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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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피너츠 119.♡.209.47
작성일 2024.08.1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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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예수

정호승

1.
예수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 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가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랑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을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등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 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고 어둠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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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동화 되었다가

이미 서서히 잊혀졌던 이 시가

현재의 이 시대에 다시 읽어보니 

젊었을 때로 다시 빠져드는 기분이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정말 이상한 괴물들이 잠깐 나타났다치고,

곧 시간이 지나면 스러저가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불쾌하고 화만 솟구칩니다.


바라던 세상은 오지않고

나이만 먹어가는데

과연 나는 그 세상을 못보고 눈을 감을것인가

볼수는 있는것일까?

궁금할 따름입니다.


댓글 9 / 1 페이지

흰돌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흰돌 (211.♡.49.29)
작성일 08.17 00:54
오래간만에 읽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비해 삶은 너무 짧군요...

피너츠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피너츠 (119.♡.209.47)
작성일 08.17 00:54
@흰돌님에게 답글

queensrych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queensryche (14.♡.25.2)
작성일 08.17 00:56
아련히 머나먼 나라 풍경같았는데
오늘저녁 뉴스인듯합니다.

피너츠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피너츠 (119.♡.209.47)
작성일 08.17 00:57
@queensryche님에게 답글

주먹먼저님의 댓글

작성자 주먹먼저 (1.♡.12.142)
작성일 08.17 02:11
이 시 정말 오랜만이에요.
말씀대로 만감이 교차하는 시네요. 고맙습니다.

피너츠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피너츠 (119.♡.200.48)
작성일 08.17 06:56
@주먹먼저님에게 답글

BlackTiger님의 댓글

작성자 BlackTiger (58.♡.101.243)
작성일 08.17 08:56
세상은 요지부동이어도 한 사람의 예수로 살아가는 것이 참 된 제자도의 길이라 배웠습니다.

피너츠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피너츠 (119.♡.200.48)
작성일 08.17 09:07
@BlackTiger님에게 답글
멋진 말이네요.

BlackTiger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BlackTiger (58.♡.101.243)
작성일 08.17 09:18
@피너츠님에게 답글 말처럼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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