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생활을 접고 좋은 동네로 이사하고 느낀 점...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따라란 211.♡.183.230
작성일 2024.07.22 04:41
3,319 조회
18 추천
글쓰기

본문

길지는 않고 몇 개월간 자취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학업 상 이유도 있었고 제가 독립을 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요.


자취 생활에 한창 불쾌감이 커져가던 찰나 본가가 강남권으로 이사를 했고, 이에 같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취한 곳은 서울의 전형적인 원룸촌입니다. 조선족 등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아니고, 생활환경이 극악하게 나쁜 지역도 아닙니다. 생활환경 자체는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느껴 입주하기도 했고요. 지역비하가 될 수 있어 지역명은 쓰지 않겠습니다.





여느 젊은이들이 그렇듯 자취의 시작은 의욕적이었습니다. 요리, 집안일을 원래 잘 하고 열심히 하던 만큼 이는 문제가 없었고요. 세탁기, 상하수도, 냉장고 등 많은 부분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하고 교체하느라 돈도 깨나 썼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무의식적으로 자취방에 가까워지는 것 자체가 싫어졌습니다. 일하던 곳이 강남이었는데 거기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감정이 항상 컸습니다.


마침 친구들이 있는 곳이 용산역 부근이었는데요. 왜인지 퇴근 후에도 항상 그 쪽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강남에서 용산까지 교통이 불편함에도 이상하게 가기 싫었습니다.


방이 좁아서는 아니었습니다. 방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은 다름아닌 환경이었습니다.


아무리 건물이 신축이고 관리가 잘 되고 있어도, 원룸촌 그 특유의 어두침침한 분위기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잿빛처럼 느껴진달까요. 분명 맑은 날인데도 사람들은 항상 뭔가 피폐해 보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던 그 감정의 원인을 느끼고 나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주변에 공원도 있고 생활편의시설도 많았지만, 환경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길은 항상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쓰레기로, 어떤 날은 음식물로, 또 어떤 날은 담배꽁초들로…


심지어 어떤 날은 길바닥에서 쓰레기 봉투와 음식쓰레기 봉투를 난자하는 아줌마도 있었습니다. 한두 번의 일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쓰레기 조각들은 길을 뒤덮고 악취가 극심했습니다. 왜 저러나 의문은 들었지만 도무지 가까이 가고 싶단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두려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안 갈 정도로요.


건물이 신축이건 구축이건 상관 없이 악취가 잦았습니다. 그 악취의 사유도 대소변, 하수구, 음식쓰레기 등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건 역시 흡연이었습니다. 집 밖에서 담배를 핀단 개념 자체가 없는건지. 계단, 공중화장실, 창고, 주차장 등 온갖 공용공간에서 담배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현관문 앞에 잠시 둔 자전거 헬멧에다 쓰레기를 버리고 간 이웃집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체 계단실에 왜 소변을 보나요?


의문스러울 정도로 좋은 차들이 자주 보였습니다. 최신형 G80, G90, S클래스, 포르쉐 등. 그런데 공통적으로 틴팅이 극도로 진했습니다. 그리고 운전 습관은 차종 가릴 것 없이 매우 험했습니다. 인도가 따로 없는 주택가임에도 마치 시골길 고라니를 대하듯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적으로 달려드는 운전자들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잿빛이기만 한게 아니라 비뚤어진 경우도 많이 보였습니다. 외모를 전혀 관리하지 않는 사람들,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는 사람들, 사이비 종교인들, 싸우는 취객들,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 길고양이 밥그릇도 종종 보였습니다.


아침 출근길에는 멀리 있는 지하철역으로 갔습니다. 왜냐면 가까운 역으로 가려면 원룸촌 사이로 가야 했지만, 멀리 있는 역은 차도를 따라서 갔거든요. 어떤 빌런이 나오고 어떤 쓰레기가 터져있을지 몰라 너무 싫었습니다.







이사온 지역은 대단한 부촌은 아니지만, 생활환경이 좋기로 알음알음 소문난 곳입니다.


이 곳의 생활수준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주민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가족 단위가 많이 거주합니다.


도시의 조경, 배치, 일련의 것들만이 중요한건 아니더라고요. 전에 살던 곳도 나름 배치가 괜찮은 곳이었지만 이 곳과는 생활 환경의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우선 예상치 못 한 쓰레기가 없습니다. 예상치 못 할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항상 그게 그 자리입니다. 누군가 쓰레기를 길에 버린다던지,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 시비를 건다던지, 길에서 담배를 핀다던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흡연자들은 모두 흡연부스에 들어가 담배를 피며, 담배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친절합니다. 엘레베이터에 타면 항상 인사를 하고, 먼저 열어주며, 비켜주고 배려를 합니다. 작은 아이들도 존댓말로 인사를 합니다.


차가 많이 막히지만 이 곳 주민들은 매너가 있습니다. 급하지가 않습니다. 외부 차량이 아파트 출입을 시켜달라는 난동 외엔 경적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길이 막혀도, 신호가 걸려도, 우회전 시 일시정지를 해도, 조금 천천히 가도 다들 똑같이 느긋하게 갑니다. 보행자가 나타나면 항상 먼저 멈춥니다.


악취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4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상가를 가도 악취가 나지 않습니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더울지언정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화장실도 항상 깨끗합니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단순히 산책을 할 뿐인데도 그 느낌이 너무도 다릅니다. 사람들의 표정에 활기가 있단 느낌이랄까요. 화목하게 가족 단위로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꼭 결혼해서 저런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조잘조잘 떠들어대는걸 보면 참 귀엽습니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 표정에 구김살이 없고 편안합니다. 무언가 부탁을 해도 너무 흔쾌히 들어줍니다. 그냥 밝습니다. 누군가에게 성을 내거나 시비를 거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는 만족합니다. 하지만 제가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계속 이런 곳에 살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방금 전에 찾아보니 좀 더 상급지인 잠실 리센츠 12평형의 전세가가 5억 원대 정도이네요. 매매는 10억 정도이고요. 여기에 혼자 사는건 큰 부담이 없지만 저도 결혼을 하고, 애가 생기고, 집을 사게 되겠지요? 그래서 33평형을 찾아보니 어이쿠, 25억 원이로군요.


이러니 다들 혼자 사는걸 택하나봅니다. 미래에 제가 만날 분이 고소득자라 해도 25억을 오로지 집에만 지불하는건 쉽지 않겠네요.


글쎄요… 이 지역을 떠나고 싶지는 않고, 더 나은 지역도 별로 없고, 유일한 문제는 돈이로군요. 그것도 아주 많은 돈.


그냥 모르겠습니다.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과연 제가 이런 생활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요?


과욕 같지요. 하지만 저는 이전의 환경 같은 곳에는 결코 가고 싶지 않고, 지금의 환경과 같은 곳에서 아이가 자랐으면 합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육아는 더 더 머나먼 미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게시물이 없습니다.
댓글 15 / 1 페이지

트라팔가야님의 댓글

작성자 트라팔가야 (58.♡.217.6)
작성일 07.22 05:26
“악취” 단어 보니, 영화 <기생충> 생각나네요.

lonelyworld님의 댓글

작성자 lonelyworld (223.♡.179.29)
작성일 07.22 07:12
오줌 냄새나는 엘리베이터, 항상 깨져 있는 거울, 담배로 지져있는 엘리베이터 버튼...

비슷한 경험을 해서 많이 공감합니다.
1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LiNE님의 댓글

작성자 LiNE (210.♡.102.188)
작성일 07.22 07:42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하는지 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죠
저도 항상 인사하려고 노력합니다

크리안님의 댓글

작성자 크리안 (58.♡.210.7)
작성일 07.22 07:58
보통의 삶이 이렇게도 어렵습니다 ㅎ

페퍼로니피자님의 댓글

작성자 페퍼로니피자 (27.♡.242.71)
작성일 07.22 08:02
꼭 잠실만 아니어도 서울의 왠만한 대단지 구축 아파트들도 상황은 비슷할겁니다. (좋은쪽으로) 신도시의 신축아파드들은 말씀하신것들 외에 아이들로 인한 생기(?)도 덤으로 느낄수 있죠. 엘베 타고 내릴때마다 배꼽인사 하는 아이들 보면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밴플러님의 댓글

작성자 밴플러 (119.♡.246.61)
작성일 07.22 08:30
메모 : 부자....

으앙...

크루저님의 댓글

작성자 크루저 (211.♡.200.163)
작성일 07.22 08:56
서울의 여러 지역들을 살아보면서 느낀 게 저랑 비슷하네요.

좋은 동네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나를 비켜갔다면 그렇지 못한 곳은 내가 그것들을 비켜가야 (피해가야) 합니다

눈팅이취미님의 댓글

작성자 눈팅이취미 (182.♡.218.38)
작성일 07.22 08:57
경기도권도 좋습니다. 수도권은 일단 너무 비싸니까요.

도시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도시 (221.♡.50.211)
작성일 07.22 09:22
주변환경따라 강남지역도 그렇지 않은 곳도 있죠. 위에 덧글도 있지만 아파트 지역이 관리적 용이성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을 뿐이죠.
잘살던 못살던 공부 잘 하던 공부 못하던 인성과 상관없지만 사람들 편견이 큰것과도 유사합니다.

그리고 가장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은 통계 자료를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강남지역이라고 삶이 밝다면 대한민국 큰 문제인 자살율이 낮아야 겠지만 강남지역이 서울 다른 지역보다 낮지 않습니다.

항상바쁜척님의 댓글

작성자 항상바쁜척 (221.♡.25.20)
작성일 07.22 09:41
지방이지만 나름 경제력 있다는 사람들 아파트에 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에 걸맞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출근때마다 담배 피우는 사람때문에 인상 찡그리고, 새벽 가리지 않는 층간소음에 포기 상태네요. 어느 지역이둔 그냥 다른 사람들과 무난하게 생활 가능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좋은 곳인 것 같아요.

pillllll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pillllll (221.♡.114.92)
작성일 07.22 10:54
'깨진 유리창'인거죠

쓴물단거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쓴물단거 (118.♡.246.124)
작성일 07.22 14:27
아파트가 깨끗한 건 상응하는 관리비를 지불해서 라고 생각해요. 관리인들이 상주하며 즉각 치우고 수리하고 쓸고 다듬으니 낡아도 깔끔한거죠. 주민끼리 얼굴 덜 붉히는 것도 자치규약도 있고 관리실을 중간에 낄수있으니 그나마 덜 한거고요

원룸촌이 우중충한거는 이 모든 보호막이 벗겨지고 주민끼리 알아서해야하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해요.

따라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따라란 (211.♡.188.103)
작성일 07.22 16:19
@쓴물단거님에게 답글 네, 그 점도 크긴 합니다. 원룸은 각자도생이다보니 개판이 되더라고요. 지금 아파트는 수천 세대의 거대단지인데 직원분들이 트럭(!) 타고 다니면서 열심히 갈고 닦는 모습을 보면 너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밤에도 급한 일 생기면 와주시고요. 리센츠 12평을 알아본 것도, 어지간한 원룸/오피스텔 들어가느니 관리비 및 관리수준을 생각하면 아파트가 훨 낫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볼빨간르누아르님의 댓글

작성자 볼빨간르누아르 (106.♡.194.250)
작성일 07.22 18:10
아직 사회 초년생이신 듯 한데, 교통이 괜찮은 경기도 신도시에 자리를 잡으시는 것도 좋습니다.
2기 신도시들 엄청나게 살기 좋습니다.
전세로 사시다가, 3기 신도시나 서울권 특별공급 도전해보세요.
나라에서 보장하는 로또입니다.
9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따라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따라란 (211.♡.183.230)
작성일 07.22 20:22
@볼빨간르누아르님에게 답글 2, 3기 신도시 모두 한 번 이상 임장을 가봤지만 2기 판교, 3기 과천 외엔 메리트가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과천 특공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쓰기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