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 (211.♡.240.63)
2024년 4월 11일 PM 06:09 · 수정됨(19:05)
요즘 시기에 유시민 작가님 책을 많이 봅니다. 현실에서 어떤 이해가 잘 안되는 일이 있을때 책을 보는데요, 정말 독서 책 만한 것이 없더군요. 유시민 작가님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 책을 재밌게 읽고 흥미로운 내용을 보았습니다. 제 관점을 조금 넣어서 정리했으니 즐겁게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여러 역사가 가운데 토인비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분은 <역사의 연구>라는 책으로도 유명한데요, 토인비는 상당히 반항적이고 삐딱선을 타신 반항아 였던것 같습니다. 그는 기존의 역사학계 주류와 지배적인 연구방법을 거부하며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자 했지요. 그는 민족, 국가 단위의 역사관을 넘어서서 역사의 대상을 문명으로 설정했습니다. 숲과 나무를 함께 보아야 그 인과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가 주장한 다양한 문명의 법칙 가운데 정말 흥미로운 이론을 보았습니다. 바로 ‘일반 대중과 지도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론’ 입니다. 이것이 문제의 ‘창조적 소수자’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보고 우리 정치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창조적 소수자 이론이란 무엇일까요? 말이 너무 길고 어렵지요?
혹시 그런 생각 하신적 있으신가요 왜 저 빛나는 문명은 오래가지 못하고 망할까? 영원할 것 같았던 문명이 쇠퇴하게 된 그 원인은 무엇일까? 문명은 왜 흥망성쇠를 거듭할까?
그것에는 외부의 침략, 자연환경의 변화 등 수많은 변수가 있지만 토인비는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점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문명의 쇠퇴의 결정적인 요인은 외부가 아닌 내부적인 문제 였습니다. 즉 한 문명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부적인 문제보다 내부에서 먼저 분열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시대, 문화, 종교, 관습을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그러한 경향을 보이더군요, 토인비는 이점에 주목했습니다. 즉 한 문명의 내부적 분열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 문명은 성공에서 멀어지고 그렇게 분열과 재결합을 반복하다가 외부의 요인이 겹치며 쇠퇴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내부적 분열을 막을수 있을까요? 문명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는 일상속에서 문명의 쇠퇴를 막기위해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토인비를 바로 이 현상에 대한 물음에 제대로 답을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창조적 소수자 이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은 문명의 성공조건을 4가지로 설명합니다.
우선, 그렇다면, 도대체 창조적 소수자란 무엇이며 그들은 누구일까요? 창조적 소수자는 영어로 creative minority를 의미합니다. 말이 어렵지요? 따로 때어내서 보면 사실 단순합니다. 오늘날의 대중사회,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국가에서 상당히 그럴듯한 가설로 들리는데요. 즉 어떤 사회 내 갈등과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종합해서 잘 조율할 수 있는 대중을 대표하는 minority소수자가 있어야 하고, 그 대표자는 creative 창의적인 생각, 혁신적인 아이디어, 비전, 정책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이죠. ‘창조적 소수자’는 대중의 의사를 잘 대변하고 효능감있게 대표하면 그 결과로 대중의 지지를 얻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창조적 소수자의 역할은 아닙니다. creative 즉 ‘창조적’ 이어야 하기 때문에 눈 앞에 놓인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멀리보고, 먼 미래를 보고, 먼 미래의 한국의 먹거리, 일자리, 창의적인 비전, 성공적인 길과 대안을 함께 제시해야 하지요. 제 7공화국 복지국가 건설등의 내용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소수자가 아닌 ‘창조적’ 소수자인 것입니다 .만약 창조성의 가호가 함께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창조적 소수자가 아닙니다. 2년 내내 야당 욕하기만 한 집권 여당은 절대 창조적 소수자가 아닙니다. 이것이 한 문명이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문명의 성공조건 1. 문명이 성공하려면 창조적 소수자가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문명이 성공하려면, 창조적 소수자‘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토인비는 그 역할을 권리와 의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부여합니다. 즉 정치에 대중이 참여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고 투표해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문명의 성공조건입니다. 그것으로 대중은 누가 자신에게 맞는 창조적 소수자 인지를 찾아보고, 자신의 의사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창조적 소수자를 선택하고 창조적 소수자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명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본질적인 힘, 원동력이라고 토인비는 주장합니다.
문명의 성공조건 2. 문명이 성공하려면 창조적 소수자를 지지하는 대중의 참여가 필요하다.
문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창조적 소수자와 대중은 한번 만나고 헤어지는 애증의 관계가 아닙니다. 소개팅만 하고 획 돌아고 끝나서는 안됩니다. 연인이 마음에 들면 먼저 연락하고 밥먹고 연대하고 사랑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대중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내면화하고 의견을 공유해야 합니다. 이들간의 소통, 조화, 타협을 토인비는 총제적인 개념으로 미메시스라고 부릅니다. 미메시스란 창조적 소수자와 대중사이의 관계를 말하는데요, 이는 그리스 어로 ‘모방’이라고 하더군요. 모방은 정치에 대한 관심, 참여로 인한 상호 긍정적인 피드백, 영향을 의미합니다. 즉 대중과 정치인과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정치인이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입법을 만듭니다. 유시민 작가님이 알쓸신잡 춘천편에서 말씀하셨는데요 정치인은 당의 강령을 발표하거나 토론회에 참여하여 논리적 무기를 공급하면 대중은 그것을 보고 듣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자기의 일을 하면서 더불어 토론회에나 강령에서 본 내용을 자신의 일상생활속에서 내면화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정치인이 했던 말, 어휘, 문장, 논리를 무기로 삼아 그것을 일상속에서 표현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다시 그 의사를 종합해서 본인들의 요구사항, 불만, 개선사항을 자신의 대표자에게 전달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그 창조적 소수자를 감시하기도 합니다. 말만 잘한다와 말도 잘한다는 한 끗차이지요. 그 창조적 소수자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잘 하느냐, 자신의 의사를 잘 대변하느냐, 얼마나 선거 공약을 잘 이행하느냐를 지켜봅니다. 즉 미메시스는 민주주의의 결과가 아닌 민주주의를 향한 과정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문명의 성공조건입니다.
문명의 성공조건 3. 문명이 성공하려면 미메시스가 필요하다. 미메시스란 창조적 소수자와 대중과의 소통입니다. 창조적 소수자는 대중에게 귀를 기울이고, 대중은 창조적 소수자를 지지합니다. 이 상호관계는 단편적 일회성 관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들 간의 상호 영향과 긍정적인 피드백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문명의 성공조건 4. 미메시스의 과정에서 유의미한 정책,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반드시 유지해야 합니다. 유지 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하더라도 정권이 바뀌고 시행령을 잔뜩 바꾸어 규범통제를 무력화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국 미메시스의 유지는 문명의 성공조건의 마지막 열쇠입니다. 그런데 현행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제는 그것을 유지하는데 너무 불리합니다. 정책의 일관성, 효용성, 효율성을 위해서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합니다. 한국이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00석이 못되서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이 개헌 이슈는 계속 앞으로도 주장해야하고 창조적 소수자들에게 잊지말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야합니다.
이것이 한 문명을 성공으로 이끄는 네 가지 요소입니다. 창조적 소수자의 등장과 대중의 참여, 그리고 이들간의 원할한 소통과 긍정적 정책의 유지와 지속성이 지향되고 중첩되고 쌓일때 그 문명사회는 발전하는 것이라고 토인비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문명이 쇠퇴하고 멸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공 요인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성공의 요인에서 거꾸로 가면 됩니다. 즉 성공의 요인이 4가지 중에서 하나만 없으면 쇠퇴하는 것이죠. 성공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많은 피와 땀이 요구되는데 쇠퇴로 가는 길은 굉장히 쉽습니다. 허무한 감정까지 들더군요.
예를 들어 창조적 소수자가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대중이 관심이 없거나, 혹은 둘다 존재해도 그들간의 소통이 원할 하지 않으면 조화(미메시스)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 현상을 토인비는 ‘네메시스’ 라고 부릅니다. 네메시스는 위 부정적 현상을 총제적으로 아우르는 의미이지요. 즉 문명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이 미메시스라면, 쇠퇴의 요인은 네메시스입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자의 개인적인 자만심 권력욕, 도취가 네메시스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중에게 한번 칭찬을 들은 정치인은 그 칭찬을 자양분 삼아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는다고 말하는 군요. 언론에서 특정 정치인을 띄워주면 내가 마이크 파워가 쎈가보다, 이제 이정도만 하면 되겠지 라는 자만심에 빠져 버리는 유혹을 겪습니다. 정당의 후광을 받아서 본인의 지지율이 오르는 건데 그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본인의 주체 역량을 과대평가 하기도 합니다. 창조적 소수자는 더 이상 미메시스보다 대중에게 호감을 얻는 그 목적 자체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면 그 교만에 빠진 지도자는 창조성을 상실합니다. 즉 창조적 소수자는 창조성의 영특함, 지적인 날카로움을 잃어버리고 ‘지배적 소수자’가 됩니다. 이것을 ‘전향‘ 이라고 부릅니다.
전향의 유혹은 특정인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 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이 유혹의 심판을 받고 또 받아가며 선택의 갈람길에 서지요. 그 중간 사이 어느 부분에 위치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창조적 소수자들은 어느 시기가 되면 이 갈림길에서 고뇌하고 유혹의 시험을 받고 도전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선택합니다. 지배적 소수자가 되느냐, 계속 지적인 날카로움을 유지하며 창조적 소수자가 되느냐의 갈림길이죠. 만약 이들이 지배적 소수자가 된다면 대중은 창조성을 잃은 그들과의 미메시스를 철회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들의 대표자에게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소통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토인비는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대중은 다른 창조적 소수자를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찾아낼 것입니다. 원망할 필요도 없고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은 문명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문명 사회가 요구받는 보편적인 현상이고 반복되는 게임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러한 네메시스만 반복되는 문명사회는 어떤 결과 양상을 띄게 될까요? 토인비는 네메시스로 한번 쇠퇴하는 하향 나선형에 빠진 국가의 운명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우선 첫 번째, 창조적 소수자의 부재입니다.
창조적 소수자가 없어진 일시적 상황에서 해당문명에는 지배적 소수자만 남습니다. 지배적 소수자는 권력욕이 매우 강합니다. 사적욕망과 공적 실현사이에 권력욕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운동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 창조적인 지적 번뜩임을 상실해버립니다. 그 과정에서 문명 내의 대립과 갈등은 심화되고 아수라장의 전쟁터가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창조적 소수자의 자리가 비워지면 누군가는 다시 그 자리를 메꾸고 들어오니까요. 대중은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대표할 새로운 창조적 소수자를 찾고 그에게로 옮겨갑니다. 새롭게 등장한 new 창조적 소수자는 지배적 소수자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의 번뜩이는 지적 날카로움은 대중의 지지를 받습니다.
이 상황에서 지배적 소수자가 고려할 수 있는 선택사항은 두 가지입니다.
1. 창조적 소수자와 민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민심의 향배에 귀를 기울이고 new 창조적 소수자를 만나서 대화하고 타협합니다. 그들의 요구를 일부 들어주고 갈등을 조정하지요. 이러한 극적인 타협이 성사된다면 문명의 이기적 네메시스는 철폐되고 다시 그 문명사회의 미메시스가 출현하여 그 문명은 성공궤도를 달립니다. 잠시 흔들린 문명의 성공조건이 다시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양 진영의 갈등의 조정과 극적인 타협, 대화를 통한 혁신,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혁’입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시나요 네 맞습니다. 당연히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지배적 소수자는 그런 자비로운 선택을 내리는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문명의 역사를 보건대 그러한 인물은 거의 없습니다. 일부만이 그것을 실현하죠. 마치 군주시대의 계몽군주 처럼요. 대부분의 경우 개혁은 실패하고 미메시스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즉,
2. 지배적 소수자는 창조적 소수자를 탄압하고 쫓아내고 억압한다.
라는 명제가 1번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대선에서 아깝게 표차이로 패배한 야당대표를 수백건의 압수수색을 통해 정치적 살인을 저지르는 것처럼요. 그러면 그 문명 사회는 불행한 네메시스가 계속되지요.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 네메시스가 반복되는 문명사회의 양상, 그 두 번째는 혁명입니다. 이런 무자비하고 끔찍한 네메시스가 지속될 때 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정말 최후의 수단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수단을 토인비는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지배적 소수자의 일방통행을 저지하고 낡은 제도와 관습을 폭파시키는 민중의 힘 그것이 혁명입니다. 혁명은 왜 어머어마한 힘을 가질까요? 민중의 참고 참았던 억눌렸던 불만이 한꺼번에 마치 핵분열 연쇄반응처럼 터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더 격렬하고 폭발적이지요. 따라서 혁명이란 ‘후불제 미메시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늦은 시기에 이루어진 미메시스인 만큼 그 댓가도 비례합니다.
세 번째, 만약 혁명도 실패한다면? 개혁도, 혁명도 성공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구제 방법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 문명의 끝에는 쇠퇴와 원망, 대립과 파멸 자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말그대로 문명의 종말입니다. 조선은 정조대왕 이후 혁신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조선사회는 삼정의 문란등으로 부패했고 민중의 외침을 대변하는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했으나 끝내 실패로 돌아갔지요. 혁명이 실패한 후 조선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마지막 동력이 완전히 꺼져버렸습니다. 민중이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났는데 타협과 대화를 하기는 커녕 자기 백성 죽이려고 외국 군대를 요청한 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한국의 역사는 한일 병탄까지 무기력하게 흘러갔습니다. 적어도 3 1 운동전까지 말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이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보고싶습니다. 개혁은 실패했지만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공도 아니고 실패하지도 않았습니다. 저 프랑스 혁명도 무려 10년동안 일어났습니다. 그 과정과 내용도 정말 역동적이더군요.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들도 한때는 힘써 피의 희생으로 일구어낸 공화국을 도로 황제에게 넘겨주기도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 겪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역사가 훨씬 짧은 시간동안 아시아에서 이런 역사를 저는 아직 본적이 없습니다. 힘냅시다 그리고 저도 제가 해야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7공화국, 민주주의 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리고 뜁니다. 제 7공화국 실현을 위해 함께 지지하고 연대하고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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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ndBlade
24.04.11 · 82.♡.57.138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혁명이나 엄청난 사건도 알고 보면 단기간에 이룩된게 아니고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어온게 많은것 같습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그런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가야 할것 같습니다. - 폰
폰노이
→ WindBlade 작성자
24.04.11 · 211.♡.240.63
하지만 세상은 또 빠르고 적극적이고 부딪히는 사람에게 덕을 본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둘다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글은 이렇게 해도 사실 제 가슴속은 불이 횃불처럼 활활 타오릅니다 ㅎㅎ .. -
날날씨는어때
24.04.11 · 95.♡.77.176
재밌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폰
폰노이
작성자
24.04.11 · 211.♡.240.63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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