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만 있는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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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10.2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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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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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DO님의 댓글
덴마크 살았으면 뭐까지 맞았을까...
일단 계피 고추 후추까진 확정이군요 ㅠㅜ
일단 계피 고추 후추까진 확정이군요 ㅠㅜ
메모리님님의 댓글
근데, 진지 빨고 말해보면, 500년 전 그러면 시나몬 같은 향신료가 돈 된다고 찾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대항해 시대 즈음인데 그 비싼, 양도 많지 않았을텐데, 시나몬 류를 저렇게 뿌려댄게 사실일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pigtoki님의 댓글의 댓글
@메모리님님에게 답글
굴이 유럽에서는 비싸지만 솔직히 한국에선 질려서 안먹지 비싸서 못 먹는거 아니잖아요. 같은 경우일수도요 . 저동네 잡초가 계피면....
메모리님님의 댓글의 댓글
@pigtoki님에게 답글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228728&memberNo=40848952
찾아보니 오래전 덴마크에서 향신료를 취급하며 일만 하다 결혼도 못하던 상인을 추억(?)하며 생긴 풍습이라는 말이 보이네요
https://ko.m.wikipedia.org/wiki/계피
그런데, 계피나 시나몬은 동남아에서만 나던 향신료 입니다
저 동네 덴마크도 유럽인데 유럽과 우리나라 간의 굴 가격 차이 사례를 적용할만큼 유럽 중심과 지리적으로 멀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북쪽에 있어서 들어오는 경로에서 더 떨어져 있는지라 가격이 더 올라갈 요소만 있는 거지요
해서, 유독 덴마크에서만 잡초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500 여년 전 즈음에는 유럽과 향신료 산지인 아시아 사이에는 무슬림 세력으로 막혀 있어 유럽 사람들이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아랍 상인들을 통해서만 극소량이 유통되었기에 부르는게 값이었던지라 온 유럽이 향신료를 구한다고 눈에 불을 켜던 시기 입니다
그러다 마갈량이스나 바스쿠 다 가마 등등의 탐험으로 동남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고 이후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원산지에서 직수입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뚫어 수입량이 늘긴 했었지만, 기술이 발전해서 항로가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항해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가는게 당연할 정도로 힘들어 들어오는 물량은 여전히 적어놔서 한번 다녀오면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질만큼 비싸긴 매한가지라 저렇게 퍼부을만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 잡초 취급을 할만큼 물량이 있었다면 그 먼 동남아로 갈 이유가 1도 없었고, 애초에 원산지도 아닌 이상 근거도 없는 가정이고, 그랬다면 덴마크는 르네상스 시기 들어오며 유럽 최고 부국이 되었겠지요
여튼, 유래는 계피와 연관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본문에서 언급된 500년이라는 연도는 기원인 상인이 생존했던 때가 와전된 거 같은데 풍습이 생긴 초기에는 추억만 하거나 요즘 카푸치노에 시나몬 뿌리듯 간만 치는 정도이지 않았을라나 싶고 저렇게 퍼붓는건 물량이 풍부해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했을 거 같은 킹리적 갓심이 드네요⠀
찾아보니 오래전 덴마크에서 향신료를 취급하며 일만 하다 결혼도 못하던 상인을 추억(?)하며 생긴 풍습이라는 말이 보이네요
https://ko.m.wikipedia.org/wiki/계피
그런데, 계피나 시나몬은 동남아에서만 나던 향신료 입니다
저 동네 덴마크도 유럽인데 유럽과 우리나라 간의 굴 가격 차이 사례를 적용할만큼 유럽 중심과 지리적으로 멀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북쪽에 있어서 들어오는 경로에서 더 떨어져 있는지라 가격이 더 올라갈 요소만 있는 거지요
해서, 유독 덴마크에서만 잡초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500 여년 전 즈음에는 유럽과 향신료 산지인 아시아 사이에는 무슬림 세력으로 막혀 있어 유럽 사람들이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아랍 상인들을 통해서만 극소량이 유통되었기에 부르는게 값이었던지라 온 유럽이 향신료를 구한다고 눈에 불을 켜던 시기 입니다
그러다 마갈량이스나 바스쿠 다 가마 등등의 탐험으로 동남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고 이후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원산지에서 직수입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뚫어 수입량이 늘긴 했었지만, 기술이 발전해서 항로가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항해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가는게 당연할 정도로 힘들어 들어오는 물량은 여전히 적어놔서 한번 다녀오면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질만큼 비싸긴 매한가지라 저렇게 퍼부을만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 잡초 취급을 할만큼 물량이 있었다면 그 먼 동남아로 갈 이유가 1도 없었고, 애초에 원산지도 아닌 이상 근거도 없는 가정이고, 그랬다면 덴마크는 르네상스 시기 들어오며 유럽 최고 부국이 되었겠지요
여튼, 유래는 계피와 연관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본문에서 언급된 500년이라는 연도는 기원인 상인이 생존했던 때가 와전된 거 같은데 풍습이 생긴 초기에는 추억만 하거나 요즘 카푸치노에 시나몬 뿌리듯 간만 치는 정도이지 않았을라나 싶고 저렇게 퍼붓는건 물량이 풍부해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했을 거 같은 킹리적 갓심이 드네요⠀
깊고어두운엘바토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