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눈알’을 제거해본 적 없다”…레바논 의사가 전한 부상자들 상황
어
어설픈딴따라 (59.♡.170.51)
2024년 9월 20일 AM 11:35 · 수정됨(16:57)
조회 1,816 공감 0
이스라엘..테러
다 민간인..
팔레스타인들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왔을때 히틀러의 대규모 학살에 분노하고 같이 슬퍼하면서
챙겨 줬다고 하던데..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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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짝지근
24.09.20 · 125.♡.218.23
- 당
당무
24.09.20 · 114.♡.198.95
이스라엘은 세계의 악입니다. -
Kkmaster
24.09.20 · 1.♡.134.156
팔레스타인 인들이 유대인들이 히틀러 학살 피해 왔을때 챙겨 줬다는 낭설은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 인지 모르겠네요
훗날 팔레스타인 민족 주의 운동의 축으로 불리우는 아민 알 후세이니의 경우 히틀러와 협력 했고 공개석상에서 유대인을 찾아내는 족족 죽여 버리라는 소리까지 했는데요
뭐 일부는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란 소리를 하긴 하는데 히틀러와 협력 하기 전에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반 유대주의 운동 했던 인물이고 이후 발칸 쪽으로 건너가 나치에 협력하는 무슬림 사단 만드는데 공을 세웠고
홀로코스트 당시 라디오에 나와 유대인을 인류의 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발언을 하고 당시 탈출하는 유대인을 유럽 국가들이 막아야 한다고 떠들고 했는데요
팔레스타인이 홀로코스트 유대인을 도와 줬다 뭔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둘은 그 증오의 뿌리가 깊습니다
공존 따위 가능한 사이가 아니에요 -
BBARCAS
→ kmaster
24.09.20 · 39.♡.180.119
1920년에서 1948년까지 팔레스타인은 영국령이었습니다? -
Kkmaster
→ BARCAS
24.09.20 · 118.♡.93.90
네 영국령 시절이죠 -
BBARCAS
→ kmaster
24.09.20 · 39.♡.180.119
말인즉슨 영국령에서 유대인이 탄압을 당했다는 건가요? -
Kkmaster
→ BARCAS
24.09.20 · 1.♡.134.156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과 아랍민족주의자들 간의 서로간의 테러와 싸움이 있었고요 오히려 영국군은 양측을 중재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민 알 후세이니는 독일로 날아가 히틀러에게 협조를 구하고 독일이 북아프리카에서 싸우고 있을때 팔레스타인 방향으로 진격해서 유태인들 제거 해야 한다고 요청을 하지요
하지만 당시 전쟁 상황상 독일에선 묵살했지요
그리고 간접적이긴 하지만 발칸에서 무슬림 여단 만들때 모병책으로 활동하고 이 활동이 발칸쪽의 유대인 학살 에 간접적 영향을 줍니다
물론 발칸쪽 영향은 학자마다 좀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
BBARCAS
→ kmaster
24.09.20 · 39.♡.180.119
영국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간 분쟁의 뿌리임을 모르시지는 않으실듯 싶습니다.
히틀러가 악역이긴 하지만 영국 프랑스 다 식민지 제국주의를 하던 시절 약소아랍민족주의자가 도움을 구할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을꺼라 생각합니다.
아랍인이 사는땅에 유대인을 풀어놓고 중재하려고 노력했다는게 맞는걸까요? -
Kkmaster
→ BARCAS
24.09.20 · 1.♡.134.156
유대계와 아랍계간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갈등은 영국의 이중계약 벨푸어 선언과 멕마흔 선언 때문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양측다 영국의 이중계약의 피해자이긴 한데 벨푸어 선언 당시 아니 그 이전 오스만 영향력 아래에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이 없던건 아닙니다 오스만 시절에도 유대계 이민자들이 많았지요
물론 아랍계에 비해 소수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계 이민자들이 들어왔을때 그들에게 토지를 판건 그지역의 아랍 지주들이었습니다
판매된 토지들도 생산성이 낮은 땅이었지만 상당히 고가에 판매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아랍지주들도 판매에 열성적이었지요 문제는 그 때문에 그지역에서 살던 아랍계 소작농들은 살곳을 잃게 되었고 이게 갈등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본격적인 갈등은 1936년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 대봉기 부터고 그 때 내세웠던게 아랍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였어요 그리고 먼저 공격을 해서 사상자를 낸것도 이때 아랍민족주의자들 이었습니다
이때 주도한게 아민이죠 그 이후로 서로간의 보복으로 1947년까지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났어요
단순히 영국의 이중약속과 이스라엘 건국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건국 시점에는 양측 모두 증오와 갈등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
BBARCAS
→ kmaster
24.09.20 · 39.♡.180.119
영국의 사기계약과 아랍쪽의 반유대정서를 알면서도 굳이 약속된땅이라며 들어가신분들은 무죄일까요?
아시겠지만 갈등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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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손이 영구히 장애를 얻었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까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