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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말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기 만들어진 존재니깐.
이건 그런 내가 경험한 어느 날의 이야기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뭇잎 사이사이로 내려오고 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새파란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촘촘한 나뭇잎들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은 뜨겁고 눈부셨다. 내가 있는 곳은 울창한 것을 뛰어넘어 광활한 어느 숲속이다. 저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조차도 이 숲의 시작과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넓고 매우 넓은 곳이다.
이 숲에는 다른 나무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압도적으로 크고 굵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의 둘레는 30m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나무안에 자그마한 오두막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크다. 나무 중의 왕이 있다면 바로 이 나무가 아닐까.
그 나무 아래에는 누가 봐도 세월이 오래 지났다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 낡아버린 골렘 한 마리가 나무에 기대있다. 가동부가 여기저기 녹슬고 낡아버린 이 골렘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골렘은 죽어있지 않다. 골렘은 살아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지만, 골렘의 정신은 살아있다.
골렘은 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골렘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고개를 여기저기 움직이며 주위를 살펴본다. 하지만, 잠들기 전과 큰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알 수 없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나무도, 골렘만큼, 때로는 골렘보다 더 세월을 먹었다. 그들은 골렘이 잠들기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다.
골렘은 수백 년 전에 이 숲에 도착했다. 그리고 긴 잠에 빠졌고, 종종 다시 일어나서 광활한 숲이 제공해 주는 자연과 벗 삼아 놀다가 또다시 잠드는 것을 반복했다. 그 세월만 무려 수백 년이다.
골렘은 왜 이곳에 있는가?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렘이 이 숲에 찾아온 것도, 이 광활한 숲에서 유일한 이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잠든 것에도 이유가 있다.
‘분명히 이 나무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잊어버릴 수 없는 몸이니깐.
다만, 수없이 많고 많은 기억이 쌓이고 쌓인 결과, 이제는 어떠한 것을 기억해 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경우들도 종종 경험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숲속에서 오늘도 골렘인 나는 숲을 가로지르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 물소리와 지저귀는 작은 새들의 이야기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자연을 즐기다가 다시 잠들게 되겠지. 누군가가 나를 움직이게 해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골렘에게 있어서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깐 말이다.
부스럭-
그 소리는 내가 지난 수백 년간 들어왔던 작은 동물들이 내는 소리와는 상당히 다른 소리였다.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소리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익숙한 소리다. 그 소리는 곰처럼 이족 보행이 가능한 동물이 낼 수 있는 그 특유의 발소리지만, 이곳에는 곰은 없다.
수백 년도 이전에, 내가 이 숲속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도심에서는 어렵지 않게 듣곤 했다. 하지만, 이 울창한 숲속에는 간혹 길을 헤매고 들어온 늑대 정도나 있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큰 동물이라고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물 마시러 올 때 보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들은 이족보행을 하지 않는다. 이족보행이 가능한 동물들은 이 주변에 서식하지 않는다.
최소한, 지난 수백 년간은 그랬었다.
하지만-
빼곡한 나무들을 헤치고 나타난 그 소리의 주인은 작고 작은 여린 소녀였다.
불쌍하게도 길을 잃어버리고는 걷고 또 걷다 보니 이곳까지 도달한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끝을 알 수 없는 울창한 숲속까지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숨을 다해야 정상이다.
이 숲의 가장자리에는 분명하게도 커다란 동물들이 살고 있으니깐, 그들의 먹잇감이 되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추측이라 생각한다.
운 좋게도, 정말 운이 좋게도, 그들을 피해서 숲 안쪽에 도착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해도 목숨을 노리는 위험은 끝나지 않는다.
독사가, 독충이 있다. 노련한 사냥꾼들마저, 이 모든 위협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정말 운이 좋게도, 목숨을 노리는 치명적인 것들로부터 무사했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에는 순수하게 물리적인 문제가 있다.
한 달은 꼬박 걷고 또 걸어야 여기까지 올 수 있으리라.
걷고 자고 또 걸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물과 식량의 문제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언가에도 동등하게 찾아오게 된다. 물론 이 울창한 숲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해 주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냐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어디서 물을 구하는지, 무엇을 먹을 수 있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대로, 때로는 불을 이용해서 가열해서 섭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매우 매우 경험 많은 사냥꾼들이나 가능한 것. 이 작고 여린 소녀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저 소녀의 나지막이 내뱉은 한마디에, 내가 지금까지 해온 추측은 무의미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이여 있으라.”
마법이다. 수백 년은 훨씬 더 전에, 누군가와 여행을 다닐 때는 자주 들을 수 있었던 그 마법이다.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의 것이었더라…?’
생각나지 않는다.
소녀가 시전한 마법은 새하얀 빛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어두운 숲을 밝혀주었다.
그제야 나는 소녀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10살이나 되었을까? 상당히 앳된 얼굴이다. 누구나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귀엽고 이쁜 모습이다.
긴 은빛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은빛이라기에는 파란색 느낌이 강해 보인다. 아마, 시전한 마법의 새하얀 빛이 저 파란 느낌의 머리카락을 은빛에 가깝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새파란 하늘이나 짙은 바다의 색깔은 아니다. 은빛에 한없이 가까운 파란색이라고 해야 할까.
소녀는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 여기저기에 이미 굳어버린 검붉은 핏자국들이 그제야 보인다. 상처가 생긴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넘어진 수준은 아니다. 설령 어딘가의 절벽에서 뒹굴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처가 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그 흔적은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 피의 양, 그 색이었다. 마치 창에 찔린 것처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통스러웠으리라. 저 가냘픈 몸에 저런 상처를 입히다니, 내가 잠들어 있었던 그 사이에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 되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이미 이곳에만 수백 년은 있었으니깐.
“헤에? 이런 곳에 골렘이 있네?”
그 아이는 허리를 숙여서, 나와 눈을 맞춘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 아이의 등에 자그마한 새하얀 날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하얀 깃털로 뒤덮인 날개는, 좌우로 대칭이여야 될 텐데. 그 아이는 한쪽 날개만이 멀쩡했고, 다른 쪽의 날개는, 그 모습은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로 베여버린 모습이었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 마치 날카로운 창과 같은 것이 그 아이의 날개를 베어버리고, 몸을 꿰뚫었으리라는 것을.
얼마나 아팠을까?
아니, 그 전에 사람은 날개가 없다. 그렇기에 사람의 소원은 언제나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답은 어렵지 않았다.
천사다.
이 아이가 공격당한 이유는 모르지만 천사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비록 어린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날다가 이 숲에 떨어졌던, 아니면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이 숲으로 도망쳐 왔던, 마법도 쓸 줄 아는 이 작은 천사라면 분명히 어렵지 않게 광활한 이 숲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 추측은 단 한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세상에 천사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천사가 내 앞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나?’
모른다. 알 수 없다.
나는, 우주와 같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천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천사는 언제나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상상 속의 존재였으니깐 말이다.
“흠…? 이런 깊은 숲속에 왜 골렘이…? 게다가 꽤 수준 높은 골렘인걸? 하지만, 이 세월의 흔적은… 못해도 백 년 또는 그 이상은 되었겠다.”
소녀는 골렘의 여기저기에 나 있는 잡초 따위의 풀을 보며 추측했다. 그리고 골렘에 나 있는 잡초를 제거해 주기 시작한다. 볼품없이 여기저기 자라난 잡초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너를 만든 사람은, 분명히 대마법사라 불릴 자격이 있었을 거야. 지금도 너와 같은 수준의 골렘을 만드는 것은 아주 고위 마법사여야 가능할 테니까 말이지.”
소녀는 잡초를 뜯으면서 나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얼마 만에 만나는 사람인 걸까.
“너… 내 말 들리는 게 맞지? 고개 쪽은 움직일 수 있어 보이는데, 들린다면 고개를 끄덕거려 주겠어?”
얼마 만일까?
마지막으로 사람과 같은 고지능 포유류가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준 것이 얼마나 이전이었던 것일까?
그립지 않았다고 하면 분명한 거짓말이리라. 나는, 분명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대화를, 그 행위를, 그 순간을, 그 모든 것을 즐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으니깐.
“다행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서 말이야. 나도 이 숲에 들어온 지 좀 지났는데, 여기는 사냥꾼의 흔적조차 없을 정도로, 정말 자연 그대로의 곳이더라. 이야기할 상대방이 없어서 외로웠거든.”
그녀는 분명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체질이리라. 소녀는 한동안 이야기를 못 했던 것만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디선가 만난 다른 소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녀는 또 누구였더라… 뭔가 이유가 있었는데, 아직은 생각나지 않는다.
“있잖아… 너에게는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거니? 이곳에 있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걸?”
천사는, 그 아이는, 이제는 나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이야기했다.
“아, 아, 들리니…?”
내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이런 대화를 시도해 본 적도 수백 년 전이리라.
사실 나에게는 발성기관이라 불리는 것은 없다. 시각기관이라 불리는 것도 청각기관조차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고 들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으로도 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지만, 그렇지만 나는 가능하다. 세상이라 부르는 것이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한 것이 나였던 만큼, 세상의 것으로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해할 것은 없으리라.
“우왓? 골렘이 말할 수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골렘은 말할 수 없는 모양이다. 소녀는 매우 놀란 나머지, 뒷걸음을 치다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난 그녀는 나를 경계한다.
“너… 정체가 뭐니? 골렘이 말하다니. 들어본 적이… 아니, 있긴 한데… 분명히, 옛날이야기에서… 설마… 혹시…?”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전설 속의 그 대마법사와 함께한 골렘이 바로 너니?”
“…?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어. 난 처음부터 골렘은 아니었으니깐.”
지금의 나는 골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애초에 골렘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 누군가가 나를 골렘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누구였더라? 뭔가 아련한 느낌마저 드는데, 기억날 듯하면서 기억나지 않는다.
“아…? 기억나지 않는가 보구나. 하긴 이렇게 오래된 상태라면…”
세월의 흔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소녀에게 쉽게 설명할 방법은 없으니, 잠자코 있었다.
“좋아. 말할 수 있는 골렘이 있는 거야. 그저 그것뿐인 거지. 옛날이야기의 골렘이 너와 같은 것인지 아닌지도 사실 크게 중요하지는 않겠지. 잠시만 있어봐.”
경계를 푼 소녀는 다시 내 곁에 다가오더니 한동안 내 몸에 여전히 남아있는 잡초 따위를 마저 제거하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있겠어?”
팔을 들어본다.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를 들어본다.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는다.
오로지 고개만이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아… 아쉽네. 널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어.”
그녀가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을 텐데.
“응? 이유? 글쎄… 이 숲에서 당장 할 일도 없으니깐 말이지. 사실 어디 가야 하는 목적지 따위도 없어졌어. 혼자서 이 숲을 더 헤매고 싶을 생각도 없고 말이야. 같이 움직이면 좋지 않을까?”
소녀는 내 옆에 한참을 더 있을 모양이다.
“저기… 있잖아… 그런데, 네 이름은 뭐야?”
소녀가 나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내… 이름…?”
이름인가…
나를 만든 그 존재는, 나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나를 이름으로 불러준 적이 없다. 아니, 그때, 그 순간에 이름이라는 개념 자체가 있긴 했었는가? 모르겠다. 지금껏 수없이 같은 생각을 하고 또 해봤지만, 이것만큼은 여전히 기억해 낼 수 없었다.
“편한 대로 불러도 돼. 이름이라는 고유한 그 무언가는 나에게는 없으니깐.”
언제부터일까. 까마득히 오래전에 준비한 레퍼토리를 오늘 이 순간에도 써먹었다.
나와 만난 지성을 가진 것의 숫자만큼이나, 나는 다양하게 불려 왔다. 뭐라고 불리든 간에 ‘나’라는 성질 그 자체는 변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으로 불리곤 했다. 때로는 신을 대리하기도 했고, 때로는 악마를 대리하기도 했다.
“이름이 없구나…”
소녀가 지긋이 입술을 깨물며 이야기했다.
“너의 이름은? 그 모습, 나는 천사라고 생각하는데, 천사가 맞는 거야?”
이번에는 나의 질문이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지만, 나와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이름이 있었다.
“응? 난 11번 천사. 그냥 그게 전부야. 그렇게 불리었고, 그렇게 부르면 나였고, 모두 다 나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으니깐.”
11번 천사인가… 이름이라고 분류하기에는 뭔가 이상하지만,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면 그게 이름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숙자’, ‘말자’니, ‘개똥이’니, ‘대장장이의 둘째 아들’이니, 어딘가에서는 이름 취급을 하지 않는 것들도, 어딘가에서는 당당한 이름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쯤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깐,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그 천사의 표정은 울기 직전인 모습이다.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는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울음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는 모습이다.
나는 지금껏 셀 수 없이 많고 많은 울음을 봤었다. 울면 안되는 상황에서 우는 자도 있었고, 울어도 되는데 울음을 참는 자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봐왔다. 그런 나이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울고 싶으면 우는 것이 좋아. 제때 울지 못해서, 울고 싶은데 울음을 억지로 참아서 생긴 문제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봤었으니깐 말이야.”
그러자 그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이번에도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나에게 두 팔이 있었다면, 말없이 살포시 껴안아 주었을 것이다. 나에게 저 아이가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이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나는 그 무엇도 그 어떠한 도움도 되어줄 수 없다. 그러니깐 그저 이 아이를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나는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니깐, 잊을 수가 없으니깐.
그러니깐.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영원히 기록된다.
울고 있는 이 작은 천사의 모습.
천사를 멀리서 지켜보는 저 다람쥐 부부의 모습.
간만에 숲속에 재밌는 일이 있나 싶어서 찾아온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새의 모습.
단잠을 깨워서 성질을 내는 저 귀여운 올빼미의 모습.
도와줄까요? 말까요, 나설까요? 말까요? 고민하는 저 정령들의 모습.
부드럽게 어둠을 밝히고 있는 천사가 시전한 마법의 모습.
졸졸 흐르고 있는 작은 개천의 소리.
광활한 숲속이 만들어내는 쾌적하고 맑은 공기.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
내가 인지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빠짐없이, 그리고 영원히 기록된다.
나는 시간을 살아가는, 세월을 기록하는 여행자.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기록 장치.
나는 세상의 그 어떠한 것,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것.
나는 세상이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한 있을 수 없는 것,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이건 내가 경험한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 중의 특별한 것 없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그 경험을 당신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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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쯤 됩니다.
라노벨을 추구하지 말입니다...
피드백 받아봅니다.
삼진에바님의 댓글
무슨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부분을 삭제하는편이 나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