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소수의 지배에 대해
월
월터 (121.♡.51.213)
2024년 12월 26일 PM 06:52 · 수정됨(12. 2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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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 하는가? 이지점이 지금 미국의 우경화와 한국의 우경화를 설명 할수 있는 핵심적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국은 미국을 통해 세계를 획일적으로 보는 왜곡에 깊게 빠져 있습니다.
미 건국자들이 헌법을 제정할 당시 참조할 수 있는 민주주의 모델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고 그들은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18세기의 문헌을 참고했고 시대적 한계와 인간적 오류를 분명히 자각 했습니다. 그러나 후대는 개혁을 이뤄 내지 못하고 아직도 제헌 헌법을 신성시 하고 있습니다. 그런 미국을 아직도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보는 시각은 한국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틀안에서만 자유가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익들이 입버릇 같이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정체 입니다. 전형적 시장 방임 자유주의자들의 사고방식 이며, 그들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 국가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미국은 유권자가 자동으로 등록 되지 않고 집적 선거권이 보장 되지 않습니다. 입법이 상원,하원 양원제의 바늘구멍을 통과해도 사법심사에서 가로 막힙니다. 더군다나 전 미국인에게 투표권을 보장하고 주정부하에 선거 감시기구를 만들려는 법안은 100년이 넘도록 매번 필리버스터에 가로 막혔습니다. 이것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반다수결주의 제도 입니다.
미국이 보통 선거에서 이겨도 승자독식 하도록 만드는 선거인단 제도에서 밀리면 국물도 없는 이유 입니다. 즉 공화당내 우익은 미국 여론과 상관없이 소수의 의원으로 다수의 미국인을 과잉 대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정치적 관행으로 만든 상원제도는 하원과 시민들이 수십년간 추진한 입법도 무력화 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한국에서는 보수정당에 의해 자행 되며 마치 우익 상원들이 하는 행위와 매우 흡사 하다는점을 지적 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권리와 다수의 지배를 동시에 보장하는 균형점 위에서만 지속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일시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회방하고 입법을 가로 막을때 민주주의는 심각히 위태로워 집니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압도적 표결과 무제한적 토론을 허용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제한 되어야 합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입법 회방을 막기 위해 헌법을 개정 했습니다. 이러한 예는 너무나도 많아서 열거 하기도 힘들지만 영국은 1881년, 호주 1905년, 캐나다 1913년에 토론 종결 규칙을 채택합니다. 패배를 인정 하지 않는 소수가 다수의 지배를 회방한다면 민주정은 지속될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법 심사제도는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 입니다. 대통령에게 임명된 비선출 권력이 다수를 억압하고 임명자가 죽어서도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세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필연적으로 모든 세대는 미래 세대의 손을 묶어 버리는 정치적 결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근대의 사법 체계는 19세기 군주적 헌법으로 확산되어 20세기에는 현대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립니다. 즉 왕과 귀족들이 설계한 제도들이 해체되는 시대입니다. 대중 다수의 지배를 강화하고 소수의 지배를 약화 시키고 폐지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성장 시킨 나라들은 20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에 20세기가 시작될 때보다 더 안정적이고 민주적이고 부유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21세기를 훌쩍 넘어서도 재왕적 소수의 권력만을 강화 시키고 있습니다. 친일 기득권의 자본 지배구조하에 내적 식민화된 사고 방식은 이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정치가 경제 효과로만 환원되는 도그마에 빠져 있습니다.
미국은 강력한 시민 운동과 공화주의자들이 연대하면서 동력을 내고 있지만 한국의 절대 왕정과 다를바 없는 세습 구조는 우경화의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 헌법을 작성한 국가입니다. 과거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미국의 헌법을 모델로 하여서 독립 하였고 의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19세기 말 부터 세계 대전을 거치는 동안 소수의 독점을 해체하기 위해 수 없이 헌법을 개정 합니다. 노르웨이 경우는 2세기의 기간동안 300회 이상의 입법을 통과 시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은 멈춰 있고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입법이 까다로운 국가가 되었습니다.
과거 폴란드는 하원 의원 200명 모두가 '모든 법안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장자크 루소는 이러한 리베룸 비토권을 "한 개인에 의한 소수의 독재"라고 했습니다. 반면 이를 옹호하는 세력은 이를 "자유의 특권"으로 정의 합니다.
그렇게 폴란드 정치는 리베룸 비토에서 멈춰서고 말았고 1720~1764년 동안 의회는 회기의 절반 가까이 개인적 거부권과 필리버스터로 인해 아무런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중단됩니다. 어떤 정부 사업도 국방 예산 조차도 마련하지 못한체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침략당한 뒤 폴란드는 한 세기가 넘도록 지도에서 지워 집니다.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 다시는 반복 되서는 안되는 역사지만 한국도 제6공화국의 한계에 역시 봉착 되어 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소수가 거듭 선출되고 0.1%의 기득권의 지배하에 다수가 갈려들어가며 지탱되는 사회는 18세기의 귀족정과 다를바 없습니다.
공적 자유는 제한되고 오로지 사익 추구의 자유만이 있을뿐 포장지만 다를뿐 입니다. 이런 체제 안에선 자유가 증대 되는 만큼 폭력도 증대합니다. 자유를 독점하려는 행정권력, 사법권력, 자본권력, 언론권력들의 싸움이 내전의 본질이며 이럴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군부는 언제나 소환되어 역사에 나타납니다.
한국 자본역시 친일 재벌들의 순환 자본 출자 구조하에 독과점 되어 있고, 대통령 직선제만 민주화 되었을 뿐입니다. 이들을 왕조로 모시는 언론, 기업이 대대손손 세습 받아 기득권을 누려 왔는데 누가 감히 정치, 사회적 개혁을 원할까요 그들은 절대로 시민 권력을 인정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무제한적 비토만을 행사 하며 정치를 경제의 식민지로 지속 시키기 위해 발악하고 있습니다.
규제 없는 무제한적 자유만이 부의 최대 증진을 가져 오고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자유 지상주의에서 깨어나기 위한 전국민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민주적 공화정이 아닌 독재의 독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유신의 망령을 모시는 지배자로 부터 벗어 나지 못한체, 방관자에서 공모자가 되고 주동자가 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습니다.
공적 자유를 포기한체 사적 자유만을 탐닉 하는 것이 허락된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댓가로 비싼 값을 치루는 자만이 특권을 누릴뿐 입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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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즈니랜드
24.12.27 · 45.♡.17.74
목소리 큰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루프홀입니다. -
월월터
→ 디즈니랜드 작성자
24.12.27 · 218.♡.172.133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체제에서도 있습니다 그것을 소수의 자유로만 누리면 독재이고 다수의 타협하에 분유하면 공화정이 됩니다
지금은 후기 자본주의를 넘어 신자본주의가 해체된 세계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여태 냉전시대의 도그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식으로는 미,일의 경제 식민지로 부터 벗어날수 없어요 즉, 한반도만의 공화정으로 나아가야만 진정한 자본주의가 실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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