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겨운 선결제 문화
박
박소희 (175.♡.17.194)
2024년 12월 15일 PM 05:12 · 수정됨(22:38)
조회 4,169 공감 0
죄 없는 아들과 딸의 주검 앞에서 광주는 함께 오열했고 또 연대했다. 염씨는 “오메, 그걸 우쩨 잊어. 엄마들이 전남도청에서 죄다 울고 있었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옥순(75)씨는 “다 학생들 편이 돼부렀지”라며 “우리도 셋방에 살았는데 1000원, 2000원씩 걷어서 4만원 하던 쌀 한 가마 사서 주먹밥을 만들었어”라고 했다.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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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놈시기
24.12.15 · 112.♡.18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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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랑마누하
24.12.15 · 116.♡.225.232
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문화 였네요. -
JJava
24.12.15 · 116.♡.70.94
나눔문화이죠.
선결재는 그 중 한 가지 방법이죠. - 사
사찰금지
24.12.15 · 121.♡.188.235
그 당시 광주는 먹고 입고 마시는 모든 것들을 다 나눴습니다.
그 정신을 특별히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이어져 오는걸 보고 참 놀라왔습니다. -
114mm3
24.12.15 · 121.♡.4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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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젠틀파파
24.12.15 · 211.♡.217.244
진짜 멋진 문화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깨깨몽
24.12.15 · 112.♡.217.132
동감합니다.
그 옛날에는 '접', '집강소' 같은 민주주의, 민의 기구가 있었고, 80년 광주의 경험 또한 큰 자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츄츄하이하이볼
24.12.15 · 172.♡.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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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기고양이
24.12.15 · 223.♡.95.18
조카에게 5월 광주를 얘기하며 어제 여의도에서 어른들께 받은 간식에 대해서도 알려줬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초등 3학년때의 경험을 기억하고 우리 문화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음 좋겠어요. - 1
15소년우주표류기
24.12.15 · 211.♡.39.61
당시 어른들이 국민학생들을 데모에 참여 못하게 하니 헌혈이라도 해달라고 했었죠.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아직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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