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채무(?) 상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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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용]
안녕하세요.
교보문고에 오면 늘 책 향기가나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책 향기가 마음을 가라 앉히기는 커녕 오히려 마음은 두근거리게 하네요.
사실 저는 살면서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습니다.
모든 잘못은 바로 잡을 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15년여전 고등학생 시절, 저는 이곳 교보문고(광화문)에 꽤나 자주 왔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으려는 의도로 왔지만 이내 내것이 아닌 책과 각종 학용품류에 손을 댔습니다.
몇 번이나 반복하고 반복하던 중 직원에게 팍 걸려 마지막 훔치려던 책들을 아버지께서 지불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두 아이를 낳고 살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내게 갚지 못한 빛이 있단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 도둑질을 걸리기 전까지 훔쳤던 책들과 학용품. 그것이 기억 났습니다.
가족과 아이들에게 삶을 숨김없이 이야기 하고 싶은데 잘못은 이해해줄 지언정 그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말하고자 하면 한 없이 부끄러운 것 같았습니다.
너무 늦은감이 없잖아 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책값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교보문고에 신세졌던 만큼 돕고 배우며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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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창업주 故 신용호 회장이 세운 영업지침 다섯가지
1.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 쓸 것.
2.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 것.
3.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4.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5. 책을 훔쳐가더라도 도둑 취급하며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클라시커님의 댓글
진작부터 지주회사로 전환되었어야 할 회사인데, 금융지주로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보문고이고
공정위에서도 금융자본인 교보생명이, 산업회사에 해당하는 교보문고를 영위하고 있음에도
교보문고 매각을 종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예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반디도 나가 떨어지는 마당에, 교보만한 덩치를 대체 누가 사가겠습니까...)
신용호 회장 일화나, 후계구도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 일화가 떠오릅니다 ㅎㅎㅎㅎㅎ
요즘에 교보생명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올때쯤이면, 주주 중에서 교보문고에 대한 볼멘소리가 제법 나온다고 하던데
워낙 창업주의 의지가 강했던 사업 영역이고, 아들인 신창재 씨도 선친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아직까진 어째저째 계속되고 있긴 하다고 하더군요.
+) 덧붙이자면,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 진행중이긴 합니다. 어피너티 등과의 협상이 잘 안되고 있긴한데...
젤리님의 댓글의 댓글
교보문고 신창재 회장 과 FI,PE 들과의 지분 때문에 안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제일 적절합니다.
클라시커님의 댓글의 댓글
저도 좀 업데이트 해야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Jedi님의 댓글
버미파더님의 댓글
이런 분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겁니다.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게 아니라요.
뚜루루님의 댓글
plaintext님의 댓글
교보문고의 저런 원칙을 볼때마다 제가 어이가 없는 건
하필 운이 없는 직원을 만나서였겠죠?
오래전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교보문고 나들이를 가며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매장을 나오던 찰나였습니다.
그때 그 봉지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종로와 광화문을 돌아 다니다가 구매했던 무언가였을거에요.
그런데 어떤 교보 문고 직원이 저희를 엄청 불쾌하게 잡아 채더군요.
그러더니 냉큼 비닐봉지를 내놓으라고 재촉하더니
그냥 팍 잡아채서 비닐봉지 내용물을 마구잡이로 확인하더군요.
훔치는 건 딱히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항의하기에는 너무 부족했던 나이였을까?
한참을 불쾌한 기분으로 지내왔고 여전히 교보문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것 하나가 되었네요.
교보문고의 역사와 철학이 어떤지는 잘 알겠지만
저와 같은 경험이 어디 저 뿐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시 그 직원이 저희가 잘못한게 없음을 알게 되었으면
최소한 "학생 미안해요" 라는 말 한마디를 하는게 어려웠을 까요?
마구 풀어헤친 저의 비닐봉투를 그냥 두고 사라지더군요.
아직도 미스테리 하지만, 제가 굳이 기업 따위에게
넓은 아량과 이해심을 발휘할 이유도 없는거 같고 말이죠.
보통 이런 내용 보면 그때 생각이 떠올라서 불쾌해도
이내 귀찮아서 헛 웃음 지으며 지나치긴 하지만
오늘은 다시 한번 그때의 경험을 글로 남겨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metalkid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