 우리가 괜찮은 이유는 이 바닥은 워낙에 연봉이 낮아서 AI 보다 사람이 싸지 않아? 그러니까 우린 괜찮아. ㅋㅋㅋ" (라고 말하면서 울고 있다..)

"이미 신규 인력 유입이 끊긴지 15년은 되어 가는데, 여기서 사람을 더 짜르고 싶어도 짜를 수가 없을껄. 이미 최소 인력으로 운영하고 있는 상태인데?"

네... 이 펌웨어 바닥은 이미 시궁창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AI의 습격으로 부터 조금은 더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입니다.

댓글 (17)

  • 상준

    상준 Lv.1

    25.12.17 · 220.♡.117.252

    완전 동일한 업무는 아니지만 embedded 시스템 개발자들은 그나마 조금 더 버틸거라는데에 절대 공감합니다.
    마지막 두 가지 농담(? 진실 아닐까요 ㅎㅎ)과 결론에도 공감하네요. ㅜㅜ
  • 토끼토끼

    토끼토끼 Lv.1

    25.12.17 · 211.♡.147.193

    요즘 제가 개발자의 탈을쓴 잡부인데, LLM 나오고서부터 겁나는게 없습니다.
    뭐든지 시작하는데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바닥부터 위까지... 지니처럼 땅하고는 안 되지만...
    작년과 비교해서 보면, 그 깊숙한 일도 곧잘하고, 오류 나오거나 안되는 상황 설명하면, 솔루션도 아주 잘 주네요.

    2년전 챗GPT 열풍불때와 비교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발전을 했는데... 이런식이면 2030년쯤되면 코딩은 다 AI가 할것 같습니다.
  • DuDoong

    DuDoong Lv.1

    25.12.17 · 122.♡.134.238

    공감합니다. 비싼 기계/로봇/프로그램 들여서 싼 인력을 대체하는 데 쓸 순 없죠.
  • 에헤라디야

    에헤라디야 Lv.1 → DuDoong 작성자

    25.12.17 · 76.♡.185.129

    그리고 AI가 혹시나 맛탱이 갔을 때 이것을 확인하거나 고쳐줄 엔지니어가 최소한 딱 한 명이라도 필요한데... 우리는 이미 한명만 있지요 :)
  • L

    lucidcoma Lv.1

    25.12.17 · 211.♡.201.134

    저도 펌웨어 밥을 먹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올해 AI 코딩 어시스턴트 파일럿 도입을 마쳤고 내년부터 본격 도입입니다.
    제 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ㅠㅠ
  • 에헤라디야

    에헤라디야 Lv.1 → lucidcoma 작성자

    25.12.17 · 76.♡.185.129

    종사하고 계신 펌웨어가 어느 분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해당 펌웨어의 타겟 SoC가 공개된 정보가 많은 제품이라면 AI 한테 빠르게 자리를 위협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타겟 SoC에 대한 정보를 구글링해서 얻을 수 없다면 (그러니까 스팩과 SDK, BSP가 비공개인 제품) 의외로 AI 어시스턴트가 업무에 별로 도움이 안됨을 체감 하실겁니다.
  • 노숙호소인

    노숙호소인 Lv.1

    25.12.17 · 121.♡.41.42

  • 노숙호소인

    노숙호소인 Lv.1

    25.12.17 · 121.♡.41.42

    그래서 임베디드 하다가 풀스택 하다가 다시 임베디드로 업무 비중을 늘리고 있습니다
  • Dev조무사

    Dev조무사 Lv.1

    25.12.17 · 106.♡.249.210

    개발조무사로서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ㅜ,ㅠ
  • 문없는문 Lv.1

    25.12.17 · 115.♡.177.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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