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죄인 김옥균 효수형 사진 = 내란수괴 윤석열 일당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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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의 효수된 머리로
서소문 사거리에 걸림요 (하지만 배가 보이는걸로 보아 마포나루나 애오게 어디 아닌가 싶네요)
홍종우가 귀국 배안에서 직접쓴
대역부도옥균..
개인적으로 김옥균의 사상에도 전혀 동의 하지 않고
현재의 토착 왜구 선조 중에 하나가 대역부도옥균 이라 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김용현 등 악마같은 대역부도들은
반드시 효수를 해서 남대문이나 남산타워에 걸어야 한다고 봅니다.
본보기를 보여 줘야 합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돌을 던지게 해야 합니다.
김옥균은개명후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 정변에 적극 가담한 김옥균의 형제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모두 연좌죄를 물어 떼죽음을 당했다.
친아버지 김병태(金炳台)는 정변 한 달 뒤인1885년1월 체포되어 천안옥사에서 10년간 복역하다가, 도피 생활을 하던 아들 김옥균이 암살 당한 시신으로 돌아와 부관참시된 지 한 달 뒤 고종의 명에 따라1894년73세의 나이로교수형에 처해졌다.[14]동생 김각균(金珏均) 역시감옥에서 옥사하고 어머니는 음독자살했다.
여동생 김균은 죽은 것으로 위장해 겨우 몸만 피한 뒤[15]지방을 떠돌며 어렵게 살다 서천군 판교에서 1941년 사망할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아내 정경부인기계 유씨유치상(兪致庠)의 딸과 김옥균의 딸은 살아남았으나 노비가 되고 만다.[16]양아버지 김병기도연좌제로 체포되어사약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김옥균을파양해 연을 끊는 형식으로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리고 감옥에 수감되어 옥사한다. 김병기의 경우 허직이 정변과는 무관하니사면해달라고상소를 올렸음에도 고종은 거부했고, 결국 수감된지 7년 만에 감옥에서 옥사한다. 안동 김씨문중은 균 자항렬을 전부 규 자로 바꿔야 했다.
원두콩님의 댓글
얼마 안있어 조선의 대신들이
나라를 통채로 팔아먹고도 평생 떵떵거리고 잘 살았으니까요.
이 나라의 첫단추가 잘못 꿰어진 출발점이습니다.
유준님의 댓글
이러다가 내란범 복귀해서 내란수사자들 모조리 색출해 수감하고, 탄핵찬성자 색출해 고발하는 일이 발생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파키케팔로님의 댓글
시신은 조선으로 보내져 거열형 당한 뒤에 머리는 저잣거리에 내걸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