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기념_출산기(出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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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딴길 106.♡.9.136
작성일 2024.06.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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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앙을 출산한 지 어언 100일, 아기 100일이면 이제 토막잠에서 통잠을 잘 무렵이라 엄빠들의 고충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은 뒤집기 단계, 잡고 일어서기 단계, 단계별 이유식 정도로 관심사가 옮아가게 되지요. 지금 사춘기가 되어 매일 다채로운 인성을 보여주는 아들을 보면, 15년 전 그날이 전생의 일처럼 여겨집니다. 네, 전생에 저는 참 바람직한 엄마였네요.

다모앙의 성장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이미 여러 일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온갖 사건 사고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될성부른 싹의 다뫙은 이미 바람직한 아기이며, 바람직한 엄빠들(운영진?)과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유년기, 사춘기, 성인기를 잘 거쳐 국내 최고의 바람직한 커뮤니티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 첫 아이 출산기를 다뫙 100일 기념으로 올려 봅니다. 다뫙의 출산과 100일을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잘 자라거라, 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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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기(出産記)


1. 나라에게 - (2010. 5. 7. 01:50)

이슬을 보고 쓴다. 나라야, 지난 10개월간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네 덕분에 엄마는 비교적 좋은 생각, 가벼운 마음 맑은 눈빛을 가졌었다고 생각한다.

여느 때보다 쉽게 용서가 되고 미련 없이 단순하게 사물이 보였다. 이거, 너 때문이지? 이유 없이 많이 기뻤고 많이 웃었어.


실제로 현실이 그렇게 기쁘고 웃을 일만 있지 않았을텐데, 나는 좀 평소의 나답지 않게 참 많이도 웃었다. 물론 막달인 최근 어느 시점에서는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지. 사랑받고 보살핌 받고 싶은 만삭의 내가 친정엄마를 향해 쏘아댄 분노의 화살은 가히 짧고 굵게, 매우 강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봄눈처럼 녹아버렸다.


너를 맞을 준비를 대충 마치긴 했어. 산후조리 짐까지 다하면 택시 하나에 꽉 찰 정도의 짐이 꾸려졌다. 일회용 기저귀만 한 박스로구나. 시나 수필도 읽고, 음악도 듣고 했던 임신 중기 즈음을 빼고는 너에게 그다지 특별한 태교를 해주지 못해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많이 웃고 기뻤으니까 엄마의 엔돌핀으로 너 또한 즐겁고 행복했으리라 믿으니.


저녁 먹은 것을 다 토하고 새벽 한 시 오십 분쯤 너로부터 신호가 온 뒤, 지금껏 잠들지 못해 한 줄 쓴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파오는걸 보니 오늘이나 내일쯤 널 만나게 되는가 보다. 나라야, 마지막까지 힘내. 너랑 나의 파트너 십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보는 결전의 날이 될거야. 엄마도 최대한 너를 도울게. 많이 힘들지 않게 쑴풍! 나와줘야 해. 사랑한다, 우리 아기. ^^


2. 병원이 싫었어요.

37세 노산이라 주변 관심이 많았다. 한창 일할 나이에 무슨 늦둥이냐고, 뜬금없는 디스에 웃기기도 했다. 회사 지척 수원에서 유명한 모 산부인과에서도 35세가 넘는다는 이유로 특별대우와 관심을 받았는데, 기형아 검사를 비롯한 이후의 모든 산전 검사와 검사결과에 대한 반응이 그랬다.

검사비 50만원이 훌쩍 넘는 양수검사를 꼭 해야 하냐는 질문에 수치 얼마가 넘었으므로 꼭 받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우아한 여의사와 훌륭한 병원시설에 대해 첫 불신이 생겼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에 대한 안내는 없다. 초음파로 촬영된 태아를 보여주고 심장 박동 소리로 상담을 대신한다. 잘 자라고 있어요, 정상이네요. 산모의 불안에 기댄 전문가 특유의 소통방식과 권위의식에 두 번째 불신이 생겼다.

인터넷을 통한 분노의 검색으로 양수검사, 촉진제, 무통 주사, 출산환경 등에 대한 대안 등을 공부하면서 내가 반드시 굴욕 의자에서 다리 벌리고 제모하고 관장하고, 간호사의 폭언과 의사의 의료적 무심을 견디면서까지 병원 출산을 강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근본적 회의가 생겼고, 그 대안으로 가정 분만과 조산원 분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3. 조산원을 찾다.(2010. 3. 어느 날)

수원에 있을까, 하고 조산원을 찾아본다. 하나쯤은 있겠지. 그러나 추측은 놀라움으로 변하고 전국의 조산원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는 사실에 경악. 출산 관련 기관으로 등록돼 있다면 시도마다 최소 열 개는 넘고 전국적으로 수백 개는 되지 않을까 했던 내 상식을 뒤집는다. 그나마 경기도권에는 세 군데 정도 눈에 띄는데, 안산에만 두 군데가 있다. 8개월이 되었으니 이제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 000 조산원에 상담예약을 잡는다.

나름 유명한 분인 것 같은데, 직접 전화를 받고 예약시간을 조정하길래 놀랐다. 찾아간 곳의 시설이 생각보다 열악(주차장!)하여 재차 놀랐다. 조산원의 현주소가 실감되었다. 한 시간 반 동안 조산사와 대화 중 다소 불안했던 마음을 꽉 붙드는 그분의 말과 태도에 나와 신랑은 편안히 출산일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자, 나는 조산원에서 나라를 만나는 거다.

4. 나라야, 언제 나올거니?(2010. 4. 어느 날)

예정일이 다가오는데 배만 볼록하고 출산징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남들은 치골도 아프고 밑도 빠질 것 같다 하고 불편함이 극심하여 빨리 낳기만을 바란다는데, 딱 부러지는 증상 없이 몸도 가벼워 사무실 근처 자전거 운동기구를 하루에 오백 번씩 타도 아무렇지가 않다.

이러다가 예정일 훌쩍 넘기겠군.

원장님도 초산이라 좀 늦을 수도 있단다. 또 아이가 훌쩍 클 수도 있으니 열심히! 운동할 것을 경고한다. 자전거 타기 오백 번으로도 모자랄 판이라 합장 합족도 오백 번으로 늘렸다. 아, 짐볼도 구입, 하루 한 시간씩 취침 전 굴려주시고. 고통에 대한 초조함은 별로 없다. 출산 순간을 연상하며 마인드콘트럴 하고, 뱃속 아이와 손발이 잘 맞도록 나라와 대화하며 마음을 다독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라야, 우린 잘 할 수 있어.”

5. D-2(2010. 5. 7. 01:50)

예정일 이틀 앞두고 휴가를 신청한다. 일요일이 예정일이니 꽉 채워 근무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그 날 새벽, 이슬을 보았다. 아,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예정일보다 앞선 나라의 탁월한 선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녀석, 제법인데? 그 순간부터 나는, 마치 업무지시를 받은 말단직원처럼 매뉴얼 대로 움직이고 있다. 새벽 두 시쯤 이슬을 보고, 네 시쯤 양수가 샌 듯한 느낌이 들자마자 누군가가 준 쑥에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여 한 대접 밥을 말아 먹는다. 간밤에 마신 술로 인사불성이 된 신랑이 침대에 널부러져 있던 그 시간, 신랑에 대한 원망도 분노도 없이 내 할 일을 한다.

일단 여섯 시가 되면 조산원에 전화하고 회사에 갈지 말지에 대해 결정한 다음, 진행 사항을 지켜봐야지. 이슬이 보였다고 바로 낳는 것도 아니라며? 양수가 샌 건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아. 일단 잠을 좀 더 자자. 아랫부분에서 규칙적이지 않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미약한 시작이 쓰나미 같은 나중을 예고하는 거겠지.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고, 나는 ’싸이‘에 ’나라야‘로 시작되는 작은 글 하나를 남긴다.

6. 진통이 오면 고기를 먹는다.(2010. 5. 7. 13:30)

본격적으로 시작이 맞는 것 같다는 원장님은 일단 출근을 권하신다. 혼자 고통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다는 조언이다. 나는 동의했고, 씻고 화장하고 출근하여 그날의 업무를 보았다. 업무인수인계가 주된 일, 오가는 지인들에게 짧은 이별을 나누기에 적당한 시간. 진통이 오면 고기를 먹으란 말, 절대 따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나는 차돌박이가 너무 먹고 싶다.

친정엄마와 오빠를 모시고 우리 넷은 소고기 전문점으로 가 차돌박이와 등심을 먹는다. 그 시각 진통은 이십 분마다 한 번씩 오고 있다. 엄마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십 분당 세 번씩 진통이 올 때까지 견딜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좀 느긋하다. 먹다 말다 반복하며 식사를 마치고 조산원에 갈 시간을 체크한다. 오 분 마다 한 번씩 진통이 반복되고 이거다 하는 느낌의 진통이 한번 휩쓸고 지나자 원장님이 오라는 시간은 상관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이건 아마도 나라가 시킨 일 같다. 나는 뱃속 나라의 지시를 받는 훌륭한 참모일 뿐!

7. 나라야, 안녕?(2010. 5. 7. 20:20)

우리나라 도로에, 안산에, 이렇게 많은 과속방지턱이 있다니. 한 번씩 흔들릴 때마다 운전 중이던 신랑에 최대한 신경질을 줄이고 부탁했다. 천천히.. 천천히.. 원장님은 생각보다 일찍 온 우리를, 아직 한참 남았는데 서둘렀구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신다. 하지만 나는 한참 더,를 절대 기다릴 수 없었을 뿐, 진통이 올 때는 입을 열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에 누워 나라의 움직임과 자궁수축을 온전히 느끼며 상황에 집중하고자 애쓴다. 다음 진통에 대한 두려움이 기다림으로 변할 때까지 약 한 시간이 지났다. 자궁이 생각보다 빨리 열리고, 열두 시를 넘어 어버이날에나 나라가 나올것이란 예측을 훌쩍 뛰어넘어 약 다섯 시간을 앞서 진진통으로 접어들었다. 원장님도 흥분, 신랑도 흥분, 나는 그런 흥분에 개의치 않고 계속 나라와의 작업에 몰두한다. 이제 곧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좀 더 빠른 진행을 도운 듯.

“나라 나온다, 머리가 보여. 조금만 더 힘내, 나라 엄마!”

원장님의 격려와 도움 속에서 어디서 그런 힘과 요령이 생기는지, 한 번 힘 줄 때마다 비약하는 다른 힘이 덮쳐 오는 때를 잘 기억하고 있다가 매번 같은 방법으로 힘을 쓴다. 뭔가 새로운 기술을 발견한 것 같은 뿌듯한 느낌? 막판 ‘수박이 *꼬에서 나오는 듯‘한 최후의 순간을 지나 나라가 내 가슴 위로 올라온다. 신랑은 서툴고 긴장했지만 최선을 다해 나라와 나를 도왔다. 간밤의 숙취로 쓰린 배를 안고 내 배와 본인의 배를 쓰다듬느라 좀 많이 바쁜 듯 보였지만.

태맥을 잡아보고, 탯줄을 끊고, 후처리를 하고 정리하는 동안, 내 가슴 위에 올라와 있는 아이에게 속말을 걸어본다. ‘나라야, 안녕? 넌 정말 최고로 센스있는 아기구나. 너랑 나랑의 파트너십은 정말 끝내줬어!’

8. 시간은 지속된다.(2010. 5. 17)

조산원에서 나라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산후조리도 산후조리원에서 했을 것이다. 모자 동실이나 태아의 백분 나체법도 몰랐을 것이고, 출생 후 한 시간 안에 젖을 빨려야 한다는 사실도 몰라 지금 완모하고 있는 모유수유는 꿈도 못 꾸었을지도 모른다. ‘폭력 없는 탄생‘, ‘인권 분만‘, ’태아의 심리학‘ 등의 용어나 책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이 도대체 내 아기에게 무슨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무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무통 주사를 맞을지 말지, 유도분만을 할지 말지를 고민했으리라.

노산이었으므로, 나라가 늦게 태어날지도 몰랐으므로, 4키로에 육박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나는 양수검사 때와 같은 고민과 번민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이다. 상업의학은 존재한다.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여 분신의 일이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산모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최후의 카드를 선택하도록 은근히 강요한다. (물론,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자연 출산을 하지 않은 산모들 또한 모두 자신의 몸과 아기에 대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선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그 용기가 가져다준 자유와 그 자유로부터 오는 뿌듯함과 자존감의 상승은 실체가 있다. 내 아이와 내가 조화롭게 해낸 일련의 일들이 앞으로 어떤 일들이 가능하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간혹 우리는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나라야, 그때 우리 참 멋지지 않았니? 네가 안에서 밀고 엄마가 밖에서 끌고, 둘도 없는 환상의 복식조였어. 인생도 아마 그런 걸 거야. 어떤 고난도 그때의 기억과 경험으로, 씩씩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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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_2016년 8월 5일 둘째도 조산원에서 낳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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