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응급실 상황이 차라리 더 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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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테세우스의뱃살 61.♡.190.185
작성일 2024.09.0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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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서울에 있는 큰 대학병원 응급실은 밤이고 낮이고 전쟁터였습니다.

환자들이 오면 침대 확보가 우선이었고 전문의나 중환자실 상황은 체크하지도 못했습니다.

환자가 조금 몰리면 침대가 없어서, 조금 괜찮은 환자들은 접이식 의자 가져다가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의식이 없거나 앉아 있지도 못하면 시멘트 바닥에 시트 한 장 깔고 눕혀 놓고 진료했습니다. (손이 찢어진 환자를 의자에 앉힌 채로 간이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고 전공의가 마주 앉아서 꼬매주고 있었네요)

그렇게 바닥에 눕힌채로 기도삽관도 하고, 중심정맥관도 꼽고, 각종 처치를 다 했습니다. 피 토하는 환자 진료하다가 피를 뒤집어 쓰는 일도 다반사고, 무슨 환자인지도 모르고 그냥 옆에서 죽어가니까 심폐소생술부터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환자들도 간단하게 처치가 가능하면 다행이지만, 그 큰 병원에서도 입원실이 부족해서, 중환자실이 확보되고 입원할 때까지 2,3일씩 응급실에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기도삽관을 해도 인공호흡기가 없어서 인턴들이 돌아가면서 앰부백을 짜 줘야만 환자가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건 사고도 많고, 환자들도 많이 죽어나갔지만 그 때는 우리나라 전체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심한 상황이어서, 다들 그러려니 했습니다.


당시에는 응급실 전문의제도가 시행초기라서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이 막 생겨나던 시기고, 당연히 전문의는 없었습니다. 각 과의 전공의들이 연락을 받고 내려와서 진료하거나, 내과 같이 환자가 많은 과는 아예 전공의 한 명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과에서는 교수들이 전공의의 보고만 받고, 정식입원이 되지 않아서 적절한 처치가 되기 힘들기도 했습니다.

환자들 이송체계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그냥 밀고 들어오는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지방 중소병원에서 환자 이송문의가 오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할 수 밖에 없었고요.

환자나 의료진이나 스트레스가 말도 아니게 높고 힘들었지만 많이 배우기도 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조금씩 개선이 되어갔습니다. 



10여년 사이에 정말 노력과 투자로 눈에 띄게 발전을 거듭해서 세계적 수준의 진료에 근접했었는데, 어느 틈에 순식간에 박살이 나네요.

이제 그런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죽어가는 환자들은 어쩌면 더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12 / 1 페이지

달짝지근님의 댓글

작성자 달짝지근 (125.♡.218.23)
작성일 09.03 01:26
아휴...

nice05님의 댓글

작성자 nice05 (175.♡.18.168)
작성일 09.03 01:46
의료시스템을 아직 완전히 망가뜨리진 못했고
목표달성을 못했으니 이 상황은 지속되거나 악화될테고, 말씀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겠죠.

이런 식으로 우수한 시스템 대부분을 박살낸 후엔 슬슬 마약을 풀겁니다.
그렇게 삼류국민으로 전락시키고 나면 뭐 내선일체야 어렵지 않게 이뤄지겠죠.

지자들이 슬픈 건, 전략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리고 국회에서나 국민과 공무원 수 비에서나 우리가 숫적 우위에 있음에도,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죠.

지금 같은 시기라면, 삼김시대 처럼,
야당이 시위를 이끌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민주주의자 행태를 보면, 끌어내릴 수 있는 최소 인원이 자발적으로 한번에 모이는 건 불가능할 것 같거든요.
말만 무성할 뿐......

모닝커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모닝커피 (221.♡.153.35)
작성일 09.03 07:29
그 비슷한 시절 인턴할때 응급실 정말 지옥이었습니다. 응급실 스케쥴이면 출근이 하기 싫고 스케쥴때문에 인턴 포기 중도하차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스트레스 였죠. 명목은 12시간 근무 12시간 수면 다음날 다시 12시 근무 인데 출근해서 한번을 못쉬고 뛰어다니고 노티가 잘못되면 응급실에서 해당과 레지던트에게 맞고 12시간 자러 집에 갔어도 환자 문제로 다시나오라고 하고 … 지금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거 같습니다.

액숀가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액숀가면 (118.♡.11.80)
작성일 09.03 08:59
@모닝커피님에게 답글 응긎실 의사를 늘려서 12시간 교대에서, 8시간  or 6시간 교대로 했으면 의사도 낫지 않았을까요?

테세우스의뱃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테세우스의뱃살 (106.♡.199.244)
작성일 09.03 09:05
@액숀가면님에게 답글 지금도 의사들에게 근로기준법은 유명무실하지만 당시에 전공의는 1주일에 120시간 근무가 예사였던 시절입니다.
그냥 사람을 갈아넣었습니다.
요즘도 반 농담삼아 (새학기가 시작하는) 3, 4월에는 죽을 병아니면 응급실 가지 말라고 하는데, 그 때는 농담이 아니게 들렸죠. 실제 통계에서 (입원환자도) 사망율이 높게 나와서 다들 정신차리라고 야단 맞은 경우가 있었을 정도니까요.

요즘은 응급실 전문의들도 시간 맞춰서 훨씬 적게 근무합니다.

모닝커피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모닝커피 (182.♡.27.198)
작성일 09.03 12:12
@액숀가면님에게 답글 저희때는 인턴때나 레지던트때 100일당직이라는게 있었어요. 100일 동안 밖을 못나가고 병원에만 대기하며 온콜 상태... 지금 생각하면 소송걸릴 일들이죠. 잔인했던 그때

액숀가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액숀가면 (221.♡.177.118)
작성일 09.03 13:45
@모닝커피님에게 답글 안타깝네요. 의사가 더 충분했으면 그런 근무는 안했을텐데요.

테세우스의뱃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테세우스의뱃살 (106.♡.199.244)
작성일 09.03 16:34
@액숀가면님에게 답글 의사 숫자보다는 그냥 응급실을 담당하는 부서 자체가 걸음마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응급의학과에서 1차적인 담당을 하니까 다른 시스템으로 정착이 되어 있습니다.
100일 당직같은 경우는 그냥 처음에 들어온 친구들한테 빨리 일 적응시킨다는 명목이었죠.

DEFT님의 댓글

작성자 DEFT (121.♡.110.211)
작성일 09.03 07:30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도 결국엔 사람의 몫이더군요.

닥터말리그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닥터말리그 (112.♡.36.42)
작성일 09.03 08:52
그 시절엔 다들 힘들게 진료했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의사와 보호자가 서로 위로하며 보듬어주었지만 지금은 환자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눈에 불을켜고 문제가 있나 없나 쥐잡듯 의료기록 뒤져서 소송하는 보호자들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을것 같으면 애초에 응급실 수용을 꺼려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죠. 결과적으로 누구한테 해가 될지는 뻔하구요

테세우스의뱃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테세우스의뱃살 (106.♡.199.244)
작성일 09.03 09:01
@닥터말리그님에게 답글 당시에도 사나운 보호자들도 있었고 보호자에게 맞은 제 동료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같은 막무가내식 환자/보호자는 좀 적었던 것 같네요(진짜 조폭들은 그 때도 똑같았지만요). 요즘은 소송까지 걱정해야되는 세상이니, 좀 아니다 싶은 환자는 받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케틀벨러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케틀벨러 (220.♡.255.185)
작성일 09.03 14:40
감히 말하건데 지금의 의료대란은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돈이 떨어질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정부는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은 환자를 생각하지 않지만, 결국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법이죠. 정부로서는 사람이 죽든 말든 급할 게 전혀 없고, 사직한 의사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모아놓은 돈이 떨어지겠죠.
결국은 돈 급한 놈이 먼저 병원으로 돌아갈 겁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이죠.

이 과정에서 제 때 치료받지 못하고 외면받는 환자들은 정부나 의사들의 관심 밖 사안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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