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어느 순간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느끼게 된 이야기.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노르웨이고등어 211.♡.183.230
작성일 2024.12.03 05:01
931 조회
11 추천
쓰기

본문

사실 그동안 주기적으로 고민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주제야 여럿 있지만 주로 사람에 대한 고민, 무기력해진 인생을 살아갈 방도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로 취업길이 막히고 뭘 할 것도 마땅치 않은 입장에 섰기 때문일까요. 혹은 전역 이후 코로나로 인한 기존의 생활 방식(밤샘, 여행, 친구, 학교...)이 사라져 느낀 상실감 때문이었을까요.


특히 작년엔 유독 불안감에 쫓기는 감정이 컸습니다. 난 이제 20대 초반이 아닌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면서 전공과 하등 관련 없는 인턴이나 해외 일자리 같은 것도 알아보곤 했지요. 인턴을 하지 못 한건 지금도 가끔 아쉬움이 남지만요.


항상 불안에 쫓기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두렵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직장도 없고 불확실한 미래에다, 그 직전에 믿었던 친구들을 손절하게 된 일도 생겼고, 대외활동이며 각종 스터디, 모임을 만드는 등 열심히 해온 것들이 믿었던 사람의 정치질로 일순간에 의미없이 무너지면서 번아웃 비슷한 것을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미움받는게 두려워 전부 연락을 끊거나 반대로 몇 안 되는 얄팍한 인연에게 미련히 집착하기도, 한동안 사람을 피해다니기도 했어요. 조금이라도 변해볼 생각에 카페 알바를 했는데 눈을 마주치는게 무서워 항상 고개를 숙이고 카드를 돌려주어야 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카페가 망해서 얼마 못 가 짤리면서 더더욱 방구석으로 들어갔고요.


이후엔 어쩌다 연애도 다시 하고, 이것저것 행사와 모임을 즐기러 다니기도 하고, 돈을 모아 낡았지만 원하던 차도 사고, 원하던 자취도 해보고, 그나마 남은 친구와 놀러도 가고, 혼자 여행도 가고...


돈은 많이 썼는데 스펙으로 남은건 별로 없긴 하더라고요. 시험에도 한 번 실패했고요. 책을 안 읽어서 더 멍청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만 흠흠...


낮잠밤깸 백수로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생활을 했음에도 별 말 없이 용돈도 주시던 부모님께 새삼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듯 올 중순 즈음만 해도 뭔가 갈구하는게 있었고 잃기 싫다는 욕망이랄까, 그런게 있던 것 같은데요.


그게 어느 순간부터 초연해진 느낌입니다.


정확히 어떤 감정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전에 있던 집착과 불안은 어느샌가 사라진 듯 합니다.


더 이상 누군가 나를 대하는데 있어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들지 않습니다. 호의를 가진 상대이건 무심한 상대이건, 설사 적개심을 가진 상대이건 말이죠.


나는 그저 상대와 내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흔들림 없이 내가 관철하는 바를 행하면 된다. 굳이 풀어 설명하면 그런 느낌입니다.


상대도 나와 다름없는 사람이고 그 사람만의 사고방식이 있는데 내가 일희일비할 필요도, 바꿀 필요도 없으니까요. 당연히 나의 기대대로 상대가 반응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읽고 존중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렇게 상대를 존중하여 대화하다보면 함께 할 사람은 함께 하게 되고 떠나갈 사람은 알아서 떠나가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나만의 세계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의 이야기에 가장 열리게 된게 요즘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대한 미련이 없기 때문인 듯 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비난을 한다 한들, 사실이 아니라며 분노하고 반박하여 '팩트'로 승부하는 대신 그들의 목소리를 톺아보아 내가 잘못한게 있다면 반성하면 되고 잘못이 없다면 안 맞는 사람이라 생각하여 거리를 두면 된다는 느낌. (난해해진 문장을 보니 책을 안 읽어 글솜씨가 떨어진건 명백한 사실이네요)


지금 소속된 곳이 없어 만나는 사람 자체가 극소수다보니 평소 만나는 친구도 여자친구 하나 뿐인데 외롭진 않습니다. 외향인인건 확실한데 말이죠. 전처럼 활발하게 동아리나 모임을 나가면 친구를 만드는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네트워킹도 아니고 구태여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싶진 않달까요. 잘 맞는 사람은 이미 충분히 있고 만족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덕분에 사소하게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하는게 두렵지 않게 되었고, 크게는 이번 중요한 최종 면접에서도 그다지 떨지 않고 자연스레 답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나와 운과 때가 안 맞는 일도 있는 것이고,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게 내 잘못은 아니란걸 받아들이니 면접이 두렵지 않더라고요. 면접관 분들도 사람이니 그들에게 호감을 안겨주고 원하는 답변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합격했고요.


그러나 제가 월등히 뛰어나서 합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노력은 충분히 해왔고, 다만 때가 되었고 운이 좋았으니 합격한 것이겠지요.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열심히 하지 않고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천재라는 사람들도 결국 열심히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게 있고, 그때마다 기대가 무너졌다고 상심하고 화내는게 도움이 되지 않는단걸 알았습니다. 그저 그때마다 해결책을 찾아야 할 뿐이지요.







지금 당장 제가 어떤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죠. 젊은 나이에 갑자기 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가정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모종의 문제로 합격했던 시험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 한들 화가 나거나 두렵진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래왔고요. 코로나라는 천재지변 앞에서 '나는 왜 이리 무력할까', '나는 왜 이런 불행이 닥칠까' 라며 그저 좌절하고 실의와 우울에만 빠져있던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입니다.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서 새로운 길은 나오더라고요. 생각하던 결과와 판이하거나 초라할지도 모르지만 또 그에 맞추어 살아야죠. 몇 가지가 안 됐다고 해서 인생이 무너지고 삶이 부정당하는건 아니니까요. 사실 삶이란건 그냥 살아있으니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듯 합니다.


때로는 정말 불행한 일이 생깁니다. 정말 나쁜 사람도 마주하게 되고요. 그러나 설사 내가 그들로 인하여 추락했다 한들 바닥에 영원히 주저앉아 절망해선 안 됩니다. 그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가면 되니까요.






그런 농담이 있어요. "사실 우리는 5분짜리 시한부 인생인데 호흡이란걸 통해서 매번 그 5분을 늘려가고 있다". 그저 호흡하며 5분 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그 외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되, 그 가진 것이 사라진다 한들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게 요즘 제 사고인 것 같습니다.


우울해지면 줄글이 잘 나오더라고요. 술을 마시면 또 얼마나 잘 나오던지요.(만취해서 필름 끊긴 채 쓴 글이 공감 100을 넘겼던 일도 기억나네요. 누가 쓴 글인가 했습니다.) 그러나 일련의 역경을 거치면서 지금처럼 성장했다는건 사실이지만, 그 역경과 감정에만 빠져있는건 장기적으론 도움이 안 됩니다.






돌이켜보면 그 사이 다양한 방식으로 괴로운 역경이 있었기에 마음이 편해진 것 같습니다.


붙잡을 수 없는 첫사랑, 코로나, 인간관계 단절, 낙방, 취업 실패, 믿었던 이들의 배신, 사소하지만 가족과의 갈등...


그러나 언젠가는 겪었어야 할 일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젊은 날에 이들을 모두 겪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40대에 사업을 하다가 믿었던 이들의 배신을 처음으로 겪는다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제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없다 하여 불평하는 대신 있는 것에 감사해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 / 1 페이지

살살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살살타 (61.♡.92.124)
작성일 12.03 07:19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쓰기
홈으로 전체메뉴 마이메뉴 새글/새댓글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