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높이 (117.♡.2.138)
2024년 4월 15일 AM 07:37 · 수정됨(08:12)
4월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4/3으로 시작해서 이젠 4/16까지.
이렇게 먹먹해지는 이유는, 비단 이 기간에 일어난 슬픈 일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충분히 애도했다면 이처럼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뭔가를 안고 살기에 무거운 것이겠죠.
애도는 이별과정
애도는 일종의 통과의례입니다. 그 과정을 충실하게 따를 때 응어리가 풀어지고, 마음에서 떠나보낼 준비가 되기 때문이죠. 이별이란게 헤어지면 끝나던가요? 그랬다면, 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 노래 가사가 생겨나지 않았겠죠. 얼굴 안보면 끝이 아니라 마음에서 보내줘야 끝나잖아요.
이별은 기억에서 지우는 게 아닙니다. 기억에서 지운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게 두려워 이별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기억에 넣어두되 항상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가끔씩 꺼내보는 것. 그게 이별이 아닐까요. 가끔씩이 점점 뜸해지면서 이별이 마무리되는 거고요.
그래서, 이별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억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시간 매듭
움베르토 에코는 '애도'같은 이벤트를 '시간 매듭'이라 표현했습니다. 그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지어놓은 매듭이란 의미입니다. 시간이란게 보이지 않는 거라서 밋밋한 밧줄처럼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줄다리기할 때 줄이 어느쪽으로 치우치는지 알아보기 어려운 것처럼요. 줄 가운데 매듭(혹은 표시)을 지어놓아야 어느쪽으로 치우치는지 가늠하기 쉽죠.
우리 마음은 달력으로 시간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건으로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애도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매듭입니다. 언제든 그 매듭을 보면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있겠죠. 잊지않으려 애쓸 필요가 적어집니다.
따라서, 애도는 이별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항상 생각하던 걸 가끔으로 그리고 어쩌다로 조금씩 바꾸어주는 장치죠.
애도하게 하라
어떤 분은 이런 걸 본능적으로 알고, 저같은 사람은 나이들어 깨닫습니다. 이제야 기념일이 이런 의미란 걸 알게되니까요. 그만큼 둔하고 인간미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인 건, 나이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점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애도를 막고, 유불리 때문에 슬픔과 이별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사람들. 이 큰 무거움을 어떻게 안고 살라고.
언제까지 리본을 달거냐고 못마땅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난떤다고 타박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분명한 건, 애도를 충분히 하게 두면, 리본을 다는 사람이 적어지고, 리본을 다는 기간도 짧아질 거란 사실입니다.
이별할 수 있게 하라
처절한 이별이 기억납니다. 김소월의 '초혼'입니다. '초혼'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의식이라죠. 혹시나 돌아가신 분이 자기 이름을 듣고 돌아올까싶어 마지막으로 부르는 거라는데. 정말 이별하기 싫어 몸부림치지만, 그 유별난 몸부림이 응어리를 풀어주고 이별을 가능하게 하게 할 거라 예상하게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 충분히 애도하게 하라. 그리하여 이별할 수 있게 하라!
(*납득할만한 진상규명과 적합한 처벌은 애도의 과정입니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김소월, '초혼' 중에서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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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빙덕
24.04.15 · 253.♡.137.170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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