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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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어머니와 함께 두 누나와 저는 외갓집에 살았습니다.
늘 이북에서 부자로 살았지만 빨갱이놈들 때문에 월남했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외할머니는 월남 중에 외할버지를 잃고 억척스런 삶을 사시면서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분이셨습니다.
늘 식사시간이면 기도를 올렸고 가끔 정전이 되면 식구들 모두 모여 "내 주를 가까이"를 목 놓아 부르곤 했습니다.
제 의지와는 관계없이 은연 중에 교회는 생활이 되었지만 전 그다지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세를 올려 교회에 건축헌금을 내는 할머니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탓입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늘 행동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결국 중학교 때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고 나와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말이냐고 물었던 것이지요.
그 목사는 교회의 권사직을 맡고 있던 할머니에게 손자가 나쁜 마귀의 꾐에 빠진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고 그 뒤로 저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오랜 시간 불교에 심취했습니다.
부처가 걸었던 길을 따라 인도와 네팔, 티벳으로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어쩌면 모든 종교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수나 부처 모두 죽음에 이르러 자신을 믿지 말고 진리를 쫓아 행하라고 한 것이야말로 믿음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를 공부하면서(아이들 대부분이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늘 말하곤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안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죄를 짓고 십자가 밑에서 회개하는 것으로 죄가 용서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죄를 짓지 않으려 하는 것, 좋은 생각과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지 말고 예수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무슨 말인지 알아 듣더군요.
가끔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이 우려를 표하시기도 하지만 전 늘 그 분들에게 말합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인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요.
저는 아내의 영향도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믿음이 부족한 사이비 신자입니다.
작년 4월 이탈리아를 아내와 함께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마침 아내의 후배인 수녀님 덕분에 교황님의 삼종기도 강론을 바로 앞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수녀님의 통역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시더군요. 지금 우리의 길이 한치의 빛도 없는 어둠 속일지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난 후 절망한 제자들이 엠바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곁에 나타나신 것은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곁에 있겠다는 예수님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 절망과 좌절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낸다면 결코 이 싸움은 이길 수 없겠지요.
좀 더 설득하고 좀 더 끌어안고 단 한 사람이라도 손을 잡으려 하는 것이 이 무도한 시대를 끝낼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절망은 쉽고 희망은 어렵사리 오지 않을 듯 싶지만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빛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랑탕62님의 댓글의 댓글
Bcoder™님의 댓글
랑탕62님의 댓글의 댓글
이카루스님의 댓글
예수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제가 좋아 하는 말입니다.
랑탕62님의 댓글의 댓글
대로대로님의 댓글
그 문제는 성경을 읽다보면 누구나 바로 맞닥뜨리게 되는 의문일텐데
하나로 통일되진 않지만 표준적인 답들이 있습니다.
저만 해도 제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께 같은 문제에 대한 해석을 들었구요,
좀 더 커서는 다른 교리적/신학적인 해석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제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그거 많이들 물어본단다' 하는 식으로 시작되는 답변을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얼마든지 교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의문인데 그 목사는 매우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랑탕62님의 댓글의 댓글
대로대로님의 댓글의 댓글
장엄복수형이나 재귀형 등 문법적 형식을 이유로 두기도 하더군요.
무신론자가 된 지금의 저로서는 이 해석이 오히려 더 납득이 가는 쪽입니다.
해석을 뭘로 하든, 나이 어린 입문자가 의문을 제기하는데 사탄 들렸네, 타락했네, 라고 대응하는 건
매우 위험하고 나태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늙은쏘가리님의 댓글
예수를 믿으면 안되고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는게 제일 중요하죠.
예수의 일 평생에 행한 정신과 행동이 핵심인데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예수를 잘못 알고 있고.
그러한 잘못된 점은 목사들이 신학을 공부를 안하고 자기 멋대로 받아들여서 신도에게 전파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죽었어요.
랑탕62님의 댓글의 댓글
신나부러님의 댓글
랑탕62님의 댓글의 댓글
드럼행님님의 댓글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성경대로라면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믿지 마라고 하신 부분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글을 쓰신 이유는 한국 기독교, 더 정확히는 개신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 때문이겠지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신앙을 도구화하여 이용합니다. 교회는 인맥을 쌓기 위한 장소고, 믿음은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명분이 되었습니다. 삶은 신앙과 구분되어 도덕과 선행과 거리를 둔지 오래죠. 할머니가 가난한 분에게 집세를 올려 받아서 교회에 건축헌금을 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은 현 개신교의 문제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일 겁니다.
목사로서 너무 부끄럽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이렇게 뒤틀러져 있다는 것에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지켜야 해서 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대로 의롭고 선한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가르침은 정신이 어떨지라도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벗어난, 구원자 예수님을 외곡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믿어야 합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삶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힘드실거라 생각합니다. 성경을 깊이 읽어보시고 관련된 서적을 읽어보시면 좋겠다 말하고 싶지만 그럴 동기가 생기지 않는한 그러지도 않으시겠지요. 그럼에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겨 여겨집니다. 루터가 강조한 '이신칭의'의 원리가 글쓴이에게, 또 댓글을 다신 분들에게도 닿기를 바래봅니다.
랑탕62님의 댓글의 댓글
그러니까그게님의 댓글의 댓글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주요 종교들은 의심하는 자를 경계, 배척하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합니다.
인류는 의심(이성)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이 와중에 종교는 의심을 해악으로 삼는 암과 같은 존재라고 해도 할 말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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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 시 당신 말이 옳습니다.
아이디어님의 댓글
신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어요.
사람에게 빚을 졌지 신에게 빚진 적이 없어요.
가족과 사회보다 못한 종교를 뭐하려고 믿나요. 전 주변사람들에게 잘해주는게 종교입니다.
예수가 아버지일 이유도 없죠.. 내 아버지는 나를 나아주고 길러주신 분인데 어떻게 예수 따위가 아버지가 되요.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예수따위에게 뭔 충성을 한다는 말인가요...
삶의 기준을 정해주는게 신이어야할 이유도 없구요. 내 주변사람에게 잘해주기에도 벅찬데 보이지도 않는 것들에게 충성을 하고 희생을하고 그러나요..
lcarus88님의 댓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보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때 하신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 말씀에 더 공감하여 불교를 더 믿게되었습니다
현대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를 수단으로 구원받고 죽은 후에 천국 가겠다는 의미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99% 아닐까요
반포먼지님의 댓글
오다고기사와님의 댓글
라는 말은
기독교 측에서는 대개 성부와 성자간의 대화로 해석하긴 합니다.
해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한테 무리하게 걷어서 교회에 상납했다는 부분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urasoul님의 댓글
창세기의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입니다
기독교교리의 기초중의 기초인데 -_-;;;
목사가 이걸 모른다는 건 대통령이 RE100을 모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데요….
대통령이 삼권분립이 뭔지를 모른다 정도로 심각해요
그러니까그게님의 댓글
손가락 끝이 가르키는 곳이 정의나 진리, 박애 등 기타 등등 좋은 것들.
보통의 사람들은 손가락 끝을 신으로 모시고 있어요.
똥 멍청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