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투표 날의 단상들..
앙데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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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9일 PM 04:57 · 수정됨(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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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투표 날의 단상들..


그날 들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기록하고 싶어 적어 봤습니다.

글 쓰는 연습이 부족해, 비문도 많을거고 ㅎㅎ 감안하여 읽어주십시오.


1. 아들의 학교 행사가 끝나고 과천에서 여의도를 어떻게 갈까 생각하다..

우선 서울로 갈 수 있는 만큼 차로 가보자, 돌아올 때 좀 편하려고,,

남태령을 넘는데,, 좌측 수방사를 보며 내가 여기를 지나고나서,

국회의 상황이 변하면,,, 여기서 장갑차들이 나올꺼고,, 그럼 다시 돌아오기 힘들수 있겠네 하는 생각.


2. 동작역 주차장에 주차 후 9호선 전철에 몸을 실음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로 국회상황을 시청 중, 나처럼 늦게라도 가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괜한 동질감 느낌ㅎ


3. 전철 타고 여의도로 이동할 때쯤 은 김건희 특검법은 결론이 났고, 탄핵 표결에서 다 떠난 국힘 의원들을 기다리는 순간이었음.. (김상욱이 돌아오고 할 때쯤)

많은 집회 참여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점이기도 했음 (커뮤니티 게시글에 추워서,, 부결될 듯한 분위기에 돌아간다는 글들이 올라왔었음)

여의도 역에 도착해서 내리는 순간, (국회의사당 역이 있는지 몰랐음….)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고, 계단으로도 많은 인파가 내려오고 있었음.

그들을 보며,, 아 추운 날씨에 참 고생 많으셨다.. 지금 오는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울 테니 돌아가서 쉬시라.. 선수교체다..


4. 많은 사람이 돌아가는 듯했지만, 여의도 역 출구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오니 여전히 수많은 인파가 국회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국회가 저 멀리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 아,, 여기서 국회를 가려면 여의도 공원 지나야하지? ㅎ 좀 걸어야겠군.


5. 여의도 공원으로 넘어가자 어떤 조형물? 위에 어떤 가방이 있었는데, 메모로 “집회하다 허기지면 드세요” 하며 간식을 담아 두었다.

마음이 참 감사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간식인지 궁금했으나, 나는 아내가 준 스니커즈 쵸코바 하나가 주머니에 있었기에 간식 나눔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집회 장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체중감량을 위한 식단 기간이기도 했으니?


6. 여의도 공원을 지나가며 많은 사람들과 교차되며 걸어갔다. 그들은 추위에 지친 모습이기도 했으나, 자기들이 떠나도 여전히 밀려오는 집회 참가자들의 인파를 보며 조금은 마음 편히 집으로 돌아갔으리라.


7. 집회 장소에 가까이 가니 앰프소리에 귀가 먹먹해져 더 가까이 갈까말까 고민이 되었다.

꼭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이 장소에서 하나의 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적당한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큰 그림에 픽셀 하나 채운다는 마음으로..


8. 촛불행동 여성진행자분이 쉬지 않고 구호를 선창하고 상황을 전달하고 계셨다,, 저분이 몇시부터 지금까지 하셨는지 모르겠으나, 헌신에 참 감사하다는 생각 들었다.


9. 걸어오면서도 보았지만, 집회 현장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응원봉이 다 모여 있었다. 나도 아이돌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도 늙은이가 된 건가.. GOD나 알아보겠고,,, ㅠㅠ


10. 진행자분의 휴식을 위해? 중간중간 노래만 틀어주기도 했는데,, 선곡이 정말,, 몸이 가만있게 하질 않는다.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 “바위처럼”같은 민중가요 부를 생각으로 왔는데,,, 슈퍼노바,, 데이식스, HOT 행복, BTS노래 등,, 여긴 흡사 콘서트장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런 집회였지? 어떻게들 알고 다 응원봉을 챙겼지? 아,, 여기서 또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듬.ㅠ


11. 서 있은지 한 시간 지났나?, 발도 좀 시려오고, 등 가방이 무겁다는 걸 느꼈다.

아, 챙겨온 핫팩이 있었지? 낮에 있었던 학교 행사를 외부에서 하면 학부모들에게 나눠주려고 챙겨온 핫팩이 있었는데, 집회 현장 가서 나눔을 해야지 하며 가방에 챙겨왔다.

그런데, 내향적인 내가 모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 우선 가방을 뒤적여보니 네임펜이 하나 나왔다. 핫팩 박스를 열고 안쪽에 “핫팩나눔”이라 쓰고 들고 서 있었다.

박스가 작기도 하고, 내 착장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꺼매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핫팩 나눠 드립니다” 라는 멘트를 해보았다. 한, 두명씩 와서 못 챙겼는데 고맙다 하며 가져가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3개 남았을 때 2개를 집어 가시며 고맙다는 인사 없이 그냥 슝 가는 사람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급한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핫팩을 다 나눠주니, 마음도 따듯해지고, 내 가방도 가벼워지고, 다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12. 집회 현장에서 배고픈데 주변 가게도 닫고 먹을 것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고민도 살짝 했었으나, 현장 도착하고 나서 그런 고민은 필요 없는 것이란 걸 알았다. 수많은 포장마차들이 자리잡고 이미 성업중이었다.

장사의 신들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그러지 않겠지만,, 포장마차 사장님도 같은 마음이라면 양심 있는 가격으로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격을 알아보진 않았다.. 식단 조절 잘하고 있는데 흔들릴 것 같아서….


13. 아내가 챙겨준 스니커즈와 준비한 커피를 다 마시며 저녁시간을 잘 버텼다.

9시가 넘어가니 생리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근처 빌딩 화장실 사용은 불가했다.

국회의사당 역이 있으니 역사 화장실을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안전의 이유로 오랜시간 정지해둔 듯했다. 엄청 많은 계단을 내려가서 역내로 들어가니 끝이 보이지 않는 화장실 줄이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 화장실 줄은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기도 하고 줄어드는 속도도 빠르다.

화장실 줄을 보며,, 화장실 이용이 이렇게 불편할 것을 알면서도 집회에 참여해준 여성 참여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법적으로 화장실 설계 시, 남자, 여자 화장실 면적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화장실의 면적이 같은 건 평등이지만, 여자화장실의 인당 이용시간, 1인당 필요 공간이 더 큰 점을 생각하면 여자화장실을 1.5배는 더 크게 설계해야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겠다는 생각.


14. 국회 상황은 나아질 조짐이 없고, 추운 날씨에 집회 참가자들은 계속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국회의장님이 기다리는 국민들을 위해 결단을 하셨다. 9시 20분까지만 기다리신다고.

그 시간이 지나고 결과는 의원수부족으로 불성립..


15. 국회의원, 그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대리인 자격으로 의원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과 당의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단체행동하는 모습이 영화 속 비겁, 찌질한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끝에는 비겁한 자들이 끝내 처단되지..


16. 결과는 나왔고, 나는 계속 걷다보니 국회 앞 대로 가까이까지 걸어왔다.

저 멀리 보이는 국회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가 깡패 같은 세력에게 유린되고, 당장 내일이라도 2차 계엄으로 저 국회가 다시 점령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2차 계엄을 대비하며 국회에 대기하고 있는 의원분들과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17. 집으로 돌아가려고 국회를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주최측에서도 집회의 종료를 알렸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산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흩어지며 간격이 벌어져서인지, 여의도 강바람이 더 매섭게 불어쳤다.

마치 내란수괴를 처단하지 못한 우리들을 채찍질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추웠다.. 왜 이렇게 국민들이 나와야 할 때는 항상 추울 때인가..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변화된 세상은 따듯한 봄이어야 하기에…


18. 이제 돌아간다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초2 아들이 기도중이었단다..

아빠 무사하게 돌아오게 해달라고.. ㅠ

계엄 다음날 아들 학교에서 계기수업이라고,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시간이 있는데, 그 수업시간에 계엄이 무엇인지, 예전 계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었는데 많이 무서웠었나보다.

그날 수업에서 계엄 이야기를 듣는데, 아빠는 어제 밤에 국회로 달려갔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하나님한테 아빠만 무사하게 돌려보내주면 크리스마스 선물은 안 받아도 된다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 듣고 얼마나 감동이던지.. (하지만 그 다음날 우리는 또 싸웠지..ㅠ)

아무튼, 걱정하는 아들에게 여기는 마치 콘서트장같다고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안심시켜주고 아들의 따듯한 마음을 안고 계속 걸었다.


19. 아들은,, 아빠가 계엄 당일 바로 튀어 나갔을거라 생각했지만, 계엄당시 나는 어떻게 해야 이 계엄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쏜살같이 뛰쳐나가신 시민분들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여기에서 지금가도 큰 도움이 되겠나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합리화하며 비겁하게 TV로만 지켜보고 있었다.

후에, 계엄 당일날 지체하지 않고 뛰쳐나가 주신 시민분들 덕분에 계엄해제가 가능했다는 평가를 보며 그날의 나의 주저함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아이에게 부끄러울 행동을 하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라 말하는데,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가.

앞으로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


20. 45년전, 지금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거리에서 싸워 주신 우리 부모님 세대가 다시 떠올랐다.

그때의 공포는 지금과 비교할 것도 아닌데,, 그때 싸워 주신 부모님 세대에게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다시 고개가 숙여졌다.


21. 지하철은 포기하고 어떻게든 버스를 타겠다는 생각으로 대방역까지 걸었다.

걷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두두두두 소리가 났다.

나는 이번 특전사가 타고 온 블랙호크 헬기를 운용하던 부대에서 근무해서 헬기 소리만 들으면 멈칫하고 하늘을 쳐다본다.

탄핵에 실패하고 돌아가는데 다시 헬기소리가 나니 온몸이 굳으며,, 2차 계엄이 시작인건가 하는 생각에 아찔해져오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동요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렇다,, 그건 헬기가 아니고 오도방구 마후라 소리였다.. ㅠ

헬기에 놀란가슴 오도방구보고 놀란다..

내란수괴,, 니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었어! 책임지고 내려와라!


22. 집에 무사, 안전히 돌아옴.

여의도에 따듯한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모래 한 알, 픽셀 하나의 역할을 쉬지 않고 하겠다는 다짐.

댓글 (1)

  • queensryche

    queensryche Lv.1

    24.12.09 · 14.♡.25.2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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