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생생한 포르투갈 올리브농장 방문 썰
페이지 정보
본문
이 글은 2024년 9월 말
저의 사업체 '까사포르투갈'의 공동대표이자 포르투갈 현지 영주권 소유자이신 제 사업파트너의
현지업체 방문기록입니다.
원래는 저도 같이 출장가기로 하여 비행기표도 예매하였으나 저의 한국에서의 사정 및 현지와의 스케쥴 조율문제로 방문을 취소하고 (아까운 내 항공취소 수수료 ㅠㅠ) 사업파트너만 방문하였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물건을 떼다 팔기 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저희가 직접 확인하고 소통한 업체의 제품만을 판매합니다. 이 업체의 제품을 사용해본지는 벌써 몇년째이고 소통과 거래를 시작한지도 1년반이 되었어요.
소통을 할 때 적극적이면서도 너무 장삿속만 밝히지 않는, 담담하면서도 환경보전과 지역과의 공생을 생각하는 좋은분이라 생각들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역시 찐으로 멋진분이었습니다.
저희가 파는 물건이 이런분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리고 싶어 공유합니다.
참고로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더 다양한 포르투갈 일상이 궁금하시다면 블로그에 놀러오세요 https://blog.naver.com/jjrha79
수입식품이 많고 많은 세상에서, 직접 먹거리를 수입하면서 든 생각 중 하나가 '눈으로 직접 생산지를 보고, 생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였다. 온라인에 공개된 정보는 선택되고 다듬어져 있어서 매끈하고 좋은데, 정말 실제로도 그럴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외에도, 나와 내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생산자가 가진 철학이나 마음도 한 번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산자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흔쾌히 환영한다는 답장이 왔다. 감사와 기대의 마음을 안고 출발! 2024년 9월, 포르투갈 북쪽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오일과 꿀의 생산지를 직접 보고, 농부와 양봉가를 만났다.
올리브 농장으로 가는 길
올리브유를 생산하는 아쿠실라Acushla 농장은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Porto에서 내륙 쪽으로 170km 정도를 달려야 한다. 포르투를 벗어나 좀 달리다 보면, 도우루Douro 강변의 비탈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계단식 포도밭이 눈길을 끈다.
보성의 계단식 녹차밭이나 발리의 계단식 논, 도우루 포도밭처럼 가파르고 좁은 경사면을 따라 무언가를 기르고 생산하는 것은 단순히 보기 좋다는 것 이상의 느낌을 준다. 분명 평지에서 보단 만들고 가꾸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주어진 자연을 나름 잘도 활용했구나, 다 저렇게 애써서 먹을 것들을 생산하는구나 하는 감사함도 있다. 옆자리서 운전하고 있는 주아큉 아쿠실라 CEO가 말한다.
"보면 알겠지만 저런 계단식 밭에선 기계를 잘 못 쓰죠. 아무래도 사람 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저런 계단식 밭에서 햇볕을 가득 받고 자라 영그는 포도들은 얼마나 달고 맛있을까, 그 포도들을 따서 사람들에게 보내고 와인으로 빚는 이들의 수고는 또 얼마나 고마운가. 돈을 내고 사는 먹거리들에 담겨 있는 돈 이상의 것들을 생각한다.
2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퀸타 아쿠실라Quinta Acushla는 무척 외진 곳에 있다. 포르투를 벗어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이미 작은 마을들만 늘어서 있는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리스본, 포르투는 물론이고 포르투갈의 도시들은 대부분 해안가를 따라 발달해있는데, 내륙 쪽으로 가면 인구밀도가 낮아진다는 것이 실감 나는 풍경이다. 퀸타 아쿠실라와 가장 가까운 마을인 로도이쉬Lodões가 2021년 기준 인구가 100명 정도라니깐 말 다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올리브 나무들
계단식 포도밭이 보일 때만 해도 좀 푸르렀는데, 내륙 쪽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더 야생적이 되어간다. 인가는 찾아볼 수 없고, 척박해 뵈는 땅이 드러난다. 건조한 계절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렇다. 낮게 고개를 든 거세 보이는 나무, 땅에 바짝 붙은 풀들, 초록색은 군데군데 고개를 내밀 뿐 나머지는 죄 황토색의 흙과 이런저런 거칠어뵈는 돌들이다.
여름에는 40도까지도 올라가고, 겨울에는 가끔씩 눈도 볼 수 있는 땅. 비교적 온화한 남부 포르투갈과는 확실히 다른 거칠고 대조적인 기후다. 풍경도 그런 기후가 드러나듯 거칠다. 주아큉이 옆에서 거든다.
"이 지역, 트라주쉬몬트쉬 (Trás-os-Montes)는 멋지지만 거칠고 힘든 자연환경을 지닌 곳이죠. 포르투갈 북동쪽 모서리에 해당합니다. 올리브가 자라기엔 이상적인 기후와 풍토terroir 지만... 올리브들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곳이에요. 건조하고 척박하죠. 하지만 그런 기후에서 열매를 맺은 올리브들은 최상입니다. 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살아남아 깊은 맛을 내는 거죠."
주아큉의 말을 들으며 예전 외삼촌이 하셨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난 꽃을 보기가 어려운데, 추워질 무렵 베란다에 내놓고 물도 잘 주지 않으면 꽃봉오리가 맺힌다나. 그때부턴 다시 실내로 들여와 쾌적한 온도와 물 공급을 해주면 아름답게 꽃을 피워낸다고 그러셨다.
주관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니, 얼마나 과학적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외삼촌은 그 방법으로 난 꽃을 많이 피워내셨다. 요는 '꽤 힘든, 어려운 시련이 다가오면 - 대신 죽을 정도로 심한 환경이어서는 안 된다- 식물은 기를 쓰고 꽃이나 열매를 맺는다는 것. 어찌 보면 생명 메커니즘 차원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사람도 그러지 않은가. 시련을 이겨낸 식물이나 사람 모두, 한층 강하고 풍부해진다.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농장주
인적 없고 야생미가 가득한 땅을 지나, 농장으로 향하는 좁은 도로로 접어들었다. 비포장도로라서 먼지가 한가득 날린다. 대문을 지나니 사방이 언덕이고 올리브나무들이 가득하다. 새와 멀리서 들리는 개와 양 소리를 빼고 사람 소리는 우리뿐이다.
조용하고 깨끗하다. 10월은 되어야 올리브를 수확하니, 제일 바쁜 철을 앞두고 청소와 시설 정비만을 하고 있어 한적하단다. 추수철이 되면 정반대라고. 일요일만 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무척 바쁘단다.
20여 년 전 농장을 산 주아큉은 초반에는 유칼립투스 나무와의 전쟁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당시 이전 농장주가 심은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무척 힘들었단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일단 재래종이 아닌 철저히 돈을 벌 목적으로만 심은 나무들이었단 말이죠. 녀석들은 뿌리를 사정없이 깊게 뻗어 땅으로 파들어 갑니다. 다른 나무들과 공생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계획적으로 플랜테이션을 조성해서 심은 유칼립투스는 7년에 한 번씩 베어냅니다. 좋은 값에 제지회사에 팔리죠. 수익성이 좋아요. 철저히 돈 벌기용 나무들입니다. 게다가 잎과 수액에 알코올 성분이 많아서 불에 잘 타죠. 고온 건조한 날씨에 나뭇잎끼리 마찰되면 자연발화되기도 해요. 산불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불쏘시개가 되는 거예요."
최근 몇 년 새 기후변화 이슈와 맞물려 더 심각성을 띠는 포르투갈의 여름철 산불에는 사실 유칼립투스 나무도 있다. 화재에 취약한 나무가 빽빽이 심어져 있으니 위험할 뿐더러, 다른 나무들과 공생할 수 없으니 그 또한 문제다.
걸어서 다 둘러보려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 215 헥타르, 평으로 치면 약 65만 평의 농장을 한가롭게 거닐었다. 그중 단 14헥타르만 100년 넘은 오래된 올리브가 있는 구역으로 확실히 다르다. 올리브들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구부러져 있다. 나무들마다 개성이 있다.
"제가 이 농장을 시작한 이후엔 야생동물들도 더 많아졌어요. 토끼, 여우, 멧돼지, 또 새들도 많고요. 이전에는 사냥 허용 구역이었는데, 아쿠실라 농장을 시작하면서 사냥 금지 지역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야생동물을 위한 생츄어리(sanctuary 안식처)로 운영하고 싶단 생각이 컸고요. 또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관계 시설의 일부분인 물 파이프가 총 때문에 손상되면 안 되니깐요. 농장을 매입한 후, 근처 초등학교 애들을 불러 용돈을 주기로 했죠. 숨어있는 탄피 찾기를 놀이처럼 하면서요. 몇 천 개의 총알에서 나온 플라스틱 껍질을 수거했습니다."
주아큉이 웃으며 말한다. 야생동물 안식처 확보나 유기농 농장 운영에서 보듯, 자연과 조화로운 삶에 관심이 많다. 상업적 대량생산 육식에 회의를 느껴, 몇 년 전까지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였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단다.
그냥 몸과 입맛이 당기는 대로 편안하고 즐겁게 먹고 싶은 것을 먹되, 절대 과식하지 않고 간헐적 단식을 한다. 그렇게 하니 지금은 저절로 소식이 될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해졌다고. 생활도 좀 더 자연스럽고 여유로워졌단다.
원래는 섬유 의류 산업에 몸담아 무척 바쁜 날들을 보냈고, 지금도 바쁘긴 하지만 섬유-의류 회사 운영의 비중은 점차 줄이고 있는 중.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쿠실라 농장에 들이고 있다.
오래된 올리브 구역을 지나니, 딱 봐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젊은 올리브나무들이 나타났다. 오래된 나무는 포스 있어 보이게 생겼고, 젊은 나무는 생생하고 발랄한 느낌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윤기가 차르륵 흐르는 것이 과연 아름답고 강해 보인다.
코브란소사Cobrançosa는 트라주쉬몬트쉬 토종 품종으로 오일 함량이 높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다소 길쭉한 모양새의 과육은 과일향과 살짝 매콤한 향미가 있다. 베르딜Verdeal은 크고 둥근 과육의 초록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올리브 절임으로 많이 쓰이는 품종. 마두랄Mardural은 중간 크기의 타원형 과육으로, 프루티하고 살짝 쓴맛을 띈다.
내년에는 다 뽑아버린다고?
올리브 언덕 하나를 넘어가니 포도밭이 언덕 사이에 폭 안긴 모양새로 펼쳐져 있다. 조그맣게 포도밭도 가꾼다고. 농장 전체가 유기농 농장이다 보니, 이 포도들은 포르투의 유기농 와인 메이커들에게 잘 팔린단다.
올리브 추수로 바쁘기 전인 이맘때가 포도 수확철. 오늘도 근처 마을 주민들 열다섯 명 정도가 임시 일꾼으로 오셨다. 다들 편안하고 흙이 묻은 옷을 입고, 머리엔 모자나 수건을 둘러쓴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해 보여서 친근감이 든다. 서로 살짝 수줍은 미소와 인사를 건네니 괜히 기분 좋다.
아주머니 한 분이 엄청 달고 좋은 포도라서 기쁘다고 수확을 "기념하는 의미로 존경심을 담아"라고 말하며 멋들어진 제스처와 함께 포도송이 하나를 사장님, 주아큉에게 건넨다. 주아큉은 진지하게 포도송이를 받아 다들 보는 데서 맛보고 과연 좋은 포도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사장님이나, 포도를 잘 가꿨을 직원들이나, 추수를 하러 임시로 온 마을 주민들이나 모두 이 작은 세리머니로 "포도단결"된 느낌. 올리브 추수 때도 비슷하겠지?! 우리도 주아큉이 따 준 포도송이를 하나씩 손에 들고 맛본다.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단단하고 작은 반짝거리는 검푸른 색 과육인데 즙이 무척 달다. 한 송이를 순식간에 먹었는데 손이 엄청 끈적해져 버렸다.
손을 씻고 나서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석류 밭이다. "아니, 주아큉! 야생 동물도 많다더니, 식물종도 그렇고... 생물학적 다양성의 보고네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더니, 웬일인지 약간의 썩소가 돌아왔다.
"내년에 다 뽑을 겁니다."
어허... 이 무슨 말인가요?
다음에 2편 올리겠습니다 ^^
더 다양한 포르투갈 일상이 궁금하시다면 블로그에 놀러오세요 https://blog.naver.com/jjrha79
ecpia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