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중독 (220.♡.66.232)
2024년 7월 11일 PM 03:39 · 수정됨(15:53)
천일 금주를 목표로 금주 중입니다.
애초에 일만 시간을 목표로 금주를 시작했는데, 무사히 달성했습니다.
이제는 딸이 수능 볼 때까지 금주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위스키와 칵테일을 즐겼기 때문에 영원히 금주할 계획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지금도 잔병치레가 있어 금주로 건강이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금주를 그만두면 건강이 나빠질까 걱정이 될 뿐입니다.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은 제가 일만 시간을 넘기고 나서 신나게 술을 마시기를 기대했지만, 금주 기간이 연장되어 실망한 기색이 있습니다.
동료들의 반응은 "본인이 힘들지 않으면 오래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 정도이지만, 사실 금주가 전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금주의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하다 보니 "확 마셔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를때도 있습니다.
가족 중에서도 저 혼자만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어서, 식탁 위에는 와일드 터키 롱브렌치 반 병을 포함해 평소 즐기던 위스키가 몇 병 있습니다.
홀짝 마셔버리면 그만입니다. 부드 부들한 녀석이 목에 넘어갈 겁니다.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봅니다. 금주의 장점중에 하나인 알콜에 민감해진 감각들이 여러가지 향을 전보다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익숙한 향들이 다양하게 느껴집니다. 훌렁 마시고 휴향 가득 코로 내뿜으며 여유롭고 싶어집니다.
깰랑 말랑 아슬아슬하게 한가닥 남겨진 위태로운 금주의 벽이 나름 재미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코스트코에서 진로 30도 담금주 4리터짜리 용량이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있어서 두 병을 사왔습니다.
가성비가 최고였습니다. 인삼주, 녹용주, 야관문을 고민하다가, 마침 제철인 매실을 사서 매실주도 담갔습니다.
100일이 지나면 과육을 버리고 술만 보관할 계획인데, 삼 년 정도 숙성시켜 금주가 끝났을 때 한 잔 마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다른 금주의 장점 중 하나는 주류 구매에 대한 면책입니다.
아무도 10리터 가까이 술을 사들고 오는 저에게 "술 좀 작작 마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시지 않으니까요.
비싼 위스키는 부담되지만, 특가로 나오는 데일리 위스키는 죄책감 없이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주 중에도 구매한 술들이 꽤 됩니다. 진열장에 가득한 술병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안 마시니까요.
만약 누군가가 왜 마시지도 못할 술을 그렇게 많이 사느냐고 묻는다면,
귀금속류를 제외하고 유통기한도 없고 감가상각도 없는 공산품이 또 있다면 말해달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유일한 공산품이니까요. (혹시 다른 것이 있나요?)
금주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술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며,
1,000시간, 100일이 지날 때마다 기념으로 한 병씩 구매하는 재미도 있고,
목표를 정해두었기 때문에 바라보며 참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다른 이유로 금주를 해야 해서 평생 술을 다시는 마시지 말아야 한다면,
그 끝없는 절제는 결국 한 번은 끊어질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참아왔다가 한순간 한 모금으로 모든 것이 리셋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고 상심이 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감 기간을 정해 놓고 시작한 일만 시간 금주는, 정작 도달했을 때 술을 마시기가 아까웠습니다.
다음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마치 레벨업 같았습니다.
혹시 금주를 목표로 하시는 분이 있다면, 단기간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금주 자체로 대단한 효과가 있지는 않았지만요.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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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끼
24.07.11 · 1.♡.148.2
- 녹
녹차중독
→ 꼬끼 작성자
24.07.11 · 220.♡.66.232
진정한 음주는 혼술이 아닐까 했었습니다.
오롯이 나랑 술만 있는 시간이었죠.
중독은 남한테 피혜를 줄때부터가 시작이라고 하니까 오히려 혼술이 깔끔할지 모르겠습니다. -
다다서나정
24.07.11 · 223.♡.204.144
대단하십니다 일단 일주일 금주부터 시작을 해봐야겠네요 - 녹
녹차중독
→ 다서나정 작성자
24.07.11 · 220.♡.66.232
정말 별거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음주를 시작하고 한달만이라도 술 안마시고 넘긴적이 거의 없더라구요.
간에게 안식년 같은걸 줘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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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섹수술이나 사랑니발치로 인한 금주 외에는 따로 금주 해 본 기간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은 빈도를 줄여가고 있습니다.
특히 혼술은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해서, 더 지양하고있습니다.
남은 기간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