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교수, 연구자 시국 선언문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heypeople 163.♡.24.81
작성일 2024.11.13 13:39
4,313 조회
209 추천

본문

경희대 교수 연구자 시국선언이 있었네요. 무려 226명이 참여했습니다.

아래는 언론에 보도된 시국선언문을 긁어온 것입니다.

아직 다모앙에는 소개가 안 된 것 같아서 글 써 봅니다. ^^

----------------------------------------------------------------------------------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째 텅 비어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 게시물이 없습니다.
댓글 27 / 1 페이지

네로울프님의 댓글

작성자 네로울프 (220.♡.239.95)
작성일 11.13 13:40
추천합니다

포말하우트님의 댓글

작성자 포말하우트 (112.♡.4.207)
작성일 11.13 13:44


제가 좋아 하는 강인욱 교수도 포함되어 있네요. 김상욱 교수도 유시민 작가와 자주 어울리던데 명단에 없는 건 좀 아쉽긴 합니다.

heypeopl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eypeople (163.♡.24.81)
작성일 11.13 13:47
@포말하우트님에게 답글 무기명으로 참여한 30인도 계시긴 하니까요.

포말하우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말하우트 (112.♡.4.207)
작성일 11.13 13:48
@heypeople님에게 답글 네 그 무기명에 동참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리바이스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리바이스 (125.♡.122.67)
작성일 11.13 14:19
@포말하우트님에게 답글 우리 학과 교수님 3분 계시네요. 무기명 30명 중에 나머지 은사님들도 계시길...

royalcloud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royalcloud (222.♡.157.10)
작성일 11.13 14:28
어떻게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쓰는지 존경스럽네요 ㅠ

원티드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원티드 (211.♡.178.80)
작성일 11.13 14:29
구구절절 가슴에 사무치는군요

elasticheart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elasticheart (84.♡.103.53)
작성일 11.13 14:37
ㅠㅠ 제 모교입니다 ㅠㅠ 왕뿌듯 ㅠㅠ

부산한량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부산한량 (223.♡.211.36)
작성일 11.13 14:37
교수들이 이래저래 기득권으로 욕을 많이 먹지만
보수적인 학자들 마저 이러니 오죽하면 이러나 싶긴하고
그래도 학자들이 목소리 내어주니 감사하네요
아무리 내 기득권이 소중해도 시스템이 망가지면 의미없죠

책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책맘 (211.♡.194.198)
작성일 11.13 14:42
명문이네요! 구구절절 모든 문장에 공감이 갑니다.

이몽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이몽 (172.♡.52.232)
작성일 11.13 14:51
제 후배, 선배 이름도 보이네요^^
손보미교수가 국문과가 맞다면
손보미소설가가 경희대 재직 중이셨군요

제 모교, 자랑스럽습니다!!

조붕이님의 댓글

작성자 조붕이 (58.♡.123.226)
작성일 11.13 15:03
역사에 남을 명문이네요

네로울프님의 댓글

작성자 네로울프 (183.♡.192.201)
작성일 11.13 15:12
진짜 곱씹어 볼만한 명문이네요

브래드베리님의 댓글

작성자 브래드베리 (106.♡.138.153)
작성일 11.13 15:20
명문입니다. 참여한 교수님들도 꽤 많네요.

블루팝콘님의 댓글

작성자 블루팝콘 (222.♡.109.155)
작성일 11.13 15:53
명문이고, 좋은 일인건 맞지만...
지난 정권에서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작자들이 한 짓거리가 강하게 기억에 남아서, 이미 넘어갔구나 싶어, 뒤늦게 저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오호라님의 댓글

작성자 오호라 (125.♡.113.200)
작성일 11.13 16:00
모교라 반갑지만.. 과 교수는 한명도..... ㅠㅠ
무기명 참여 30명에 있기를 바랍니다.... (가오 안살게.. 무기명은... 뭐지..)

쿨링팬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쿨링팬 (210.♡.41.89)
작성일 11.13 16:03
명문입니다!

게으른오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게으른오후 (220.♡.56.69)
작성일 11.13 16:19
제가 이명박을 아주아주 싫어하고 꼭 지옥에 가기를 바라는 이유가...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썩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바로 금권만능주의죠... 그 전에도 있었지만 돈이면 뭐든지 다 해, 권력이 최고야! 이런 걸 뿌렸죠...
지금의 세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도 아주아주 싫어합니다.
바로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농담처럼 없애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저 시국선언문의 문장은 좋습니다. 그러나 저 선언문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우리가 돌아 갈 수 있을까요?...

류겐님의 댓글

작성자 류겐 (223.♡.203.232)
작성일 11.13 16:31
슬슬 학계에서는 각도기 측량 끝났나보네요 시극선언이 줄줄이 터지는게 박근혜 때 보는 느낌입니다

오마이걸님의 댓글

작성자 오마이걸 (121.♡.155.152)
작성일 11.13 17:10
명문입니다!

뎅뎅이님의 댓글

작성자 뎅뎅이 (49.♡.20.207)
작성일 11.13 17:58
와.. 한 줄 한 줄 끝까지 읽다보니 왠지 울컥해지네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스타보이님의 댓글

작성자 스타보이 (58.♡.56.54)
작성일 11.13 19:00
시국 선언 해주신 모든 양심 있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변경의김씨님의 댓글

작성자 변경의김씨 (211.♡.137.5)
작성일 11.13 19:05
이 정권에서 우리가 잃은 것들에 대해 이 이상 잘 정리된 글을 못 봤네요.

BlackTiger님의 댓글

작성자 BlackTiger (58.♡.101.243)
작성일 11.13 19:19
명문의 시국선언문이고 진정한 명문 대학입니다.

hyde님의 댓글

작성자 hyde (175.♡.2.70)
작성일 11.13 19:46
은사님들과 선배님들 성함이 많이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GENIUS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GENIUS (175.♡.184.69)
작성일 11.13 22:57
정말 엄청난 명문이네요.

여봉선님의 댓글

작성자 여봉선 (106.♡.130.99)
작성일 어제 15:01
시국 선언문이 이리
아름다울 수도 있네요 감탄합니다
홈으로 전체메뉴 마이메뉴 새글/새댓글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