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 연구실의 식사 문화
조알

Lv.1 조알 (75.♡.52.153)

2024년 9월 22일 PM 03:33 · 수정됨(11. 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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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구실 문화와 미국의 연구실 문화는 참 많이 다릅니다.

미국이라도 교수가 어느나라 사람이냐, 그리고 또 누구냐에 따라 문화가 또 다르기도 한데요..

제가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했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지금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겪은 문화적인 차이가 갑자기 옛 추억과 함께 떠올라서 글을 써 봅니다.


먼저 저는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면서 인격적으로나 교육자로서도 정말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불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렇더라도 제가 존경하는 인생의 스승님이자 참 교육자로서 저의 롤모델이신 분입니다.


저희는 랩에서 연구과제를 하면서 금요일마다 과제 회의를 했습니다.

과제가 적든 많든, 금요일에는 과제 진행상황을 다 모아서 보고하고 발표도 하고 논의도 하는 긴 회의를 했고요,

그리고 금요일 점심때는 교수님이 연구비 카드로 밥을 사셨죠.

그래서 교수님이랑 랩 사람들이랑 금요일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친목도 다지고 했었습니다.

물론 금요일 뿐만아니라 평소에도 랩 사람들이랑 밥 먹으러 많이들 같이 다니기도 했고요 ㅎㅎ


미국에 왔더니, 10여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모여있는 랩에서 일하는데 아무도 같이 식사를 안합니다 ㅎㅎㅎ

저는 매일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제 자리에서 밥을 먹었고,

몇몇 다른 학생들도 비슷하게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각자가 먹고싶은 시간에 각자 자리에서 조용히 먹거나,

아니면 조용히 사라져서 혼자 밖에서 무언가 사먹고 조용히 들어오곤 했어요.


매주 연구과제 미팅을 하는건 마찬가지긴 한데, 교수님이랑 1:1 로 미팅을 합니다.

짧게 만나서 보고하고 논의도 하고, 그러고 다음 학생이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갑니다.

다른 학생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랩에 매일 나와서 잡담도 하고 서로 질문도 하고 하면서 알게되는게 더 컸죠.

물론 다 같이 모여서 하는 미팅도 가끔 하는데, 한 학기에 한번 발표할 기회도 잘 안돌아옵니다..

그래서 웬만큼 결과가 성숙했을 때 정도나 되어서야 발표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랩에서 식사를 각자 알아서 혼자 하는거랑 마찬가지로.. 교수님이랑도 밥 먹을 일은 없습니다 ㅎㅎ

다만 매 학기마다 한번씩 교수님댁 뒷마당에서 pot luck 을 했었어요..

각자 자기가 만든 음식 (또는 사온 음식) 하나씩 가져와서 다 같이 펼쳐놓고  나눠먹고 헤어지는겁니다..

그게 같이하는 유일한 식사였습니다.


글로만 적으면 굉장히 비인간적이다 생각이 드는데..

저는 사실 박사과정 지도교수님도 제가 존경하는 교육자로서의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지도교수님 잘 만난 복은 진짜 큰거 같아요.

굉장히 인간미 넘치시고, 인내심도 좋으시고, 학생이 스스로 물고기 잡는 법을 터득하도록 배려해 주시던 그런 분이셨어요.


아무튼 그 영향인지.. 저도 제 랩을 운영하면서 컨퍼런스 가서 식사 같이하는 경우만 제외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년에 한번 정도만 학생들이랑 밥을 같이 먹습니다.

제 경우는 추수감사절 때에 학생들을 초대해서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해서 대접하곤 합니다.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이라, 주로 미국 학생들은 각자 집에 가니 잘 못 오고,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모입니다..


평소에는 저도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나 파스타 샐러드 같은 들고가기 쉬운걸로 싸서

연구실에서 혼자서 먹고.. 사실 그게 저한테도 편하고 좋기는 한데요..

갑자기 문득 한국에서 랩 사람들이랑 왁자지껄 하게 다 같이 가서 같이 밥먹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ㅎㅎ

식사 문화가 참 많이 다르다는게 문득 실감이 납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한국의 다같이 식사하는 문화를 적용하기엔 문제점이 너무 많습니다.

첫째로 밥 먹는 돈은 결국 각자가 내야하니.. 밥 먹으러 가자고 얘길 하기도 좀 곤란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회의비 등에 식비 지출이 가능한데, 미국은 다른지역 방문할때 (= 출장) 아니고서는 식비를 못 씁니다.

그리고 둘째로 각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제약이 너무 다릅니다.

제 학생들만 하더라도, 무슬림 식이랑 힌두 베지테리언 이렇게 두명만 껴도 먹을 음식이 거의 남지를 않습니다.

추수감사절 때 학생들 초대할 때에도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매번 곤혹을 치르곤 합니다..ㅠㅠ

마지막으로 밥 같이 먹는 문화가 잘 없다보니..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왜? 무슨 특별한 일이야? 이런 분위기가 되기가 쉽고요 ㅎㅎ


그냥 평소에 당연하게 미국식 식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급 한국 랩 생활이 떠오르면서, 문화적으로 참 다르다는게 문득 느껴지네요..

댓글 (23)

  • 읍읍 Lv.1

    24.09.22 · 172.♡.186.199

    저도 북미에서 한국 교수 밑에서 석사, 그리고 현지인 밑에서 박사 과정을 겪으며 문화가 정말 정말 다르단점을 크게 체감했습니디.
  • 조알

    조알 Lv.1 → 읍읍 작성자

    24.09.22 · 75.♡.52.153

    저는 제 랩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유타 출신의 미국인인 박사 지도교수님의 영향이 더 컸는지.. 거의 미국식 랩 처럼 운영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미국이니 그게 자연스럽기도 하고요.. 다만 주변의 한국인 교수님들 보면 한국식으로 단체로 뭔가 많이 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으신거 같더라고요..
  • 읍읍 Lv.1 → 조알

    24.09.22 · 172.♡.186.199

    한국의 오래 전 대학원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신 분들도 있어요. 뭐 사실 전 한국서 대학원을 다녀보진 않이서 정확힌 모르지만, 다녀보신분들 얘기 들어보면 그런것 같더라고요.
  • 아이셔 Lv.1

    24.09.22 · 172.♡.54.248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ㅎ 감사합니다.
  • 조알

    조알 Lv.1 → 아이셔 작성자

    24.09.22 · 75.♡.52.153

    저도 십수년 전에 미국 처음 왔을 때 생각해보면, 문화적으로 참 달라서.. 어떤부분은 재미있고, 어떤부분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더라고요~
  • clien11

    clien11 Lv.1

    24.09.22 · 211.♡.127.212

    잠깐 미국에서 직장 생활 할 때가 생각나네요.
    그러다 보니, 식사는 한국인들끼리만 하게 되더군요. 나가서 같이 먹거나.. 휴게실에서 모여서 도시락 같이 먹거나..
    혹시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면 2-3주 전에는 미리 약속해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 조알

    조알 Lv.1 → clien11 작성자

    24.09.22 · 75.♡.52.153

    그쵸.. 저녁식사는 특히나.. 가족들이랑 함께하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느낌이라..
    뭔가 특별한 일 아니면 저녁식사 같이하잔 얘기도 꺼내기 힘들죠..
  • 조알

    조알 Lv.1 → clien11 작성자

    24.09.22 · 75.♡.52.153

    그리고 인도도 좀 한국이랑 문화가 비슷한 면이 있긴 합니다..
    친한 동료중에 인도인이 몇 있는데, 약간 한국식 문화랑 호환성이 높아 보이더라고요~
  • 조알

    조알 Lv.1 작성자

    24.09.22 · 75.♡.52.153

    미국 안에서도 지역마다도 또 문화가 다르기도 하다는걸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박사과정 하던 동네에서는 교수랑 학생 사이에 서로 이름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들어서 Jane Doe 교수님 밑에 Gildong Hong 이라는 학생이 들어와서
    첫 만남에 Dr. Doe 하고 부르면.. 보통 교수가 Call me Jane 하고 정리를 해 주곤 했죠..
    그러면 사제지간에 Jane / Gildong 이런식으로 서로 이름부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별 어색한 일이 아니었고요.

    제가 지금 일하는 학교가 있는 동네에서는 공적인 자리에서도 그러면 큰일날 얘기입니다 ㅎㅎㅎ
    여기는 Dr. Doe 하고 꼬박꼬박 호칭을 붙이더라고요..
    저도 첨에 제 첫 학생한테 제 이름 부르라고 했는데..
    다른 동료교수가 귀뜸해 주더라고요.. 이동네 문화가 아니라고요 ㅎㅎ
    근데 그래도 저는 제 학생한테 제 이름 부르라 합니다. 남들 앞에서만 그러지 말라 하고요.
    (또 보니 저만 그런건 아닌거 같더라고요 ㅎㅎ)
  • 0sRacco

    0sRacco Lv.1

    24.09.22 · 183.♡.168.15

    아는 이공계 교수 왈 ‘요즘 애들은 취직해 놓고서는 회의비가 내 돈이 아닌게 아닌 줄 아니까 인사와서 밥 먹고는 ‘교수님 잘 먹었습니다‘라면서 일어나더마‘라고…..속된 말로 까진거죠.
    개인적으로 교수와 학생은 수업과 연구상담으로만 보면 되지 밥 같이 먹으면서 공사구별이 무너지는 건 안 좋아하는지라 미국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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