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글 '깃털' 발표
잔망루피

Lv.1 잔망루피 (182.♡.17.64)

2024년 10월 16일 PM 03:14 · 수정됨(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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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보풀' 제3호에 올라온 한강 작가의 '깃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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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같다.

외갓집의 부엌 안쪽에는 널찍하고 어둑한 창고 방이 있었는데, 어린 내가 방학 때 내려가면 외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제일 먼저 그 방으로 가셨다.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어서 먹어라. 내가 한입 베어무는 즉시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

외할머니에게는 자식이 둘뿐이었다. 큰아들이 태어난 뒤 막내딸을 얻기까지 십이 년에 걸쳐 세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

그 깃털 같은 머리칼을 동그랗게 틀어올려 은비녀를 꽂은 사람. 반들반들한 주목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혼자 외가로 내려가 며칠 머물다 올라오던 아침, 발톱을 깎아드리자 할머니는 ‘하나도 안 아프게 깎는다… (네 엄마가) 잘 키웠다’고 중얼거리며 내 머리를 쓸었다. 헤어질 때면 언제나 했던 인삿말을 그날도 하셨다. 아프지 마라. 엄마 말 잘 듣고. 그해 10월 부고를 듣고 외가에 내려간 밤, 먼저 내려와 있던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얼굴 볼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잡고 병풍 뒤로 가 고요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댓글 (6)

  • 후로다이버

    후로다이버 Lv.1

    24.10.16 · 114.♡.244.126

    한강 작가님이 참 대단한 게 순문학 하시는 분 치고는 굉장히 트랜디한 글쓰기를 하시는데, 그게 딱히 유행을 염두하셔서 그런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물론 단순한 문장력이나 글솜씨로 평가 받을 분이 아닙니다만, 문장력 자체도 상당히 좋습니다.
  • 파키케팔로

    파키케팔로 Lv.1

    24.10.16 · 218.♡.166.9

    문장 참 좋습니다.
    간결한 문장인데,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떠오르네요. 영화나 만화 보는것처럼.
  • 힙업

    힙업 Lv.1

    24.10.16 · 59.♡.33.129

    이런 개인사(물론 이 역시 보편적일 수 있지만)를 읽고 눈물이 머금어지게 되는군요.
  • AlexYoda

    AlexYoda Lv.1

    24.10.16 · 124.♡.63.20

    아..정말.. 노벨상 받기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글이.. 정말.. 저자의 심정이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이래야 정말 작가죠. 사람들이 소년이 온다를 울면서 읽는다는게 정말 맞는 말이죠. 읽을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 zoozoo

    zoozoo Lv.1

    24.10.16 · 115.♡.31.36

    이런 글을 읽으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욕 밖에 없는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그제는 욕지거리를 SNS에 휘갈긴 어느 작가란 작자, 오늘은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규탄 시위하는 사람들.)
    이 짧은 글에 내게도 흰 깃털을 가진 새같은 할머니 생각이 나 눈물이 찔끔 나는데...
  • 노마드5

    노마드5 Lv.1

    24.10.16 · 248.♡.91.109

    글이 보드랍게 ...토닥토닥
    지하철인데 눈물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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