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211.♡.64.83)
2024년 12월 2일 AM 11:22 · 수정됨(13:39)

그 이유는 의외로 슬프고 또 이덕일의 노론 음모론과 정 반대되는데요..
안동은 조선시대 붕당 중 남인과 소론의 본거지였습니다.
남인은 서인, 그리고 노론 등에 밀리는 만년 야당같은 위치였고...
소론도 마찬가지로 노론과 대립하면서 밀리는 상황이었죠.
그나마도 숙종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환국, 그리고 이인좌의 난 등으로
남인과 소론 세력은 거의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버리게 됩니다.
아예 영조는 안동을 포함한 경상북도를 반역향으로 찍어버리고 탄압까지 했죠.

그러다보니 거기 살던 양반들은 과거제와 관직으로 권위를 세울 수 없고
그래서 서원을 만들고 시회나 문집 등을 만들고 예법을 유독 강조하고 지키는 등
다른 방식으로 양반이라는 지위와 정체성을 지키려 했죠.
그래서 이 지역이 양반문화가 강하게 남아있고 자신을 양반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많은 겁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노론의 본거지 기호지방의 양반들에게 열등감과 증오를 가졌죠.
지금도 안동과 경상북도에서 나름 뼈대 있는 양반 집안에서는 은진 송씨 집안 사람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송시열 때문에 출세길이 막혔다는 원한 때문이죠.
이런 열등감과 소외의식을 박정희와 전두환이 아주 정확하게 파고들어 버렸죠.
그래서 안동을 포함한 경상북도에는 그들을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p.s 그래서 이덕일이 말하는 경상도 노론-친일반민족세력-한국의 보수세력이란 전제가 틀린 겁니다.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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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anomA
24.12.02 · 14.♡.217.80
이덕일은 좀 이상하네요. 자기가 쓴 당쟁사에도 영남 만인소에 정조가 감격했다는 얘기 써놓았던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 작가의 말에 나오던 경상도 집안 어른들이 정조 독살설 얘기가 있었다라는 말의 배경을 '그런 거였구나' 했거든요. 근데 저런 소리를 했나요. -
코코미
→ RanomA 작성자
24.12.02 · 211.♡.64.83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494
심지어는 이런 소리까지 했습니다.
적당히 진보측이 뻑가게 하려고 노론 음모론에 세월호까지 가져오더군요. -
Hheltant79
24.12.02 · 61.♡.152.147
"경상도 노론"이란 말이 모순인 게, 영정조 이후 정권을 잡은 노론들은 기호지방, 그중에서도 충청도보단 한양/경기, 그중에서도 한양 북촌에 자리잡은 수도권 서인들이었죠.
김조순의 안동김씨도 본관이 안동일 뿐이지, 그 일족은 김상헌을 비롯해 수백년 전부터 한양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경화사족"이라는 용어까지 있었는데, 경상도 할 거면 경상도만 하고 노론 할 거면 노론만 해야지 그걸 한 용어로 합치는 건 뭔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
코코미
→ heltant79 작성자
24.12.02 · 211.♡.64.83
애초에 그 국민의힘과 한국 보수, 친일파 보면 노론 말고 남인이나 소론 등 뿌리가 다양하죠.
반대로 독립운동가들도 보면 노론 명문가부터 해서 남인, 소론 등 가지각색이고요. -
FFV4030
24.12.02 · 210.♡.27.130
조선 말기 세도 정치의 근원지(ex. 안동 김씨)라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물론 실제 세도 정치가들은 서울에서 살았지만 말이죠.. -
코코미
→ FV4030 작성자
24.12.02 · 211.♡.64.83
안동 김씨도 두 파가 있어서 구 안동 김씨는 조선 후기에 이미 몰락했고, 세도정치를 펼친 신 안동 김씨는 장동 김씨라 해서 아예 서울 토박이입니다. 단지 수백년 전 조상이 안동 출신일 뿐... -
트트라팔가야
24.12.02 · 58.♡.217.6
병역 면탈을 노린 꼼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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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으로 부자나 벌족한 씨족들이 앞장서 서원을 세웠다. 당시 법전에는 사대부집안이라 하더라도 4대조까지 가묘에 모실 뿐 5대째는 위패를 땅에묻어 제사할 방도가 없었으나 서원을 세워 묘당에 조상을 모실 수 있었기 때문에 서원개설 붐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서원을 중심으로 당색이 같은 집안의 자녀들이 합숙할 수 있고 서원교생이 되면 군역을 면할 수 마저 있어서 병역기피와 파당확대의 소굴이 되었다. 서원학전이라 하여 서원운영에 쓴다는 구실로 전답을 기증하면 면세혜택이 주어지고 서원노비도 향교노비와 마찬가지로 병역면제는 물론 각종 요역과 신역의 면제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에 양민들이 자진해 서원의 노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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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사회적 폐단은 건립과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지방관에게서 갹출하는 구청(求請), 양정(良丁)을 불법적으로 모점(冒占)하여 피역시켜 양정 부족현상을 야기하여 양역폐를 격화시키는 폐단, 교화를 구실로 대민착취기구로 전락된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
글글렌모어
24.12.02 · 59.♡.226.150
그러한 조선시대의 대단한 그들의 역사가 오늘날의 반역을 정당화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응징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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