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지 마라

Lv.1 랑탕62 (245.♡.196.77)

2024년 10월 19일 AM 10:40 · 수정됨(22:26)

조회 2,855 공감 0

어린 날,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어머니와 함께 두 누나와 저는 외갓집에 살았습니다.

늘 이북에서 부자로 살았지만 빨갱이놈들 때문에 월남했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외할머니는 월남 중에 외할버지를 잃고 억척스런 삶을 사시면서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분이셨습니다.

늘 식사시간이면 기도를 올렸고 가끔 정전이 되면 식구들 모두 모여 "내 주를 가까이"를 목 놓아 부르곤 했습니다.

제 의지와는 관계없이 은연 중에 교회는 생활이 되었지만 전 그다지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세를 올려 교회에 건축헌금을 내는 할머니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탓입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늘 행동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결국 중학교 때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고 나와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말이냐고 물었던 것이지요.

그 목사는 교회의 권사직을 맡고 있던 할머니에게 손자가 나쁜 마귀의 꾐에 빠진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고 그 뒤로 저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오랜 시간 불교에 심취했습니다. 

부처가 걸었던 길을 따라 인도와 네팔, 티벳으로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어쩌면 모든 종교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수나 부처 모두 죽음에 이르러 자신을 믿지 말고 진리를 쫓아 행하라고 한 것이야말로 믿음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를 공부하면서(아이들 대부분이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늘 말하곤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안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죄를 짓고 십자가 밑에서 회개하는 것으로 죄가 용서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죄를 짓지 않으려 하는 것, 좋은 생각과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지 말고 예수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무슨 말인지 알아 듣더군요.

가끔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이 우려를 표하시기도 하지만 전 늘 그 분들에게 말합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인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요.

저는 아내의 영향도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믿음이 부족한 사이비 신자입니다.

작년 4월 이탈리아를 아내와 함께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마침 아내의 후배인 수녀님 덕분에 교황님의 삼종기도 강론을 바로 앞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수녀님의 통역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시더군요. 지금 우리의 길이 한치의 빛도 없는 어둠 속일지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난 후 절망한 제자들이 엠바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곁에 나타나신 것은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곁에 있겠다는 예수님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  절망과 좌절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낸다면 결코 이 싸움은 이길 수 없겠지요.

좀 더 설득하고 좀 더 끌어안고 단 한 사람이라도 손을 잡으려 하는 것이 이 무도한 시대를 끝낼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절망은 쉽고 희망은 어렵사리 오지 않을 듯 싶지만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빛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댓글 (23)

  • 그러니까그게

    그러니까그게 Lv.1

    24.10.19 · 58.♡.165.52

    종교는 손가락 끝이에요.
    손가락 끝이 가르키는 곳이 정의나 진리, 박애 등 기타 등등 좋은 것들.

    보통의 사람들은 손가락 끝을 신으로 모시고 있어요.
    똥 멍청이들입니다.


    {emo:onion-025.gif:100}
  • 랑탕62 Lv.1 → 그러니까그게 작성자

    24.10.19 · 2406:5900:7078:642a:79f4:ed06:1894:af24

    종교의 가장 큰 폐악은 구원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세의 괴로움을 견디면 구원을 받으리라. 가진 자의 전형적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 Bcoder™

    Bcoder™ Lv.1

    24.10.19 · 221.♡.162.27

    살불살조,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라는 임제선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종교의 본질은 통하는 것 같습니다.
  • 랑탕62 Lv.1 → Bcoder™ 작성자

    24.10.19 · 245.♡.196.77

    네 부처도 예수도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면 안된다고 말했지요
  • 이카루스

    이카루스 Lv.1

    24.10.19 · 203.♡.165.38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고
    예수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제가 좋아 하는 말입니다.
  • 랑탕62 Lv.1 → 이카루스 작성자

    24.10.19 · 2406:5900:7078:642a:79f4:ed06:1894:af24

    마르크스는 위대한 철학자이며 동시에 혁명가이기도 했지요.
  • 오다고기사와 Lv.1 → 이카루스

    24.10.19 · 58.♡.136.97

    심지어 칼뱅도 칼뱅주의자가 아니죠.
  • 대로대로

    대로대로 Lv.1

    24.10.19 · 222.♡.13.28

    목사가 게으르거나 공부를 안 했군요.
    그 문제는 성경을 읽다보면 누구나 바로 맞닥뜨리게 되는 의문일텐데
    하나로 통일되진 않지만 표준적인 답들이 있습니다.
    저만 해도 제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께 같은 문제에 대한 해석을 들었구요,
    좀 더 커서는 다른 교리적/신학적인 해석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제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그거 많이들 물어본단다' 하는 식으로 시작되는 답변을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얼마든지 교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의문인데 그 목사는 매우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랑탕62 Lv.1 → 대로대로 작성자

    24.10.19 · 2406:5900:7078:642a:79f4:ed06:1894:af24

    무려 대형교회의 목사였구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 삼위일체라는 것을 믿지는 않습니다. 해서 늘 의심많은 신자이구요
  • 대로대로

    대로대로 Lv.1 → 랑탕62

    24.10.19 · 222.♡.13.28

    삼위일체 뿐 아니라 (사실 이 표현을 삼위일체의 '근거'로 삼는 건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장엄복수형이나 재귀형 등 문법적 형식을 이유로 두기도 하더군요.
    무신론자가 된 지금의 저로서는 이 해석이 오히려 더 납득이 가는 쪽입니다.
    해석을 뭘로 하든, 나이 어린 입문자가 의문을 제기하는데 사탄 들렸네, 타락했네, 라고 대응하는 건
    매우 위험하고 나태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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