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175.♡.217.150)
2024년 4월 15일 PM 12:27 · 수정됨(13:14)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1025164
저도 요번사태로 새롭게 안 사실인데,
ㅋㄹㅇ 이 사라지기전에 자료 복사 차원에서 갈무리해옵니다.
한때 애정했던 그곳이
왜, 어떻게 이지경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자료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하 펌글.
......
제목 : 적수네 얘기하시니... 클리앙은 그 반댑니다. 클리앙 역사?
작성자 : 42.195km
적수네라는 곳이 완장찬 것처럼 행동한 몇 몇 유저가 운영자를 공격(?)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취지로
클리앙도 그리 될까 걱정이란 요지의 글을 봤습니다.
그런 생각 하실 수 있지만요.
클리앙 역사를 아신다면, 그런 말씀 못하십니다.
적수네의 운영자와 오래된 회원의 관계와 클리앙의 그것은 완전히 반대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클리앙의 운영자와 오래된 유저 또는 운영자에 불만을 표했던 유저들이 어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아니 별 불만 표시 안했어도요.
클리앙은 1990년대 중반 팜이란 회사의 pda를 쓰는 사람들 모임인 케이퍽(케퍽으로도 많이 부릅니다.)이 뿌리입니다.
Korea Palm User Group의 약자 KPUG죠.
그런데 팜에서 os를 라이센스해서 같은 os를 쓰는 클론 제품들이 여러 회사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요새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여러 곳이듯.
소니가 이 시장에 뛰어들어 꽤 획기적인 걸 만들고 제품의 시리즈명을 프랑스말로 클리에라고 짓습니다.
클리에가 나오고 케퍽에 클리에 게시판이 신설됐는데, 클리에가 좀 특이한 기능이 많아 클리에 유저들이 클리에용 자료와 정보 공유가 불편함을 느끼고 별도 모임을 만들자란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어느날 cipher란 닉네임을 쓰는 이봉희란 사람이 싸이월드에 클리에 모임을 만들고 게시판에 이를 알립니다.
그가 어떤 대표성이 있어 만든 게 아닙니다. 어느 날 여러분 제가 싸이월드에 클리에 정보 교류할 곳을 만들었어요라며 케퍽과 비슷한 메뉴 구조의 싸이월드 페이지를 알린 것 뿐입니다.
그가 뭔 자료를 올리거나 정보를 공유하거나 강좌를 쓴 건 제 기억에 없습니다.
꽤 많은 고수가 그곳에 클리에와 팜에 대한 자료, 정보, 강좌를 올리고 이를 토대로 곧 웹페이지를 이봉희씨가 만듭니다.
클리에 유저 그룹처럼 이름 짓기보다.... 뭘 쓰는 사람을 뜻할 때 쓰는 표현으로 n을 클리에 뒤에 붙이자.
클리에가 불어니 영어식 클리엔이 아니라 불어식으로 클리앙이라 부르는 게 적당하니 클리앙이라고 하자.
게시판 구조는 친숙한 케퍽과 비슷하게 이런 게시판도 추가하자.
이거 다 당시 회원들이 토론해서 정한 겁니다.
.net이 붙은 건 케퍽과 해외 팜 유저 그룹들이 거의 다 나라명칭 첫 자 뒤에pug 붙이고.net 써서입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커뮤니티였던 싱가폴 모임이 spug.net이었듯이.
이 모든 논의는 유저들이 했고, 운영자는 자료, 정보, 분위기, 방향성에 대해선 하나도 한 게 없습니다.
타사이트보다 회원에 의한 자정작용과 운영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고요.
운영자가 처음 싸이월드 페이지와 웹 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했지만, 케퍽 시절 활발한 회원도 아니었고요.
IT쪽 인력이 많아 회원들이 사이트 운영 경험이나 커뮤니티 참여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초기 운영 시기 운영자의 여러 힘든 점에 대해 이해했고, 오랜동안 유저들이 운영자를 신뢰하고 보통 대장님으로 불렀습니다.
케퍽에서 운영자를 대장님으로 호칭한 전통을 따른 거기도 하고요.
비교적 고가의 pda 동호회여서 사실 케퍽 유저층을 볼 때 클리앙 운영자는 어린 축에 속했지만요.
클리앙이 이렇게 2001년인가 2002년인가 생겼고요.
운영자와 유저의 관계가 완전 박살난 건 2007년입니다. 클리앙 초기부터 있던 유저들은 1996~8년 무렵부터 케퍽 회원이었던 사람이 많고 클리앙 운영자보다 pda 사용이 오래됐을 겁니다.
몇 가지 억지에도 넘어가다가 운영자와 회원 사이가 2007년 벌어진 건, 운영자가 회원들을 강제 추방했기 때문입니다.
2007년에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이 붙은 대선이 그 해 말에 있었습니다.
당시 다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정치 얘기로 뜨거웠고 이는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른 곳보다 더 뜨겁진 않았습니다. 존대말이 정착되어 있고 이공계, 의료계 인력이 많아서.
pda 특성상 전자, IT를 비롯한 이공계가 많았고, 팜 os용 의학, 약학 사전 등 의학 자료 덕분에 의료인, 약사 비중이 비교적 높았습니다. 얼리 아답터 중에서도 얼리 아답터들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자유 게시판에서 논쟁이 붙자, 운영자는 이를 매우 우려했습니다.
지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물론 시끄러운 것 자체를 싫어하는 운영자 성향도 있지만 논쟁으로 인해 사이트의 성장에 문제가 올까란 걱정이었을 겁니다.
둘째는 소문이나 일부 사람들이 우려한 바, 이명박의 승리는 명확한 상태에서 이명박이 자신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한 커뮤니티를 제재할 거란 걱정입니다.
더 나아가 사이트 운영자에게 관리의 책임을 물어 형사 처벌, 사이트 폐쇄까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우려였죠.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사이트의 성장과 폐쇄,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자 결론적으로 사이트로 얻는 운영자의 향후 수익에 대한 걱정이었을 겁니다.
2007년 당시 회원수는 6~7만 가량이었고, 운영자 본인이 2009년에 시즌 2로 개편 계획 때 밝힌 바로는 9만 후반으로 10만 내외였고요.
2007년 사태를 저는 추방을 넘어 학살로 봅니다.
일부는 6개월, 1년, 2년, 3년, 10년 글, 댓글쓰기 제한을 당했지만, 대부분 영구 글, 댓글쓰기 제한을 당했고 단 한 차례의 댓글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 운영자에 우호적이었던 사람은 징계를 피하거나 경징계로 남겼습니다.
당시 운영자가 쓴 글에서 하루에 최소 30여 명, 많은 날은 이백 명을 넘게 영구 제명했는데, 그 방식이 무기한 글쓰기 및 댓글쓰기를 전혀 할 수 없도록 등급을 강등한 거였습니다.
논쟁글에 댓글 단 사람들까지 도매급으로 처리하곤 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최소한 천 명, 많으면 수 천 명이 당했을 겁니다.
이 학살이 본격적으로 행해지기전에 벌어진 일이 몇 몇 유저가 자유 게시판에서 정치 게시판을 독립 개설하자고 한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과열을 막고자 한 유저의 걱정과 정치글 꼴 보기 싫다는 유저 등 두 가지 유형의 유저의 생각이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운영자가 정치 게시판 분리를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 자유 게시판에 아주 조금의 정치 표현에도, 그리고 정치 게시판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징계가 남발되었죠.
징계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징계의 형평성도 없었습니다.
이 얘기도 해야 하나 싶지만, 제가 알기론 당시 정치 게시판 개설을 운영자에게 권유한 분이 이진행님일 겁니다.
여러분이 배리님으로 기억하실.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 넘어가던 시기 클리앙이 커지며 서버비가 부담(2007년이나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스럽던 때, 산업부 국장이셨던 그 분이 커뮤니티를 산업부에서 만든 사이트인 엔펀 내로 품으며 서버비 부담을 없애는 제안을 했습니다.
무분별한 광고와 홍보, 공구 등을 통한 형태는 운영자가 싫어했고(그래서 우린 그를 오랜동안 믿어왔던 거였죠.), 대안으로 적당했습니다.
나중에 엔펀과 결별할 때 결국 좋은 결말은 아닌데... 뭐 이건 여기서 줄이고.
아무튼 여러 우려로 대선 직후 동안만 정치 게시판 분리를 권유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계기로 운영자는 회원 추방을 해버린 거죠.
당시 회원 강등을 하면, 탈퇴도 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탈퇴가 되어도 그 주민 번호는 벤해서 다시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징계받은 회원이 아니지만, 클리앙이 그동안 운영자보다 회원의 자정 노력과 회원이 만든 컨텐트로 커온 곳이니
이 사태에 대한 불만과 항의의 표시로 클리앙의 글, 댓글을 다 지우고 탈퇴하고 싶다는 회원도 많았지만,
시스템 상 일괄 삭제할 방법이 없다고 운영자가 답해서 며칠씩 지우다 포기하고 탈퇴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제가 확인한 바로는 회원 아이디별로 글과 댓글을 일괄로 지우는 게 가능했습니다.
컨텐트 삭제를 운영자가 원하지 않은 건데, 거짓 답변을 한 거죠.
사실 이걸 해줬다면 강등된 회원들이 자신이 만든 컨텐트를 지워달라고 요구했을테고 그걸 들어주면 사이트로서는 타격이 컸을테니 핑계대고 자신도 할 수 없다고 한 거죠.
아무튼 이 사태 이후, 정치 게시판을 닫아버리고 자유 게시판에서 정치 얘기를 한동안 금지했습니다.
운영자에 대한 실망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벌어진 불합리한 일에 대해 논할 장을 만들자는 일부 회원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회원들이 독자적으로 시국광장이란 웹 사이트를 만듭니다.
징계 이후 대부분 떠나갔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분이 임시로 시국 게시판을 개설한 게 사이트화된 겁니다.
그 후 클리앙에서 정치 얘기, 불만 얘기하면 클리앙 회원들이 그 사람에게 시국광장으로 꺼지라고들 많이 하셨죠.
여러 상황을 고려할 수없었기에 그렇게 오해하실만 했습니다.
시국 광장 운영자는 시국 광장 회원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가 알기론 배리님이셨습니다.
징계 사태와 정치 게시판이 닫힌 후 막힌 정치 소통의 장을 생각하고 만든 페이지가 사람들 요구로 메뉴가 생기고 사이트가 된 거죠.
첫 개설 땐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끼셔서 정치 게시판 폐쇄 후 게시판을 하나 만드셨던 건데, 이게 사이트가 되면서 복잡한 심경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모여 이런 저런 의견을 개진하는데 자신이 폐쇄할 권리가 이미 없다고 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다른 분께 권한을 넘기려고 하셨고요.
여러 가지에 대해 후회하셨습니다.
배리님의 안타까운 사고를 접한 후 가끔 울적해지곤 합니다. 돌아가신 후 시국광장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3년 탈상 때까지 리본을 걸고 5주기를 지킨 사이틉니다.
배리님께는 여러 모로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다른 얘기 잠깐하면, 케퍽이 클리앙 독립 후 규모가 정체되다가 pda의 종말로 사이트가 기로에 서게 됩니다.
케퍽의 대장이었던 차정호씨가 2010년 아이폰 정보를 다루는 곳으로 바꾸려고 딱 한 번 향후 방향에 대해 의견 묻는 형식을 취하곤 결론도 없었는데, 케퍽 주소를 새로 만든 아이폰 커뮤니티 아이폰당으로 갑자기 리다이렉팅해버립니다.
케퍽주소를 치면 케퍽이 아니라 아이폰당으로 연결되는 거죠.
엄청난 짓이죠. 요식 행위로 물어보는 척 한 거죠.
그래서 그동안 추앙받던 차씨에게서 모두 등 돌리고 나와서 새로 만든 곳이 kpug.kr입니다.
이 때 차씨는 회원들이 이제 팜 관련 자료의 가치는 크지 않으니 자료실이라도 db를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아 새로운 케퍽은 약 15년에 달하는 역사가 사라진 채 시작하게 됩니다.
차씨는 커뮤니티의 글과 주소는 자신의 소유라는 입장이고 이건 회원의 글 삭제 요청을 시스템 핑계의 거짓말로 대응한 클리앙 운영자와 같은 시각입니다.
곧 차씨의 기존 케퍽은 망했습니다.
이 사태 후 모르는 사람은 케퍽 운영자를 욕하며 클리앙 운영자를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차씨의 선택이 잘못됐지만, 회원 학살한 클리앙 운영자도 만만치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케퍽은 사이트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었고, 클리앙은 성장하고 있었기에 최종 대처가 달랐지만 과정을 보면 둘 다 좋은 운영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둘 다 그동안 쌓여온 db를 쉽게 대하는 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역사이자 자부심이고 그 자첸데.
2009년 초겨울, 클리앙 운영자는 업체의 후원을 받아 마지막 정모이자 클리앙 사이트 개편(일명 시즌 2 프로젝트)과 사이트에 대한 여러 얘기를 발표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다시피 사이트 리뉴얼을 계획하며 이를 시즌 2라고 했고,
시즌 2 적용은 그 때 계획보다 몇 년이나 늦게 되었지만, 이 때 운영자의 얘기 중 몇 가지를 저는 주목했습니다.
당시 정모 사진이 얼마 전 다시 올라왔는데 ppt 중에서 2년 전 사태라는 짧은 문구가 있습니다.
이게 제가 말한 정치글로 시작한 운영자의 회원 학살 얘깁니다.
자신의 잘못은 얘기 안 했고, 정치 얘기 안하면 좋겠단 식으로 마무리했고요.
이 때 나온 얘기가 운영자의 징계가 불편부당하여 공정성이 의심되고 운영자의 가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문제글이 사태를 키우니, 회원 몇 명 이상 신고시 자동 블라인드 처리 등에 대해 구현 모습을 시연했죠.
나중에 시즌 2초기에 잠시 그렇게 하다 결국 다시 운영자의 가치 판단 전까진 냅두는 걸로 변경.
그리고 정모에서 정치 얘기 자체를 말자고 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명박 정부에서 커뮤니티에 대한 제재가 없자 어느 정도 정치글을 수용하는 게 회원 늘리고 사이트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을 거예요.
2007년 대선, 2008년 광우병 사태,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4대강, 2012년 대선 참 굵직한 게 많았죠.
그러면서 여기도 정치글에 관대해졌죠. 운영자가 관대한 게 아니고요.
그래도 여전히 타 커뮤니티에 비해 정치글 비중이 낮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정모에서 운영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2년 전 강등된 회원이 글쓰기도 재가입도 영구히 안 되는 것에 대해 구제할 생각에 대한 질문에
곧(그 때 계획은 한 달 여 후인) 내년 새해에 시즌 2가 열리면 이를 반영할 생각이라고요.
이것도 변명이었지만.
시스템 상 db였나 뭐가 꼬이는 문제를 핑계로 댔습니다. 거짓이었죠.
그 시절에는 주민번호를 직접 입력해서 가입했어서 주민번호를 막으면 탈퇴해도 재가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즌 2는 너무도 늦어 몇 년 후에야 도입됐고,
시즌 2가 늦어지니 주민번호 벤을 풀어 재가입이라도 하게 옛회원에게 인정 좀 베풀어달란 징계받지 않은 유저들의 요청엔 그 후에도 시스템 탓을 하고 몇 년 더 지나서야....
시즌 2에서 자유 게시판에서 자유를 빼고 모두의 공원으로 바꿉니다. 이건 지금도 이어지죠.
자유 게시판 명칭이 싫었던 거죠.
그리고 클리앙을 끌량 또는 클량으로 바꿔부르려고 했다가 유저가 따라주지 않아 거의 실패했습니다.
그 전에도 db를 일부씩 소실하곤 했지만 시즌 2 시작하며 그 전 자료와 정보들, 게시판들을 분리해서 사실상 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글에 포함된 사진 자료는 거의 다 볼 수 없어졌습니다.
부하와 새 게시판과의 호환 내세우며, 의견 수렴이나 차정호씨처럼 형식 상의 설문도 없이요.
클리앙의 역사, 회원들의 기록도 오늘 사이트 확장에 도움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었던 거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 이만 적으렵니다.
아무튼 클리앙 최대 흑역사는 회원 개개인의 사건, 사고가 아니라 운영자의 2007년 행동과 그 대처입니다.
2007년 사태 이후 사과, 반성, 대책이 없었습니다.
클리앙은 이제 20~30만명 정도 규모가 될 겁니다.
수익은 여러분이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회사들의 지출 항목에 대해 이해하신다면.
2009년 운영자가 정모에서 한 말을 기억합니다.
클리앙은 상업성을 띤, 자신의 개인 커뮤니티다.... 이 명제가 성립한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 알았습니다. 2007년 사태에 그가 2년이 지나도 왜 이리 고집을 부리고 있었는지.
2년간 제가 강등된 사람들에게 들은 어처구니없는 징계 과정과 제가 알아온 운영자는 이럴 사람이 아닌데란 의문이 풀렸고,
여러 사람이 그 후에도 미련을 갖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케퍽에 1998년부터 있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20년 가량의 케퍽과 15년 가량의 클리앙 얘깁니다.
.....
출처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1025164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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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nd
24.04.15 · 211.♡.99.61
100% 맞지는 않지만... 참고 할 만 한 것 같습니다... 현장을 지나온 ...1인.. -
찰찰스
→ wind 작성자
24.04.15 · 175.♡.217.150
헉, 현장에 계셨군요! ㄷㄷㄷ -
Rrumblekat
24.04.15 · 27.♡.85.44
이글 ㅋㄹㅇ에서 스크랩했던 글인데..하면서 보니 다모앙에 스크랩이 있었네요!
다시 스크랩합니다. 감사합니다. -
찰찰스
→ rumblekat 작성자
24.04.15 · 175.♡.217.150
아, 도움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 L
loveMom
24.04.15 · 245.♡.118.180
글 작성자 42.195km님 다모앙 왔어요 -
찰찰스
→ loveMom 작성자
24.04.15 · 175.♡.217.150
헉, 본인등판이시군요! - L
loveMom
→ 찰스
24.04.15 · 245.♡.118.180
네. 본의 아니게 타인 명의로 다중계정 사용은 인정, 사과했고 자숙 후 온다고 했구요. -
델델렐
24.04.15 · 125.♡.218.197
적수네동네는 엄청 오래간만에 듣네요. -
찰찰스
→ 델렐 작성자
24.04.15 · 175.♡.217.150
전 요번에 처음들었어요, -
델델렐
→ 찰스
24.04.15 · 125.♡.218.197
초창기 한창 리눅스 공부할때 자주 들렸던 사이트 라고 삼촌이 그러시네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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