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조커 폴리아되 2회차 감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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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퐁팡핑요 61.♡.123.162
작성일 2024.10.05 17:18
38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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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1회차 관람때는 '아... 영화 이거 참 정말 거지(?) 같이 만들었네!!" 라며 감독님을 탓했는데요.

어느분의 영화 평론을 보고 나서 '아서 플렉'이라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다시 감상해보고자 오늘 2회차 관람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혹시 나도, 그저 또 다른 한 명의 할리퀸이 되어 조커를 바라본건 아니었을까?' 라며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시작에 등장했던 만화가 처음에는 조커 1편 줄거리를 짧게 요약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주인공이 그동안 겪었던 심리적 불안감을 묘사한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죠.


아서 플렉이 법정에서 말한 것처럼 사실 '조커'는 없었습니다.

애초에 아서의 내면에 잠재된 근원적인 어둠일 뿐, 이중인격 등으로 구분지을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죠.





어떤 대상체를 빛이 감싸 안을 때 대상체가 서있는 바닥 밑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빛이 존재하는 한, 그 어둠은 사라지지 않고 대상체와 영원히 함께 하게 되죠.


초반에 만화 속에서 '그림자'로 묘사된 조커는 아서 플렉을 옷장안에 가두고 맘껏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결국 다시 아서에게 녹아들어 하나가 됩니다. 마치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된다는 복선 같은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조커 1편을 보고 이번 2편을 시청하러 온 관객들은 아서의 얘기를 들으러 온게 아니라 '조커'를 보고 싶었을 겁니다. 마지막 법정에서 아서가 고백한 뒤로 싸늘하고 차가운 시선을 표출했던 할리퀸 리의 모습은 어쩌면 관객들의 내재된 '기대감'의 붕괴를 나타내고자 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때로는 거짓말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 어둡고 찐득한 그림자만을 쫓아 열광하던 영화 속의 '할리 퀸'을 이 시대의 관객이자 우리들 안에 숨겨져있는 진짜 어둠이라고 이번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호옹이, 이게 바로 꿈보다 해몽? ㅋㅋㅋ). 



결국 이번 조커 2편은 보는 시각에 따라 수작이 될 수도 망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주인공 아서의 눈으로 바라본 2회차 감상에서야 마지막으로 바닥에 쓰러진 그 공허한 두 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통받는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분노와 두려움은 사실 한 몸이라는 것을... 어라...

그러고보니 TV를 통해 접하는 尹꼴통령의 지지율이 아직도 20%라는 소식을 마주하면서 겪는 감정과 비슷할지도요?!




댓글 8 / 1 페이지

비빌님의 댓글

작성자 비빌 (208.♡.104.184)
작성일 17:25
애시당초 조커 1편에서도 세상곳곳의 아서플렉을 도와주자 같은 것 대신 나 대신 세상에 침을 뱉는 조커에만 대중들이 환호했죠

2024년4월10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2024년4월10일 (118.♡.65.247)
작성일 17:25
어제 매불쇼 최강희님의 평론은
배리 나이스 였습니다

퐁팡핑요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퐁팡핑요 (61.♡.123.162)
작성일 17:29
다시 생각해보니 극중에 할리퀸도 의사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흔하디 흔한 정신과 심리학부 전공 졸업생이었는데... 그냥 조커에 열광했던 평범한 여성이였던 것입니다.

킹치만 우리 Yuji 킴 여사님은 무려 국민대 박사라구!

BECK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BECK (211.♡.25.130)
작성일 17:35
아직 안 봤지만  퐁팡핑요님의 해석이 맞을거 같습니다

만화처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만화처럼 (1.♡.72.42)
작성일 17:48
조커라는 캐릭터의 베이스가 디씨코믹스의 그것이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빌런의 탄생을 목도하고 더 나아간 이야기를 기대했을겁니다. 그래서 1편에 열광했고요, 2편에 이르러서는 감독이 글쓴이처럼 의도한 것도 있긴하지만(글 쓴분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코믹스의 캐릭터를 버리고 현실로 끌어내린 것도 모자라 바닥에 꼬꾸라박아버릴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감독이 전편의 선동적인 내용에 이어진 비평에 겁을 먹은게 아니냐는 비평이 나오는 걸 보면 여기서 더 나아가길 꺼린 것도 있는 듯 합니다. 거기에 잭니콜슨, 히스레저에 이은 새로운 캐릭터를 여기서 잃어버리게 돼서 아쉽기도 합니다.

Typhoon7님의 댓글

작성자 Typhoon7 (118.♡.74.109)
작성일 18:26

"배트맨, 그럼 저 조커가 그 조커가 아닌거예요?"
"그래. 또 다른 미친놈이지."

mongolemongole님의 댓글

작성자 mongolemongole (218.♡.3.34)
작성일 19:06
\\\\ 스포일러 ////

맞아요 그래서 관객을 (1편에서) 아서/조커 추종자로 만들어놓고 2편에서 아서가 조커를 버리니 관객/추종자가 배신감에 열폭할 수 밖에요 1편에서도 현실감을 중요시한 감독이 2편에선 아예 현실 안에 스크린을 구겨 넣어버리니 거리두기 효과가 사라지면서 이 사달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가가나 뮤지컬 노래 모두 주된 테마가 아니었던 거죠 (조커 팬도 화나고 가가 팬도 화나고)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면 '전염성 정신병'은 그래서 '조커-할리퀸'으로 퍼진 게 아니라 '조커1-추종자-조커2' 이렇게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외지 기사처럼 '이제 조커는 이름만 살아남았어요' 두번 보면 더 재밌나요? ^^

퐁팡핑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퐁팡핑요 (61.♡.123.162)
작성일 19:38
@mongolemongole님에게 답글 1회차 때는 분장한 '조커' 캐릭터 그 자체를 쫒으며 봤다고 한다면, 2회차 때는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시각에서 영화에 숨겨진 메타포를 찾아가며 봤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음악과 노래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어요. 당신이 준비가 될 때 함께 노래해봅시다."

B동에서 A동으로 넘어올 때, 음악치료 수업 선생님의 영화속 대사도 일종의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서 플렉이 상상과 현실을 오고가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장면들을 통해 약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의 조커를 받아들이고, 분노하고, 전율하고, 새 친구의 죽음을 지켜보고, 옛친구를 만나 후회하고, 사랑이라는 광기에서 벗어나 거짓된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고 두려움과 스스로의 죄를 고백해나가는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게 아닌가 싶은거죠.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또다른 아캄수용소의 관객(항상 근처에서... 그리고 TV를 통해 재판과정을 지켜보던 이름 없는 수감자)은 그러한 조커를, 아니 이제 더이상 조커가 아닌 아서를 부정하고 삭제해버립니다 (1회차 감상한 후의 제 모습이 오버랩되었어요).

마지막에 페이드아웃되며 피에 물든 칼을 들고 벽에 기대어 웃는 이도, 그리고 차갑게 식어가는 아서의 두눈을 바라보는 이도 모두 우리와 같은 관객의 시선인거죠. 그리고 그 웃음소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또다른 제2의, 제3의 조커는 계속 나타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다시 보길 잘한거 같아요.
덕분에 뒷맛이 좀 더 개운해진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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