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 연구실의 식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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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구실 문화와 미국의 연구실 문화는 참 많이 다릅니다.
미국이라도 교수가 어느나라 사람이냐, 그리고 또 누구냐에 따라 문화가 또 다르기도 한데요..
제가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했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지금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겪은 문화적인 차이가 갑자기 옛 추억과 함께 떠올라서 글을 써 봅니다.
먼저 저는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면서 인격적으로나 교육자로서도 정말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불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렇더라도 제가 존경하는 인생의 스승님이자 참 교육자로서 저의 롤모델이신 분입니다.
저희는 랩에서 연구과제를 하면서 금요일마다 과제 회의를 했습니다.
과제가 적든 많든, 금요일에는 과제 진행상황을 다 모아서 보고하고 발표도 하고 논의도 하는 긴 회의를 했고요,
그리고 금요일 점심때는 교수님이 연구비 카드로 밥을 사셨죠.
그래서 교수님이랑 랩 사람들이랑 금요일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친목도 다지고 했었습니다.
물론 금요일 뿐만아니라 평소에도 랩 사람들이랑 밥 먹으러 많이들 같이 다니기도 했고요 ㅎㅎ
미국에 왔더니, 10여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모여있는 랩에서 일하는데 아무도 같이 식사를 안합니다 ㅎㅎㅎ
저는 매일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제 자리에서 밥을 먹었고,
몇몇 다른 학생들도 비슷하게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각자가 먹고싶은 시간에 각자 자리에서 조용히 먹거나,
아니면 조용히 사라져서 혼자 밖에서 무언가 사먹고 조용히 들어오곤 했어요.
매주 연구과제 미팅을 하는건 마찬가지긴 한데, 교수님이랑 1:1 로 미팅을 합니다.
짧게 만나서 보고하고 논의도 하고, 그러고 다음 학생이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갑니다.
다른 학생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랩에 매일 나와서 잡담도 하고 서로 질문도 하고 하면서 알게되는게 더 컸죠.
물론 다 같이 모여서 하는 미팅도 가끔 하는데, 한 학기에 한번 발표할 기회도 잘 안돌아옵니다..
그래서 웬만큼 결과가 성숙했을 때 정도나 되어서야 발표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랩에서 식사를 각자 알아서 혼자 하는거랑 마찬가지로.. 교수님이랑도 밥 먹을 일은 없습니다 ㅎㅎ
다만 매 학기마다 한번씩 교수님댁 뒷마당에서 pot luck 을 했었어요..
각자 자기가 만든 음식 (또는 사온 음식) 하나씩 가져와서 다 같이 펼쳐놓고 나눠먹고 헤어지는겁니다..
그게 같이하는 유일한 식사였습니다.
글로만 적으면 굉장히 비인간적이다 생각이 드는데..
저는 사실 박사과정 지도교수님도 제가 존경하는 교육자로서의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지도교수님 잘 만난 복은 진짜 큰거 같아요.
굉장히 인간미 넘치시고, 인내심도 좋으시고, 학생이 스스로 물고기 잡는 법을 터득하도록 배려해 주시던 그런 분이셨어요.
아무튼 그 영향인지.. 저도 제 랩을 운영하면서 컨퍼런스 가서 식사 같이하는 경우만 제외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년에 한번 정도만 학생들이랑 밥을 같이 먹습니다.
제 경우는 추수감사절 때에 학생들을 초대해서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해서 대접하곤 합니다.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이라, 주로 미국 학생들은 각자 집에 가니 잘 못 오고,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모입니다..
평소에는 저도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나 파스타 샐러드 같은 들고가기 쉬운걸로 싸서
연구실에서 혼자서 먹고.. 사실 그게 저한테도 편하고 좋기는 한데요..
갑자기 문득 한국에서 랩 사람들이랑 왁자지껄 하게 다 같이 가서 같이 밥먹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ㅎㅎ
식사 문화가 참 많이 다르다는게 문득 실감이 납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한국의 다같이 식사하는 문화를 적용하기엔 문제점이 너무 많습니다.
첫째로 밥 먹는 돈은 결국 각자가 내야하니.. 밥 먹으러 가자고 얘길 하기도 좀 곤란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회의비 등에 식비 지출이 가능한데, 미국은 다른지역 방문할때 (= 출장) 아니고서는 식비를 못 씁니다.
그리고 둘째로 각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제약이 너무 다릅니다.
제 학생들만 하더라도, 무슬림 식이랑 힌두 베지테리언 이렇게 두명만 껴도 먹을 음식이 거의 남지를 않습니다.
추수감사절 때 학생들 초대할 때에도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매번 곤혹을 치르곤 합니다..ㅠㅠ
마지막으로 밥 같이 먹는 문화가 잘 없다보니..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왜? 무슨 특별한 일이야? 이런 분위기가 되기가 쉽고요 ㅎㅎ
그냥 평소에 당연하게 미국식 식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급 한국 랩 생활이 떠오르면서, 문화적으로 참 다르다는게 문득 느껴지네요..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읍읍님의 댓글의 댓글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clien11님의 댓글
그러다 보니, 식사는 한국인들끼리만 하게 되더군요. 나가서 같이 먹거나.. 휴게실에서 모여서 도시락 같이 먹거나..
혹시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면 2-3주 전에는 미리 약속해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뭔가 특별한 일 아니면 저녁식사 같이하잔 얘기도 꺼내기 힘들죠..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친한 동료중에 인도인이 몇 있는데, 약간 한국식 문화랑 호환성이 높아 보이더라고요~
조알님의 댓글
제가 박사과정 하던 동네에서는 교수랑 학생 사이에 서로 이름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들어서 Jane Doe 교수님 밑에 Gildong Hong 이라는 학생이 들어와서
첫 만남에 Dr. Doe 하고 부르면.. 보통 교수가 Call me Jane 하고 정리를 해 주곤 했죠..
그러면 사제지간에 Jane / Gildong 이런식으로 서로 이름부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별 어색한 일이 아니었고요.
제가 지금 일하는 학교가 있는 동네에서는 공적인 자리에서도 그러면 큰일날 얘기입니다 ㅎㅎㅎ
여기는 Dr. Doe 하고 꼬박꼬박 호칭을 붙이더라고요..
저도 첨에 제 첫 학생한테 제 이름 부르라고 했는데..
다른 동료교수가 귀뜸해 주더라고요.. 이동네 문화가 아니라고요 ㅎㅎ
근데 그래도 저는 제 학생한테 제 이름 부르라 합니다. 남들 앞에서만 그러지 말라 하고요.
(또 보니 저만 그런건 아닌거 같더라고요 ㅎㅎ)
0sRacco님의 댓글
개인적으로 교수와 학생은 수업과 연구상담으로만 보면 되지 밥 같이 먹으면서 공사구별이 무너지는 건 안 좋아하는지라 미국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김메달리스트님의 댓글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점심때마다 부장님이 국밥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얘기가 젤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 국도 안먹고 쌀밥도 잘 안먹는 사람이라.. 그치만 신입이라 어쩌겠어요..ㅠㅠ)
한 2년차 말 즈음 되어서부터는 부장님이 주도하는 그룹에서 종종 빠져서
저도 제맘대로 먹고싶은거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빵돌이라서 점심때 필리치즈도 먹으러 가고 샌드위치가게도 가고..
회사 관둘 날 맘속으로 정해놓고 다니던때라 눈치 안보고 엄청 홀가분하게 지내긴 했었네요..
BlueCircle님의 댓글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이빨님의 댓글
감정적인 교류 없이 공동 프로젝트를 잘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시스템보다는 관계에 의존하는 식으로 협업이 진행되다보니 많은 문제들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다만 공사구분이 명확하다보니 한국에 비해 좀더 인정사정 없는 상황도 많기도 합니다. 한국은 정말 일 안하는 대학원생도 윽박지르고 고성을 내가면 인격적인 모독을 해 가면서라도 어떻게든 끌고가서 졸업을 시키는 교수들이 많다면, 미국은 굉장히 일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소리지르거나 기분나쁘게 얘기할 일은 없지만서도, 일정기간을 투자해서 배우고 일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일이 진척이 되지 않고 실적 안나오는 대학원생은 그냥 조용하게 가차없이 해고한다든지 하는 일도 한국에 비해 매우 잦은 편이죠. 저도 제 학생을 해고했던 한번의 경험이 있습니다. 정말 제가 더 이상 잘 도와줄 수 없을 정도로 공을 들였는데도 여러 핑계만 대며 일 자체가 진척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했지만, 저도 한국적인 사고가 있어서 그런지 결정을 하는것도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빨님의 댓글의 댓글
이건 다른 얘기인데요, 일전에 저희 회사 지원자 중에 미국 나름 유명한 대학에서 석사를 받았지만 제대로 된 논문이나 연구실적이 없는 친구도 있던데, 랩실에서 해고되던가 하고도 학위 취득은 가능한가요?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hayandora님의 댓글
지도교수의 가장 좋은 덕목은 인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지도교수님도 그러셨어요. 그래서 저도 학생들에게 인내심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종종 쉽지 않을 때가 있네요.
조알님의 댓글의 댓글
그리고 저희 과에도 저 말고는 한국인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직장 내에서라도 한국 문화의 테두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은 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읍읍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