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9.♡.53.225)
2024년 4월 16일 AM 05:12 · 수정됨(05:21)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왔던 날들을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짜를 꼭 찝어서 '이 날 뭐했는지 기억나?'라고 물어보면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날이 매우 특별한 게 아니라면요.
저는 입대일에 무얼 했는지 기억합니다. 그 전날 여자친구의 마지막 문자도 기억나고 애써 부대까지 오지 말라고 말렸던 마지막 통화도 기억납니다. 입대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데이트도 기억납니다. 입대일로부터 며칠 전이 그의 생일이었습니다. 케익 너머로 환하게 웃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하던 그 얼굴 표정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백일휴가도 전에 깨졌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이렇듯 아주 특정일자에 무엇을 했는지 하나하나 기억이 나려면 그 날의 기억이 아주 특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보고, 2014년 날짜 중 하나를 랜덤하게 찍어서 이 때 뭐했냐고 물어보면 당장 기억해내기 힘들 겁니다. 기록이나 사진을 좀 뒤져봐야 할 겁니다. 딱 하루를 제외하면 말이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그 날입니다.
학부 시절 받은 형벌로 인하여 대학원을 전전하며 여기저기 끼니를 의탁하며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와 매우 각별했던 선배가 그 날 점심을 사줬습니다. 매우 인기 좋은 서울 시내의 부대찌개집이었죠. 그 날도 사람이 북적북적 거렸고 우리는 부대찌개 2인분에 라면 사리를 2개 넣고 담소를 나누며 밥을 즐겁게 먹었습니다. 그 때 TV에서는, 아마 MBC로 기억합니다, 세월호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고 해경이 구조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던 뉴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나왔을 즈음 전원구조됐다던 소식, 거기에 덧붙였던 우리의 읊조림. 잘 됐네, 다행이다.
하지만 잘 되지도 다행이었던 일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봤던 전원구조 소식은 오보였고 세월호와 그 진실과 아이들은 바다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후에 보도로 쏟아지던 의혹들과 수상한 점들, 박근혜의 7시간, 구조현장에 접근하지 않던 해경, 가만히 있으라던 선내 방송, 음모론으로 퍼지던 인신 공양 등등. 정신이 없었습니다. 세월호 속보만 나오면 찾아봤지만 세월호를 다룬 어떤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보지 못했습니다. 뉴스에서는 그나마 이성을 찾을 수 있었지만 영화, 다큐는 제가 무너질 거 같았거든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충격이 그러했듯, 세월호는 제게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처럼 남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도 나가고, 세월호 리본도 가방에 달고 다니고, 성금도 약소하게나마 보내고, 무력하지만 힘을 보태려 애썼습니다. 박근혜가 내려가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10주기가 되도록 세월호는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으니까요.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이래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참사에 대응하는 매뉴얼도 사라졌고 그 비극이 10.29 참사로 나타났습니다. 시스템을 구축해놓으면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할 것이라는 제 믿음은 산산이 깨졌습니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운용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가끔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들고 다니는 에코백에는 아직도 노란 리본이 달려있습니다. 숙제가 끝나지 않았고 부채를 청산하지 못했으니까요. 그걸 본 친지분이 물어보더군요, 언제까지 달고 다닐 거냐구요. 그냥 계속 달고 다닐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어떤 사건은 영원히 기억에 남겨야만 합니다. 제겐 세월호가 그러합니다.
언제까지나 기억할 겁니다. 제 마음의 부채가 숙제가 끝나는 날까지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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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복
복스렌치복더나
24.04.16 · 255.♡.112.122
추천드려유 -
NNuRay
→ 복스렌치복더나
24.04.16 · 175.♡.13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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