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60.♡.37.88)
2024년 4월 17일 PM 12:43 · 수정됨(15:17)

2차대전 당시 제4사단은 일본에서 “가장 형편없는 오합지졸”이라는 오명으로 유명했습니다. 원래 제4사단은 일본 육군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단 가운데 하나로, 1871년 10월에 창설된 오사카진대에서 시작하였습니다. 1888년 메이지 정부는 프로이센식 군제 개혁을 실시하면서 각 진대를 사단편제로 개편하였습니다. 오사카진대 또한 4개 연대(제8연대, 제9연대, 제10연대, 제20연대)로 구성된 제4사단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제4사단은 세이난 전쟁을 비롯한 메이지 덴노 시절 국내 반란 진압에서는 크게 활약했으나 러일전쟁에서 연전연패를 당하고 패주를 거듭하여 “또 졌는가, 제8연대”라고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군 수뇌부는 제4사단을 극도로 불신하여 오사카에 놔둔 채 단 한번도 전투에 출동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일본과 소련이 1938년 벌인 할힌골 전투에서는 전멸의 위기에 처한 제6군을 지원하기 위해 제2사단과 함께 출동했으나 수뇌부에서 일부러 미적거리며 전투가 끝날 때까지 출동을 지연시켰습니다. 덕분에 제2사단은 많은 손실을 입은 반면 제4사단은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습니다
제4사단이 주력으로 참전한 유일한 전투가 창사 전투였습니다. 초반에는 중화민국군의 후퇴로 순조롭게 진격하여 창사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직후 중화민국군의 반격을 받자 순식간에 와해되어 패주하였습니다. 전투명령만 받으면 갑자기 없던 병이 생겨 환자가 급증하고 싸우는 족족 연패하다보니 전선에서 완전히 따돌림당하는 부대가 되어 대본영은 마지못해 직속 관할부대로 배속시켰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943년 9월 타이의 방콕으로 이동하여 현지 치안과 수비 임무를 맡다 종전을 맞이하였습니다. 항복이 치욕이라며 할복 자결하던 여타 부대들과 달리 제4사단은 즉각 연합군에게 투항하였고 본국으로 귀국한 후 미군을 상대로 자판을 펼쳐 장사를 하였습니다. 제4사단 장병들의 평소 인사말은 “御身大切(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였죠.
물론 제4사단은 저런 소문 뿐만 아니라 싸울 때는 또 의외로 잘 싸웠지만, 당시 일본육군 수뇌부가 제4사단은 도시 출신자들로 구성된 연대라서 믿을수 없다고 폄하하던 시각이 대중에까지 퍼지면서 저런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특히 8연대와 9연대가 폐급이 많다보니 10연대와 20연대도 싸잡아 욕먹었다고...
P.S 이들의 전설적인 활약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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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퇴한옆집사장
24.04.17 · 125.♡.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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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eltant79
24.04.17 · 61.♡.152.147
.... 나름 군국주의와 거리가 먼 정상집단이었을지도요? - C
concept
24.04.17 · 1.♡.160.83
일본의 파쇼체제에 소극적으로 협력한 그나마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들 아닌가요. -
휘휘소
24.04.17 · 222.♡.36.148
아니, 요즘으로 따지자면 겉모습은 삐리~~해도 최고의 군대 아닙니까? ㄷㄷㄷㄷㄷ
사상자 0... 이건 귀하네요.
출세는 못해도, 편하고 오래사는 군이네요. -
Wwind
24.04.17 · 211.♡.99.61
이런 글 좋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역사를 바로 잡으려면 옆나라 역사도 잘 이해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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