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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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랑탕62 245.♡.196.77
작성일 2024.10.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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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어머님이 입원해 계시는 요양병원에 면회를 갑니다.

폐에 생긴 종양 때문에 입원하신 이후로 거의 기력을 회복하시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1985년 여름, 구속된 아들의 면회를 다니시던 어머니는 결국 한 달 넘게 앓아 누우셨습니다.

이유는 아들의 모난 말 때문이었습니다.

공안검사는 어머니를 불러 "당신 아들 때문에 후배들이 반성문을 쓰지 않고 있다. 당신 아들 하나만 반성문을 쓰면 모두 다 나갈 수 있는데 당신 아들이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다른 친구들을 선동하고 있다. 반성문만 쓰면 나가게 해 주겠다"고 협박과 회유를 했고 어머니는 급히 면회를 오셔서 저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말씀하셨지요.

어머님의 말씀을 듣가가 결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이제 면회 오지 마세요. 제게 반성문을 쓰라고 하시면 전 어머니 아들 아닙니다."

그리고 면회실 문을 박차고 나와 독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5분 남짓한 길에 핀 꽃들을 보면서 교도관에게 눈물을 감추기 위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 날, 정말 몇 번이고 교도관을 불러 반성문을 쓰겠노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0.65평의 독방이 그렇게 넓은 공간이었는지 결국 저는 교도관을 부르지 못했고 한달 넘게 어머니는 면회를 오시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그 날로 거의 한달 이상을 앓아 누우셨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지금까지 어머니는 단 한번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요.

못난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진 말을 내뱉지 않아도 될 터인데도 마치 그것이 제 신념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징역을 살고 나와서도 어머님께 제대로 용서를 구하지 못했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늘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마음의 병을 얻으셨고 오랜 시간 홀로 절망의 낭하로 침잠해 들어가셨지요.

1990년 대 후반,소위 운동권의 분열로 시민단체를 나와 택시운전과 농산물 중매인을 거치면서 결국 저 자신마저 병이 들면서 운동을 포기하고 고향집을 찾았을 때도 어머니는 늘 아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놓고 일을 하러 나가셨지요.

세상을 구하겠노라고 큰 소리를 치고 집을 나간 아들은 세상을 구하지도 못했고 그 세상에 오히려 타협하고 변절했지만 어머니는 결코 아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시지 않으셨지요.

이제 저 이외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시면서 지난 일요일에는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제게 작은 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늘 길 건널 때 차 조심해라"

하루 종일 어머님의 그 말씀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흰 머리가 희끗한 나이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사랑을 겨우 알게 되었지만 이제 그 어머니는 병 들어 누워계시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눈물처럼 도서관 창 밖을 적십니다.

넋두리 글 용서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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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7 / 1 페이지

채리새우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채리새우 (61.♡.207.155)
작성일 어제 15:54
먹먹합니다......

마루날님의 댓글

작성자 마루날 (59.♡.28.124)
작성일 어제 15:57
랑탕62님 같은 분들의 수고와 희생 덕분에 저희가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지 마시고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님이 쾌차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님과 소중한 추억 많이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TANK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TANK (219.♡.37.246)
작성일 어제 15:58
할말이 없어지는 것과 할말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말해야할지 모르는 경우는 결국 똑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적어주신 글을 읽고 그걸 동시에 느꼈습니다.

랑탕62님도 그리고 어머님도 손 꽉 잡아드리고 싶네요.
랑탕62님 애쓰셨습니다. 꾸벅

mlcc0422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mlcc0422 (119.♡.199.171)
작성일 어제 15:59
부모님 눈에는 환갑 가끼운 머리 희끗한 자식도 여전히 어린애 같은가봅니다.
아 처음에 1885년이 아니라 1985년이겠죠?

카카루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카카루 (211.♡.175.214)
작성일 어제 16:08
@mlcc0422님에게 답글 저도 잠깐 헷갈렸는데, 1985 같습니다 ㅎㅎ

온더로드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온더로드 (218.♡.160.70)
작성일 어제 16:01
세상을 구하겠노라고 큰 소리를 치고 집을 나간 아들은 세상을 구하지도 못했고==> 이런 분들의 무수한 시도가 있어서 세상이 변한겁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감사합니다.

Chemchem93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Chemchem93 (128.♡.184.5)
작성일 어제 16:04
저도 어머니께 전화 한통 드려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소소바라기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소소바라기 (121.♡.184.125)
작성일 어제 16:05
기력이 쇠해지고 자식들 일로 고민의 날들을 보내본 후에야 그시절 어머님이 해주시던 말씀들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당신 말씀이 옳았더라고 전해드리고픈데 그럴수가 없네요.

RE2PECT님의 댓글

작성자 RE2PECT (222.♡.128.124)
작성일 어제 16:08
이 글을 읽고 다시한번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metalkid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metalkid (14.♡.220.215)
작성일 어제 16:16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은 결코 다 헤아릴수 없지요.
다음엔 '어머니의 아들이라서 참 좋았어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라고 전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미 하셨을테지만 자꾸 해도 모자란 말이잖아요.

고치리전파사님의 댓글

작성자 고치리전파사 (112.♡.166.136)
작성일 어제 16:21
이런 사연을 들으면 부모님한테 잘해야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부모님과 함께 하면...항상 켜있는 TV의 종편채널...
(나의 신념과 부모님의 신념의 충돌...결코 변하지 않을 갭차이!!!)

파란단추님의 댓글

작성자 파란단추 (125.♡.183.165)
작성일 어제 16:24
랑탕62님의 치열한 삶에 감사드려요.

엄마가 되보니 알겠더라구요...
차조심하렴. 밥창겨먹으렴...이 말속에 사랑을 꾹꾹 눌러담아 건넨다는걸요....

누가뭐래도 어머님께는 태양같은 눈부신 아들이에요.
어깨펴시고 오늘 하루 힘내세요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인장선님의 댓글

작성자 인장선 (250.♡.81.244)
작성일 어제 16:26
용서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멋진 인생 살아오심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어머님께서 어서 일어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둠칫두둠칫님의 댓글

작성자 둠칫두둠칫 (27.♡.242.64)
작성일 어제 16:28
랑탕62님과 같은 분들 그리고 어머님과 같은 가족 분들의 희생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이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혹여 자책하지 마시고 남은 시간이라도 어머님과 좋은 기억 많이 남기시길 기원 합니다.

부드러운송곳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부드러운송곳 (253.♡.230.100)
작성일 어제 16:34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를 하셨고
그 덕분에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사는것 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런 아들 이기에 지금도 걱정을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어머님과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늘과땅사이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하늘과땅사이 (210.♡.41.179)
작성일 어제 17:23
랑탕62님과 같은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가 죄송한 마음이드네요
혹여라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께는 귀한 아드님 이시잖아요...어머님도 랑탕62님도 평안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물바람들판님의 댓글

작성자 물바람들판 (49.♡.55.87)
작성일 어제 17:49
랑탕62님과 같은분들 덕분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랑탕62님의 희생으로 지금의 자유를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하고도 고맙습니다. 어머님과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busker님의 댓글

작성자 busker (165.♡.65.108)
작성일 어제 17:50
많이 연배가 있으신 분이시군요 ㅜ
참 오래된 장면인데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선명하게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시는지... 마음이 다 헤아려지지 않네요.
어머니... 영원히 지울수 없는 오랜 흑백사진 같네요...

군포아재님의 댓글

작성자 군포아재 (118.♡.23.213)
작성일 어제 18:19
고맙습니다.
아직 멀었지만 덕분에 이만큼 이라도 이나라가 변했습니다.

초보아찌님의 댓글

작성자 초보아찌 (1.♡.123.211)
작성일 어제 18:30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자식이 갚을 길은 없죠.
그 사랑의 숭고함과 댓가 없음을 이해하는게  그저  보답하는 길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기적같이  어머님이 쾌차 하시길 빌겠습니다.

은과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은과현 (210.♡.88.240)
작성일 어제 18:31
혼란하던 시절 정의에 대한 신념으로 싸워주신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저보다 한껏 작아진 그리고 하얀 눈이 가득 내린 노모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얼마 없는 귀한 시간 더 귀하게 써야겠습니다.

폴셔님의 댓글

작성자 폴셔 (121.♡.117.112)
작성일 어제 18:32
힘든 길을 걸어 오셨군요
존경합니다

jayne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jaynee (182.♡.161.185)
작성일 어제 18:33
당신같은 분이 계셔서 제가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마음에 짐 거두시길 바라면서... 뭐라도 해드릴 수 있는 건 없네요.
그저 마음속 깊이  강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Icyflame님의 댓글

작성자 Icyflame (240.♡.72.142)
작성일 어제 18:37
그 시기에 큰 고생하셨네요ㅜ 감사합니다

별이만든나님의 댓글

작성자 별이만든나 (250.♡.196.252)
작성일 어제 18:39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열대키맨님의 댓글

작성자 사열대키맨 (58.♡.226.33)
작성일 어제 19:07
제 누님과 비슷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때는 집안을 힘들게하는 애물단지란 생각에
미워한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창문 밖 넘어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감사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많이 울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늘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Bcoder™님의 댓글

작성자 Bcoder™ (221.♡.162.27)
작성일 어제 19:16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무 생각이 없던 저 같은 사람이 민주시민 행세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랑탕62님 덕분입니다.

치명21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치명21 (210.♡.41.89)
작성일 어제 19:35
감사합니다. 저도 좀 전에 어머니께 전화 온거 일 핑계로 퉁명스럽게 끊었는데.. 반성합니다.
퇴근하며 다시 전화 드려야겠습니다 ㅜㅜ

버미파더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버미파더 (86.♡.70.19)
작성일 어제 19:35
죄송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 해도 늦거나 과하지 않습니다.
언제건 마음을 터놓고 사과하고 용서 받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랑탕62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랑탕62 (116.♡.103.143)
작성일 어제 20:30
퇴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니 넋두리에 많은 댓글이 달려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습니다.
사실 클리앙에 쓴 글인데 다모앙에도 올려달라는 한 분의 말씀을 듣고 올렸습니다.
하루 종일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위로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또 어머니 때문에라는 변명으로 이런 저런 변명을 달고 젊은 날의 신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순이 넘었지만 죽는 날까지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나옹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나옹 (124.♡.236.163)
작성일 어제 20:30
감사드립니다.  고생많으셨어요

Ligo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Ligo (221.♡.208.219)
작성일 어제 20:56
타협과 변절이라는 단어가 아프네요. 오히려 저는 암혹한 시대에 열정으로 찬란했던 그때 그 마음들을 한구석에 늘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랑탕님과 어머니, 가족분들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깊은 울림 있는 글, 감사합니다.

오호라님의 댓글

작성자 오호라 (252.♡.230.43)
작성일 어제 21:08
잘 오셨습니다

모모님의 댓글

작성자 모모 (124.♡.140.181)
작성일 어제 21:09
부모가 되니까 알겠습니다.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 부모한테 큰 행복이고 자랑인것을요.
행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지님의 댓글

작성자 레이지 (211.♡.120.118)
작성일 어제 21:10
고생많으셨습ㄴ디ㅏ..
어머니는 항상 걱정하시네요...에휴..

nice05님의 댓글

작성자 nice05 (246.♡.117.139)
작성일 어제 21:23
구세하지 못했다고 하셨지만,
선생 같은 분들의 노력으로 이 땅에선 군부정치가 종식되지 않았습니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머님께서 속히 기력을 찾으시길, 그리고 쾌차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마왕님의 댓글

작성자 마왕 (253.♡.197.142)
작성일 어제 21:26
그래요. 세상을 못 구하신거 맞아요. 하지만 랑탕님 같은분들의 그 치열함이 남아 세상이 구해지고 있는중 입니다. 아직 안 끝나서 못 구한것처럼 보이는 것 일 뿐이에요.


고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동시대를 살아가며 서로를
올바른 민주와 정의를 감염(?)시켜가며 전해주고
견디어주며 싸워 나갈겁니다.
민주주의는
늘 비싼 댓가를 필요로 했고 이번에도 저 악중악의 무리들에게 팔 다리를 내어주었지만...

기꺼이 남은 몸뚱이를 불쏘시게에 던져 넣어서 다시 오는 세대들이 손을 쬘수 있는 온기로 남겠습니다.

랑탕님들 덕분인거에요.


아 싯팔.(욕아님요) 댓글쓰다가 주책맞게 북바쳐서 눈물이 펑펑나기는 처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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