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 여의도 유세 갔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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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홍성아재 118.♡.216.142
작성일 2024.12.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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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의도 집회를 갔을 때 가장 떠오른 건 1987년 11월 30일 김대중 대선 후보(그때는 떨어지고 10년 후에 대통령이 되셨죠)의 여의도 유세였습니다. 그 현장에 고3이었던 제가 있었거든요.^^

유세에 참석하게 된 건 사실 우연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학과를 먼저 정하고 시험을 보는 선지원 1세대입니다. 학력고사 점수를 받고 나서 장래희망과 상관 없이 학과를 점수에 맞춰가는 병폐를 없앤다며 시작한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30번 버스를 타고 대학에 가서 입학원서를 내고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마포 정류장에서 김대중 선생 유세로 사람이 너무 많아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진입할 수 없다는 거에요. 30번 버스를 타고 영등포에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저는 어쩔 수 없이 마포에서 내려 여의도를 횡단해 영등포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자연스레 유세에 결합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중학교 교감이셨던 외삼촌도 유세 보러 거기 와계셨다고 하더군요. 마포대교를 건너서 여의도 초입부터 영등포까지 유세 연설을 들으며 쭉 걸어갔습니다. 100만 인파가 모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모인 사람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정말 김대중 선생이 연설을 잘하시더군요. 저의 아버지가 1971년 나주비료 공장 다니실 때 나주에서 김대중 선생 연설을 듣고 엄청 팬이 되셨다고 해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구요. 뭐 하지만 1987년에 저는 투표권이 없었습니다. 투표권이 생긴 이후에는 다른 후보를 지지해서 전 한참 김대중 선생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때 다른 후보들도 여의도에서 유세를 했죠. 당시에는 예전에 비행장이었던 여의도 광장이 대체 비행장으로 쓰기 위해 텅 비워져 있어 사람 모이기에 최적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번 여의도 집회가 그 시절 유세 이후 사람들이 최대로 모인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여의도에 자전거 타러 무척 많이 왔었어요. 여의도 공원들 생기기 전에 고수부지에서도 놀고. 친구 아버님이 영등포 로타리에서 치과병원을 하셨기 때문에 거기에 들러 친구가 용돈을 타서 지금은 없어진 연흥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여의도까지 걸어가 자전거 타고 그랬죠. 김대중 선생 유세 이후 여의도에 놀러간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대학교 입학 한 다음에는 여의도에서 버스를 갈아탔기에 매일 지금의 환승센터에 들르기는 했지만 여의도를 돌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친구들과 종로나 신촌, 강남 가서 놀았죠. 여의도 집회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전 친구들과 걷던 길로 되돌아왔습니다. 친구 아버님 병원 있던 데도 돌아보구요. 이제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보다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때가 많습니다.^^

댓글 8 / 1 페이지

나백님의 댓글

작성자 나백 (210.♡.62.118)
작성일 어제 15:42
전날밤 학생회관서 이날 여의도에 뿌릴 후보단일화촉구 유인물 인쇄하던중 경찰진입소식에 빠져나오다 형사들에게 잡혀서 구속되고 빵에서 노태우당선 소식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머리밀고 재판정에서 욕하고 실형받고 대전교도소로...

홍성아재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홍성아재 (118.♡.216.142)
작성일 어제 16:49
@나백님에게 답글 고생 많으셨어요. 겨울 감방 살이가 보통 힘든 게 아닌데... 저도 안양교도소에서 겨울 나고 나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이 오면 몸이 알아서 몸살을 하더군요.

나백님의 댓글

작성자 나백 (210.♡.62.118)
작성일 어제 15:44
그시기에 구속자는 후보단일화 요구 투쟁하던 사람들..노동운동하던 사람들만...

RanomA님의 댓글

작성자 RanomA (125.♡.92.52)
작성일 어제 15:44
저 집회 이전에 보라매 공원에서의 집회도 100만 명 넘었다고 하죠. 그래서 그 이후로 보라매 공원도, 여의도 공원도 '저런 이유로 축소시켰다'라는 루머도 있었죠.

뭐 여의도에서는 곧바로 뒤에 김영삼, 노태우도 구름 인파를 몰고 오기는 했습니다. 물론 노태우야 돈으로 끌어모은 인파였지만요.(부산에서 하는 노태우 연설회에 가면 2만 원 준다길래 당시 공장 일당 3천 원인 저희 어머니도 가셨더랬죠. 월급의 1/3이니까요)

concept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concept (27.♡.3.4)
작성일 어제 15:51
@RanomA님에게 답글 노태우는 공무원, 직능단체를 총동원했죠.

홍성아재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홍성아재 (118.♡.216.142)
작성일 어제 16:50
@RanomA님에게 답글 제 기억에는 여의도 유세 이후에 보라매공원 유세가 있었습니다. 저희 둘째 누나가 거기 다녀왔었어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가 보라매공원과 가까워서 유세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납니다. 학력고사 시험 며칠 전이었습니다.

concept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concept (27.♡.3.4)
작성일 어제 15:55
제 아버지는 박정희와 맞붙은 1971년 7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 공원 유세를 회고하시면서 '그때 참 대단했었지' 하시곤 하셨죠.

국수나냉면님의 댓글

작성자 국수나냉면 (118.♡.95.242)
작성일 어제 16:24
술 취해서 여의도공원을 못빠져 나온 기억이 ㅜㅜ 아니 왜 그렇게 넓은거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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