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본 계엄 실패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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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투고 칼럼이라 경어체가 아닌 것 양해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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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도 시민이다. 조국을 위해 무기를 드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 조지 패튼 장군 (1885-1945) -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시작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죽은 자의 피로 탄생하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성장해 왔다. 그리고 이제 사람으로 치면 안정감을 보여줘야 할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역사의 시간이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였다. 정치 계엄이 선포되고, 특수부대가 국회에 투입되고, 시민이 맨손으로 막아서는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중계되었다. 한 번의 총성이면 유혈 사태로 급변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극단적 임계 반응은 일어나지는 않았다. 치밀하게 작전을 수립하고 명령을 내린 작당 세력의 행태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긴 45년 전 과거의 정치 계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탄생 이후 성장한 신세대 장병에게는 시민 정신이 있었다.
현대 문명에서 대량 살인이 정당화되는 유일한 행위가 전쟁이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전문 집단이 군대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패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사람과 유사한 침팬지의 패싸움에서나 상대 집단의 새*까지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진다. 지능이 높기 때문에 복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우리 현생 인류는 원시 경쟁에서 가장 잔혹한 배타성을 투사해서 살아남은 호전적 집단의 후손이다. 문명이 시작되면서 폭력은 법과 제도로 통제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군대만은 원시적 집단 폭력의 잔혹성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경쟁은 국가 단위로 규모가 확장되었지만, 죽거나 죽이는 원시 집단의 경쟁 원리가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이다. 원시적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는 군대의 총구는 항상 외부를 향해야 한다.
적대적 대치 상황에서 사람이 죽기 시작하면 팽팽한 긴장의 인계선이 끊어진다. 그리고 인간성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혐오와 복수의 하강 나선이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폭력이 투사되기 시작한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는 탈인격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장병이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다. 명령에 의해 동기화된 집단 사고(group thinking)에 의한 살인이다. 이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명령이다. 서열과 명령에 대한 복종은 집단을 기반으로 진화한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원시 집단에서 구성원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생존 문제였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개체는 집단에서 퇴출되었다. 지금이야 다른 직장을 알아보면 되지만, 원시 시대에 집단에서의 퇴출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다른 집단의 평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명령에 따라 상대 집단을 철저히 말살해야 소속 집단에서 평가가 높아진다. 이는 적을 많이 죽일수록 훈장을 타고 진급하는 군대 문화에 반영되어 있다.
전쟁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한 군대를 최강이라 한다면, 과학적 관점에서 최강의 군대는 인체를 지키는 면역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는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 등등 온갖 미생물로 가득하다.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에도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가득하다. 항상 일정한 물리화학적 조건을 유지하는 항상성을 가진 인체 내부는, 병원성 미생물에게 최적의 증식 환경이다. 병원성 미생물은 인체에 침입해 감염에 성공할 기회를 끝없이 노린다. 병원성 미생물은 감염시키기 위해, 면역은 이를 막기 위해 오랜 시간 공진화(co-evolution) 해왔다. 인체의 면역에는 수억년 동안 병원체와 벌인 유전자 전쟁의 승리가 기록되어 있다.
면역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군대와 기능적 유사성이 드러나고 있다. 군대에는 보병, 정찰, 특수, 포병, 수색, 정보, 보급, 그리고 지휘 등등 전문 업무를 수행하는 다양한 병과가 있다. 면역에도 병과에 대응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분화 세포가 존재한다. 또한 작전을 수행할 때 지휘관과 장병의 통신이 중요한 것처럼, 면역의 지휘관 세포도 신호물질로 다른 세포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병원체를 제거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사실 면역이 군대를 닮은 것이 아니라, 군대가 면역을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과학을 통해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기능적 유사성은 집단을 기반으로 일어나는 진화에서 관찰되는 수렴 진화 현상이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 집단이 인체라면, 주권의 기본 단위인 국민 집단을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체나 국가나 전쟁에서 외부의 적과 전쟁에서 이겨야 지속이 가능하다.
외부의 적과 싸우기 위해 수렴 진화한 면역과 군대는 공통적으로 지휘관과 병사라는 이원체제를 지니고 있다. 지휘관은 작전을 명령하고 병사는 작전을 수행한다. 면역의 지휘관이 사라지는 병이 에이즈(AIDS)다. 원인 병원체인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는 면역을 통제하는 세포를 감염시켜 죽인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면역 지휘관 세포만 죽고, 기타 면역 세포와 다른 세포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병사와 무기는 모두 멀쩡한데 장교만 사라지는 셈이다. 혼란에 빠진 면역은 무력화되고 인체는 병원체의 배양소가 된다. 마찬가지로 군대도 지휘관이 중요하다. 하지만 군대의 지휘관은 장병의 집단 사고에 인격을 부여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병사들이 전투 상황에 매몰되면 적으로 규정된 대상은 말살의 대상이 된다. 이는 병사의 인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집단 사고의 탈인격화 때문이다.
군대나 면역이나 지휘관의 기본은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수십조에 육박하는 각양각색의 자기 세포들 사이에, 가뭄에 콩 나듯 박혀 있는 병원체를 신속하게 찾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만약 침입자를 인지하지 못하면 감염질환이 발생한다. 반대로 자신의 세포를 침입자로 착각해 공격하면 자가 면역질환이 발생한다. 정확한 피아 구분을 위해 면역의 지휘관이 될 면역 세포는 두 단계의 혹독한 검증을 거쳐 분화된다. 첫 단계는 자기 세포를 공격 대상으로 인식하는 위험한 지휘관 후보 세포들을 자살시켜 제거하는 음성 선택이다. 다음 단계는 침입자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양성 선택이다. 이 두 단계의 검증 과정에서 지휘관 후보 세포의 대부분이 탈락하고, 단 2퍼센트만 면역 전선에서 활동할 자격을 얻게 된다. 이것은 인체라는 세포 집단의 유지에 있어, 적에 대한 공격보다 자기 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다.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이 과학적으로 비정상이듯, 자기 시민을 공격하는 군대는 이성적으로 부조리하다. 자신도 시민인 장병에게 시민에게 총을 겨누라는 명령은 합리화가 불가능하다. 군대와 면역의 유사한 점이 아무리 많아도 군인은 사람이지 세포가 아니다. 면역에서는 지휘관 세포가 자신의 세포를 적으로 인지하고 공격 명령을 내리면, 병사 세포들은 자기 세포를 무지성으로 공격한다. 그 결과 루프스나 궤양성 대장염 등의 자가 면역 질환이 발병한다. 하지만 군인은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이며 자신의 행동에 합리적 이유가 필요하다. 아무리 하찮은 전쟁이라도 나름의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이는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의 사기가 명분의 합리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회에 들어 있는 국회의원은 자연인이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이다. 이런 국회를 대상으로 작전을 벌였다는 것은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는 명령을 내렸다는 의미다. 주동 세력은 이런 부조리한 명령을 부하 장병들이 수행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세대의 장병은 이런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명령 복종은 군인의 직업윤리다. 따라서 상관의 명령에 따른 나는 잘못이 없다.” 이 항변은 자신의 계급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다. 위에서 받은 명령을 아래로 전달하는 것이 충성이라면, 통신 혁명의 시대에 여러 단계의 계급을 거치면서 비효율적으로 명령이 전파될 이유가 없다. 계급 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부조리하거나 잘못된 명령을 걸러내는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명령은 군대를 좀 먹는다. 군의 통수권자는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에게 명령권을 부여한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이 임대인, 대통령은 임차인이다. 이런 소유권을 명확히 판단하는 도덕적 용기가 강한 군대를 만든다. 도덕적 용기는 한 사람이 동시에 지니기 어려운 성정이다. 따라서 계급이 낮으면 명령을 수행하는 용기가, 계급이 높아지면 명령을 판단하는 도덕성이 필요하다. 진급은 명령의 판단에 대한 책임도 커진다는 의미다. 명령의 전파 선상에 있는 지휘관은 명령의 합리성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아무런 고민 없이 명령만 수행하는 군대는, 지휘관이 아무리 많아도 우두머리 하나를 모시는 도적 떼거리나 다름없다.
우리 경제는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세계시장을 무대로 발전했다. 대한민국은 마지막 분단국으로, 우리만 뜨거웠던 냉전의 대리전은 70년이 넘도록 휴전 중이다. 세계 자유 시장을 움직이는 금융 자본주의의 특징은 수익의 불확실성 회피다. 따라서 마무리 되지 않은 전쟁의 불확실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에 전쟁 억지력을 증명할 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즉 우리에게 군대는 나라를 지키는 힘이자, 세계 시장에서 경제 활동하기 위한 보증서다. 지난해 우리나라 군사력은 세계 5위에 국방비는 세계 11위 수준이다. 이처럼 가성비 높은 군사력 유지의 비결 중 하나는 병역의 의무다. 모든 대한민국 남성은 군대를 경험했거나, 하고 있거나, 해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모여 세계 시장에서 수십년을 쌓아오던 경제적 신뢰도 이번 정치 계엄으로 박살났다.
이번 정치 계엄의 작당 세력은 부하 장병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부조리한 명령을 내렸다. 시민의 의무 복무로 유지되는 군대는 병사 수준이 시민 수준에 비례한다. 대한민국 징집 병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의미다. 과거 성공한 계엄에 동원된 장병은, 기계적으로 명령을 따르는 면역 세포처럼, 국민을 대상으로 작전을 무지성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동원된 장병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작전 명령에 태업하거나 불복하였다. 민주주의 탄생 이후 성장한 신세대의 시민정신 덕분이다. 이번 사태의 주모자와 부역자가 장병의 시민정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시대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둘러싼 환경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국민이 군인에게 월급을 주고 살인 무기를 사주는 것은 외부의 적과 맞서라는 것이지, 정치 도구로 쓰라는 것이 아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대를 동원하다 내전으로 연결되는 비극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정치 계엄을 한밤의 소동으로 여기는 것도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시대정신 결핍 증상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정치가 교착에 빠졌다고 군대를 동원한 행위는 바로 그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살인미수다. 이는 정치 행위의 선을 넘은 것이다. 아이들 놀이인 오징어 게임조차 금을 밟으면 아웃이 규칙이다. 우리 사회에 관용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먼저 무관용에 대한 무관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