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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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현 110.♡.116.160
작성일 2024.08.0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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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아나운서를 아십니까.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0년이 된 한 아나운서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8월4일)를 맞아 MBC 라디오가 오늘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특집 ‘여름날의 재회’를 방송한다고 합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1부 라디오 다큐멘터리 △2부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진행하는 ‘FM 영화음악’, 그리고 11시부터 자정까지 △3부 20주기 특집 공개방송 등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특히 2부는 AI 기술을 이용해 정은임 아나운서의 생전 목소리를 재현했다고 합니다. 또 정은임 아나운서가 2024년에 방송을 하고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 지 고민해 대본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1992~1995년, 2003~2004년 두 차례에 걸쳐 MBC 라디오 심야 ‘FM 영화음악’ DJ로 활동했습니다. 차분하고 지적인 목소리와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삶과 사회에 대한 깊은 사색까지 전해 새벽 방송임에도 수많은 매니아층들이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심야방송이라 경계가 덜한 탓이었든지 철거민의 아픔을 사연으로 전하면서 영화 ‘파업전야’ OST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거나, ‘인터내셔널가’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29일간의 크레인 고공농성 중 목숨을 끊은 고 김주익 한진중공업 전 노조위원장을 언급하며 이런 오프닝 멘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정 아나운서는 이처럼 종종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멘트에 앞세웠습니다. 당시로는 매우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정 아나운서는 리버 피닉스와 장국영의 팬이라며, 관련 영화를 자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1968년생인 그는 386과 X세대의 특성을 동시에 지녔고, 이런 이종(異種)의 감성이 결합돼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 그대로 전달된 듯합니다. 무엇보다 맑은 눈으로 모든 사안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는 그의 특성이 ‘영화’, ‘심야’, 그리고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마치 바로 옆에서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친구, 언니 같은 느낌을 받았을 듯합니다. 그것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가 잊히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철거민 이야기를 전하는 1995년 방송에서 그는 “80년대에 끝나야 될 일들이 90년대까지 이어질 때 참 답답하죠?”라고 말하는데, 2024년에 이 말을 들으니, 답을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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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9 / 1 페이지

metalkid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metalkid (113.♡.111.110)
작성일 08.05 01:22
자동차 사고로 전도되고 난 후 참 안타깝게 2차 사고에서 돌아가셨군요.
늦게나마 명복을 빕니다.

파라메딕님의 댓글

작성자 파라메딕 (208.♡.104.244)
작성일 08.05 01:29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씩 떠오르는 분이라 이 글이 더 반갑네요.

새알님의 댓글

작성자 새알 (14.♡.44.169)
작성일 08.05 01:32
AI로 재현(?)한다는 기사를 본 것 같습니다.
29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위즈덤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위즈덤 (180.♡.164.192)
작성일 08.05 01:52
그립습니다

쥐돌스님의 댓글

작성자 쥐돌스 (211.♡.171.21)
작성일 08.05 01:58
정은임도 늦은밤 방송듣던 그시절도 그립습니다.

내수동욤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내수동욤 (211.♡.196.74)
작성일 08.05 01:59
20년.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네요.
92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는 입구에  오셔서
어느 고등학생의 마음과 밤의 시간을
수년간 가져가신 고운 님.
밤늦게 잠들면 다음날 피곤해했던
그 학생의 수면습관을 바꾸어 놓은 그리운 분.
저는 여전히 늦게 잠드는 사람이 되어있네요.
오랜만에 앨런파슨스프로젝트의 time을 들으며
잠을 청해야겠습니다.
14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영심이™님의 댓글

작성자 영심이™ (122.♡.218.51)
작성일 08.05 02:12
벌써 20년이군요. 마지막 라디오스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루하지만, 다모앙에 제가 올린 시그널음악 모음도...
https://damoang.net/music/306?sst=wr_good&sod=desc&sop=and

Veritas님의 댓글

작성자 Veritas (125.♡.93.235)
작성일 08.05 02:17
신해철, 노회찬 그리고 정은임
아..정은임...ㅠㅠ

급시우님의 댓글

작성자 급시우 (223.♡.73.145)
작성일 08.05 03:35
ㅡ 학교 다닐때는 영화음악 들으면서 종종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던 1인
ㅡ 어느 작은 영화제에서 사회 보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건만 누군지 미처 알아보지 못해서ㅠㅠ 두고두고두고 후회했던 ㅜㅜ
ㅡ 사고 소식과 며칠째 사투를 벌인다는 뉴스에 안타까웠던 ㅠㅠㅠㅠㅠ
ㅡ 정은임 아나운서가 끝내 세상을 떠난 날...비가 많이 내렸던게 기억납니다 ㅠㅠ

helper7님의 댓글

작성자 helper7 (175.♡.137.56)
작성일 08.05 04:00
렉스턴 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참 안타깝게 돌아가셨던걸로 기억하네요..
벌써 20년이 지났군요.
다시한번 명복을 빕니다.

Jei0님의 댓글

작성자 Jei0 (223.♡.206.125)
작성일 08.05 05:39
어 금요일저녁에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이거 기사작성날짜가 언제일까요

포스원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포스원 (211.♡.46.93)
작성일 08.05 06:26
매력있어서 가끔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사고 소식도 들었고요
벌써 이십년전 일이 되었네요

하산금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하산금지 (59.♡.215.155)
작성일 08.05 07:39
본문을 약간 고쳐봤습니다. ^^

“벌써 끝나야 될 일들이 21세기까지 이어지고, 더더욱 심해질 때 참 답답하죠?”
“새벽 3시, 저 위에서 바라본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miir님의 댓글

작성자 miir (165.♡.7.41)
작성일 08.05 08:13
팟방이나 유튜브로 지금도 가끔 듣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의 차분하면서도 정겨운 서울 말투가 아주 매력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밤에 듣던 기억이 새록새록..

라그랑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라그랑지 (118.♡.132.45)
작성일 08.05 08:30
다시 영음에 복귀했을때의 멘트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고공크레인에서 시위가 끝나지 않은거 같아요.ㅜㅜ

맑은생각님의 댓글

작성자 맑은생각 (118.♡.12.83)
작성일 08.05 08:33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새벽까지 깨어있을 때면 듣던 FM영화음악이였습니다.
그 시절 엽서 보내던 추억이 아련하네요.

사람만이희망이다님의 댓글

작성자 사람만이희망이다 (118.♡.2.228)
작성일 08.05 09:43
"자택 몇 평에 얼마, 자식 소유 아파트 얼마, 시골에 있는 임야 얼마, 골프 회원권 얼마, 자동차, 현금, 증권, 저축 얼마, 도합 얼마. (사이)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요즘 공직자들이 공개하는 재산 명세를 보다 문득 나는 얼마를 갖고 있나, 이런 것들 챙겨 보고픈 마음이 들었어요. 여러분도 자신의 것들 한번 챙겨보세요. 오늘 여러분께 저 정은임의 재산을 공개하겠습니다. 아, 사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재산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제 방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책들, 영화음악을 비롯한 CD와 LD 한 백오십여 장,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어머니가 해주신 금반지, 그리고 자동차는 아직 없구요. 월급은 차비, 식비, 책 사고, 또 공부하는 친구들 물주 서는 일, 이런 데 다 나가구요. 글쎄요. 근데, 사실 제가 생각하는 재산은요. 이것보다는 어, 국민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 모아 놓은 것, 또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들, 그리고 언니 어머니가 제게 남겨준 쪽지, 뭐 이런 메시지들. 이렇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또 하나 있어요. FM 영화음악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 그것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청난 부자입니다."
ㅡ1993년 3월 20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LaBelleEpoque님의 댓글

작성자 LaBelleEpoque (110.♡.5.26)
작성일 08.05 13:51
십여년전 심한 공황장애로 산으로 들로 걸어다니며 정은임 아나운서 방송을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참 감사하고 안스럽고 미안하고 그럽니다. 고인의 가족 모두 평온하시길 응원합니다.

엘리노어릭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엘리노어릭비 (112.♡.212.219)
작성일 08.05 15:19
20주기. 한동안 참 많이 생각하고 울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무 아련하기만 합니다. 지난 20년간 참 많은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갔고.. 그래서 아쉬움이 쉴 틈 없이 지내오는 과정에서 이렇게 또 정든님을 추억하게 되네요. 참 좋아했습니다. 아주아주 많이... 좋은 사람은 왜 그리 서둘러 떠나는 것일까, 했던 분 중 한 분..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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