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64.♡.111.100)
2024년 4월 14일 PM 03:50 · 수정됨(04. 15. 17:57)
현 시각 코첼라에서 르세라핌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올라간 케이팝의 위상과 함께 제 눈에 띄었던 물병이 있습니다. 바로 르세라핌 멤버들이 사용하던 스탠리 텀블러였습니다. 아래 사진 오른쪽에 나온 스탠리 텀블러는 뛰어난 사용성/기능성과 견고함으로 유명해졌고 하입을 얻었습니다. 이 하입이라는 개념이 여기저기에 사용돼서 딱 잘라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보통 소비물품과 관련되는 경우 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고 물건이 품절을 겪을 정도가 돼서 리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경우, 하입을 얻었다고 합니다. 스탠리는 아래 사진 중 왼쪽 사진의 사건으로 인해 유명해지게 됩니다. 자동차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스탠리 텀블러는 멀쩡했고 내부의 커피와 얼음이 그대로 보존된 완벽한 보온성까지 입증했던 사건이었었습니다. 이 사연은 소셜미디어에 공유됐고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여기에 스탠리 텀블러는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한정판'을 발매했고 소셜미디어에서 생긴 하입을 바탕으로 가운데 사진과 같은 폭발적 판매와 품절이 이어졌습니다.

해당 물건의 인기와 하입을 보고 있으면 이해가면서도 잘 와닿지 않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분명 스탠리 텀블러는 우수한 텀블러입니다. 하지만 해당 텀블러가 시장의 다른 모든 제품을 압도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 디자인이 예쁘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정판으로 출시된 스탠리 텀블러의 디자인이나 색상이 경쟁제품 예티나 하이드로 플라스크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스탠리 텀블러가 가진 압도적 인기와 판매량은 '하입'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키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한정판' 텀블러는 일종의 하입을 만들었고 이를 보유한 사람을 어떤 '지위'에 위치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젊은 여성 소비자들은 스탠리 텀블러를 구입해서 인스타에 공유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의 지위--본인이 한 제품을 소비하고 보유함으로써 발생한--를 과시합니다.
이와 유사한 일이 올해 다시 한번 발생합니다. 그 주인공은 미국의 마트체인점 트레이더조에서 발매한 에코백입니다.

위 사진의 에코백은 특별한 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디자인이 심플하고 예쁘지만 크기도 다소 작고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도 아닙니다. 마트에서 쇼핑하고 나올 때 비닐봉지 대신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사용성을 가졌습니다. 가격도 3불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합니다. 애초에 트레이더조에서도 큰 인기를 기대하고 만든 제품이 아닙니다. 다만 해당 제품은 '한정판'입니다. 스탠리 텀블러처럼 소셜미디어 상에서 유명해지는 스토리도 없고 매우 뛰어난 기능성을 과시한 것도 아님에도 왠지 하입이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아래 스샷과 같은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3불까지 에코백은 수백불에 이르는 가격으로 리셀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런 기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할 수 있는 설명이라곤 '하입'을 전제로 하고, 소셜미디어에 해당 제품을 소유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즉, 스탠리 텀블러와 마찬가지로 해당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어떤 지위를 손에 넣었고 그것을 세상에 과시하는 게 그 동기라는 이야기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스탠리 텀블러와 달리 기능성 혹은 인상적인 스토리조차 없다는 겁니다. 트레이더조의 에코백은 그저 한정판과 하입만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 참 여러 생각이 듭니다. 소셜미디어에서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와 무엇을 가짐으로 해서 '어떤 지위'를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런 하입을 발생시키는 '한정판' 제품까지 말이죠. 이전에 '하입'을 발생시키던 대표적인 제품은 명품회사와 콜라보를 했던 운동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하입이란 개념이 일상 제품까지 넘어와서 3불짜리 제품이 수백달러가 되기도 합니다. 전통경제학에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비투스'의 개념과 연결해서 이해해보고 있는데, 이걸 설명하려면 또 긴 글이 되므로 다음에 기회가 되면 풀어보겠습니다.)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미국의 Z세대들이 바포폰(Dumb phone, 스마트폰에 반대된다는 의미로 과거 핸드폰을 생각하시면 됩니다)을 찾게 만드는 걸지도 모릅니다. 재밌는 건 이 바보폰 제품에도 하입이 껴있고 해당 제품이 가진 기능성에 비해서 매우 비싼 가격의 제품들이 출시되고 인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도 언제 기회가 되면 풀어보겠습니다.
아무튼 소위 한정판 제품을 중심으로 하입이 발생하고, 이 제품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이 어떤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소셜미디어에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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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min
24.04.14 · 27.♡.86.87
잘 읽었습니다 하입이 대체 뭘까요 마흔넘은 아저씨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저걸 왜 저 돈 주고?? - 수
수필
→ gmin 작성자
24.04.14 · 64.♡.111.100
하입이란 게 참 설명하기 힘듭니다. 한정판 조던을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하고 며칠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게 한국에서도 나타난지 오래 됐습니다. 해당 개념이 알고 싶으시면 XSFM의 HYPE편이 도움이 될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FDXyNMT_50 -
엔엔뜨
24.04.14 · 125.♡.47.14
저도 아비투스가 생각났는데
그 개념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 같아요.
sns가 그 확장에 기여한다 생각하고 있거든요.
생각해 볼만한 유익한 글이네요. - 수
수필
→ 엔뜨 작성자
24.04.14 · 64.♡.111.100
아비투스로 보면 이해가 쉽긴 합니다. 하지만 보통 아비투스를 얻기 위해 많은 양의 교육 혹은 문화가 뒷받침 돼야 하는데, 자본주의에서는 그 아비투스조차 돈으로 구매할 수 있고 인터넷에 과시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
엔엔뜨
→ 수필
24.04.14 · 125.♡.47.14
현사회는 그 많은 양의 교육, 문화가 다방면으로 보충되고 있고 말씀하셨듯이 자본으로 구 할 수있는 아비투스가 실제하기 때문에 사회가 진화하면서 현재에 이르렀고 지금 사회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근데 또 생각해보면 오래전 동서양 조상들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폭발적이 sns만 없었지
다 겪은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ㅎㅎㅎ
전 아비투스도 하입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셔서 덕분에 다양한 생각에 잠겨 볼 수있었네요.
고맙습니다{emo:onion-162.gif:50} - 수
수필
→ 엔뜨 작성자
24.04.14 · 64.♡.111.100
맞습니다. 인간에게 과시욕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을 테니까요.
문제는 SNS가 너무 폭발적이어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 같습니다. -
위위즈덤
24.04.14 · 211.♡.225.219
저 하입과 뉴진스의 하입보이는 무슨 관계입니꽈?? - 수
수필
→ 위즈덤 작성자
24.04.14 · 64.♡.111.100
하입이란 개념과 연결해서 보면 하입보이는 한정판 같은 초절정인기남 정도로 보면 될 겁니다 ㅎㅎ -
위위즈덤
→ 수필
24.04.14 · 211.♡.225.219
아하! {emo:onion-132.gif:50} -
FFatherland
24.04.14 · 253.♡.176.28
덕분에 하입이 뭔지 쉽게 알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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