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뽕들이 일제가 신분제 없앴다 하는 게 개소리인 이유
코미

Lv.1 코미 (160.♡.37.88)

2024년 4월 15일 AM 09:13 · 수정됨(10:12)

조회 1,057 공감 0

1. 한국의 신분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이미 폐지시킨 바 있는데 그건 고등학교 한국사와 수능 공부만 해도 암기하는 기초 중 기초 상식입니다. 그 갑오개혁이 일본 간섭 아니냐고 하는데, 갑오개혁 하던 당시 일본은 청나라와 싸우느라 대충 청나라와 남남 되란 큰 가이드 제시 말고 별달리 간섭을 못했어요. 그래서 동학농민운동 당시 폐정개혁안과 김홍집 등 개혁파의 주장이 담기죠. 오히려 일본군이 간섭하려 든 을미개혁은 여기서 후퇴한 부분이 많습니다.

2. 일제는 오히려 신분제를 은근슬적 이용하고 조장하는데 대표적인게 바로 백정에 대한 대우입니다. 신분증에 대놓고 도한이라고 적거나 붉은 점을 적거나 하는 등 음습하게 사람들에게 백정이라고 아웃팅시키고, 압제에 시달리는 당시 조선인들에게 분풀이 대상으로 백정을 들이밀었죠. 그래서 형평운동이 일어납니다. 참고로 일본은 아직도 부라쿠민이라고 저런 백정 같은 부류 사람들을 이지메하는 게 남아 있습니다.

 

저 두개 그냥 7차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중급 이상이면 다 아는 내용인데 여전히 개소리가 곳곳애서 나옵니다.

 

P.S

원님재판? 일본은 다이묘나 다이칸이 지 멋대로 재판했는데요. 애초에 사법과 행정이 분리되야 한다는 발상은 프랑스의 계몽사상이 발전하며 나온 거에요.

그리고 노비 비율이 50%란 것부터가 일방적인 주장이며...

일본은 아예 노예를 서양에 마구 팔아댔고 그것도 자국민이 대다수인데 그건 또 모르나봅니다.

댓글 (11)

  • 감말랭이

    감말랭이 Lv.1

    24.04.15 · 1.♡.101.49

    현대에도 지들끼리 알게 모르게 급을 나눠서 생각하는 나라에 무슨 신분제 타령이래요 ㅎㅎㅎㅎ
  • 민구니

    민구니 Lv.1

    24.04.15 · 58.♡.2.174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민초맛치약

    민초맛치약 Lv.1

    24.04.15 · 220.♡.229.172

    돈 없으면 아파도 참다 죽어야 한다라는 소리를 혈중 알코올 농도 제로 상태에서도 지껄이는 것들이 2찍이들입니다.

    늘 그렇듯 논리의 모순과 이중인격 없이는 2찍을 할 수 없습니다.
  • 왕사슴™

    왕사슴™ Lv.1

    24.04.15 · 252.♡.193.221

    귀족제도 유지 강화(조선인에 대한 작위 부여 등), 부라쿠민 차별만으로도 특수 계층이 분명히 존재했었는데 무신 소리랍니까? ㅎㅎ
  • 윤사모

    윤사모 Lv.1 → 왕사슴™

    24.04.15 · 124.♡.160.8

    지들이 열도내에서 못한 신분제 혁파를 조선에서 했다구요? 애초에 말이 안되는거죠. 지금도 일본은 대를 이어 의원직을 이어가는 사실상 영주가 많습니다. 국민성이 그런 상황에 저항감이 별로 없어요. 반면 대한민국은 지역구를 자녀가 물려받아 출마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죠. 우리 사회의 신분제 혁파는 동학혁명 등 자생적 평등운동의 산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일제가 슬그머니 숟가락 올리는 것은... 가소롭죠.
  • L

    LNV3 Lv.1

    24.04.15 · 125.♡.130.208

    일뽕은 정신병이 맞습니다
  • 케이건

    케이건 Lv.1

    24.04.15 · 168.♡.154.30

    일본 문물을 좋아할 수도 있죠.. 할 수도 있는데..그들이 절대 선이라고 믿는 것도 아니고
    역사마저 왜곡할 정도로 뽕에 차 있으면 안되지 말입니다.
  • 물고기왕런

    물고기왕런 Lv.1

    24.04.15 · 241.♡.134.144

    현대에도 불가촉 천민이 있는나라를 숭상하는 ㅂ들은 참 안타깝습니다
  • Gesserit

    Gesserit Lv.1

    24.04.15 · 125.♡.123.52

    법적으로는 갑오개혁으로 사라진 것이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래도록 유지되었죠. 공노비도 1804년엔가 혁파되었지만 여전히 각종 관청에서는 그런 역할을 맡던 사람들이 존재했고 서자 출신을 관직에 진출시키라고 임금이 수없이 명령을 내렸지만 그런 혜택을 받았던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고위 관직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서자 후손과 양반 후손의 결혼은 대대로 꿈도 못 꾸었고요. 사회 제도가 어느 한 순간에 뚝딱 개편되는 게 아니니까요. 이런 것은 소설 토지에도 잘 나오는 모습이고요.

    하여튼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옅여졌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이라는 압제 세력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존 양반은 잘해야 2등 국민이었기에 신분질서 와해가 가속되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조선시대 신분질서 영향은 생각보다 길게 유지되어서 해방 이후, 아니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시골에 가면 60년대, 70년대에도 옛날 노비와 다름 없는 고공살이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영남 어디에서는 자녀들 결혼 시키면서 족보 따지는 곳이 80년대, 90년대까지도 있었다고 하죠.
  • 비핏

    비핏 Lv.1 → Gesserit

    24.04.15 · 211.♡.219.221

    저도 성묘 가면 '니가 아기씨 손자구나.'하는 할머니가 있었죠. 할머니가 친정이 부자라 시집올때 데려온 몸종(?)이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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