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와 헌법재판관 문형배 이야기
느긋하게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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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7일 PM 10:38 · 수정됨(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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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선생님과 그 제자 문형배재판관님의 이 아름다운 스토리는 김주완기자님의 책 “줬으면 그만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문형배재판관님의 깜짝 생일파티 출연씬은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 “어른 김장하” 1부 초반 약 4분께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


문형배(1965~) 헌법재판관이 김장하 장학생이라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일찍이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차례 자신이 김장하 장학생이었음을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2019년 1월 16일 진주 시민사회가 비밀리에 준비한 김장하 선생 생신잔치에 장학생 대표로 초대받아 인사말을 올리기도 했다. 그때 나도 현장에 있었는데, 당시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김장하 선생 베푼 삶 따라 걷겠습니다" 


진주 시민사회 120명, 본인 모르게 생일잔치 마련 깜짝 감사표현••김 이사장 부끄럽지 않게 살 것" 


저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1986 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더니, 자기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단상에 불려 나간 문형배(53)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목이 메어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청중이 격려 박수를 보냈다. 잠시 뒤돌아서서 감정을 추스른 그가 말을 이었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있다면·· (다시 청중 박수)·•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강동옥 경남문화예술회관 관장이 나왔다. "선생님은 진주오광대 복원과 진주탈춤한마당, 진주민예총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셨고, 극단현장에도 전세금 3000만 원을 선뜻 내주셔서 지금의 현장아트홀이 있게 됐습니다." 


문 판사와 강 관장이 말한 선생님'은 김장하(75)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다.진주 남성당한약방 대표 한약업사이기도 하다.

16일 오후 7시 경남과학기술대 백주년기념관 아트홀에는 김장하 이사장에 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았거나 평소 그를 흠모해오던 사람들 120여 명이 알음알음으로 모였다. 사전에 전혀 공개되지 않은 모임이었다. 이날은 김장하 이사장의 생일이었다.

행사를 준비해온 홍창신 전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되돌아보면 우리는 한 번도 그분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한 적이 없다. 더 늦기 전에 그이와 따뜻한 시간을 갖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워낙 그 어른이 낯을 드러내거나 공치사를 싫어하시는 분이라 미리 알게 되면 못하게 할게 뻔해서 비밀리에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참석자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은밀히 연락을 받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 시각 김장하 이사장은 전혀 이 행사를 모른 채 가족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식사 후 사전에 주최측과 말을 맞춘 아들이 좋은 공연이 있다'며 행사장으로 아버지를 이끌었다.

오후 8시 20분 김 이사장이 가족과 함께 행사장에 들어서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무대 앞 벽에는 '김장하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이 내리 왔다. 이어 생일축하 케이크가 나왔고, 참석자들은 축가를 합창했다.


영상으로 선생님이 살아온 길을 관람한 참석자들은 노래패 맥박과 큰들의 축하공연과 전지원 양의 판소리 등을 함께 즐겼다.
이어 사회자인 윤성효 오마이뉴스 기자가 김 이사장에게 인사말을 청했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선생님, 고맙습니다"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무대 옆쪽에 있던 사람들은 큰절을 올렸다.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문을 연 김 이사장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부끄러운 게 많다"며 "앞으로 남은 세월은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놀이 큰들과 함께 노래 〈만남>을 합창하면서 행사를 마무리했다. 큰들 단원들은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스케치북에 쓴 여러 카드를 대목마다  펼쳐 보였다.
“선생님이 걸어오신 그 길, 저희도 따라 걷겠습니다."
"돈은 모아두면 똥이 된다."
"똥이 거름 되어 꽃이 피었습니다."
"여기 진주에 꽃이 피었습니다."
"진주사람 웃음꽃이 피었어요.
"선생님이 계셔 든든합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십시오"

”참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문형배 판사의 눈물로 시작된 행사는 모든 사람의 행복한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문 재판관은 경남권에서 오랫동안 판사로 재직했고, 나도 기자로서 그를 주목한 기간이 길었다. 앞에서도 잠시 등장했던 그 김훤주 기자가 법원 출입을 할 때 그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고, 나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형배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 쓰는 걸 양해해주길 바란다. 그만큼 오래 봐왔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그의 이력을 나열하려는 건 아니다. 그가 살아온 이력과 주요 판결은 이미 위키백과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그걸 참고하면 된다.



내가 보기에 문 재판관은 태도나 말투, 자세 등에서 느껴지는 풍모가 김장하 선생과 많이 닮았다. 늘 책을 가까이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는 모습도 같다. 다만 그는 선생과 달리 읽은 책에 대한 짧은 독후감을 블로그(hctps://favor15.distory.com)에 올리는데, 2006년부터 지금까지 쓴 독후감이 1330여 편에 이른다. 헌법재판관이 된 후에도 매월 4~5권의 책을 읽고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2015년 5월 그를 만나 저녁식사를 한 후 『풍운아 채현국』을 선물했는데, 며칠후 이 책 독후감도 올라왔다. 그의 독후감은 개괄-발췌-소감으로 구성되는데, 다음은 마지막 소감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자서전, 전기를 좋아한다. 그 속에 모든 장르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도 만화도 사도 사회도, 심리도 예술도 다 들어 있다. 채현국 선생의 인터뷰를 보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왕성한 책읽기를 눈여겨 보던 진주문고 여태훈 사장이 2019년 3월 7일 그를 초청해 '문학 속 재판'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당시 문형배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는 자신이 책을 많이 읽는 이유에 대해 무지, 무경험, 무소신 등 3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판사로 살아온 그의 궤적이 그냥 머리 좋고 공부 잘한 여느 판사와 달랐던 것은 이처럼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우려 노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앞서 김장하 선생이 '내가 배운 게 없으니 책이라도 읽을 수밖에"라고 대답한 것 과 상통한다.


그동안 언론은 그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했다는 이유로 '진보 성향의 판사 라고 많이 보도했지만, 내가 볼 때 그는 진보•보수를 떠나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이 그러했듯 이 편향적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상식과 합리마저 진보:좌파로 보였던 것이다.


그가 2011년 2월 창원지법 진주지원장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하동 출신으로 진주 대아고등학교를 나온 그가 진주를 비롯한 서부경남의 재판을 관할하는 사법기관장으로 돌아왔으니 금의환향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부임 후 김장하 선생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자 했으나 거절 당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도 블로그에 올렸는데, 삶을 바꾼 만남, 정 민 지음: 문학동네)이라는 책 독후감 마지막 소감 부분에 이렇게 썼다.

“나에게도 이런 스승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김장하 선생을 만난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선생의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다. 그분은 나에게 대학교까지 장학금을 주셨지만 내가 받은 것은 가르침이었다. (•·중략.•) 진주지원장으로 부임했으니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하여도 공직자와 식사하는 게 불편하다며 거절하는 분. 내 삶이 헛되지 않다면 그 이유는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즉 김장하 선생은 비록 자신의 장학생이더라도 직접 해당 지역 사법권을 관할하는 자리에 있는 동안 사적 만남은 부적절하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문형배 재판관은 결국 진주지원장 임무를 마치고 진주를 떠날 때에야 겨우 밥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선순환이 되면 공동체가 아름다워진다'라는 블로그 글 아래에 추기로 올라와 있다.


2012년 2월 인사발령이 나서 진주를 떠나기 전 식사 한 번 대접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은 또 거절하였습니다. 언제 다시 뵙겠느냐고 식사 한번 대접 못하고 떠나는 제 마음도 생각 좀 해주시라고 억지를 부려 겨우 승낙을 얻었고, 7000원짜리 해물탕을 한 그릇 대접했습니다.


이번 취재과정에서 엠비씨경남 차선영 (1977~) 작가가 문형배재판관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이 역시 거절당했다. 문 재판관이 문자로 보내온 거절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좋은 취지의 방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자료 중 저의 인사말에 김장하 선생님 관련 추억이 있습니다. 저의 블로그 중 선순환이 되면 공동체가 아름다워진다'에도 추억이 하나 실려있습니다. 선생님 생신 기념 경남과기대 영상에도 저의 추억이 실려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제가 부각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문형배 올림"


역시 문형배다웠다. 천생 김장하과였다.


2019년 3월 문형배 판사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받았다. 4월 9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는데, 후보자 모두발언을 김장하 선생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전략) 저는 1965년 경남 하동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낡은 교복과 교과서일망정 물려받을 친척이 있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교 4학년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업사로서 번 돈으로 명신고등학교를 건립하여 경상남도에 기증하였고 수백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형평운동기념사 업회, 진주오광대복원사업, 경상대학교 남명관 건립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 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법관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 동안 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 길을 찾는데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선생의 가르침대로 제가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 마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더라도 지금까지 간직해 온 저의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김정하 장학생답게 도덕성 문제에서 아무런 흠결이 나오지 않았고, 재산도 가장 적고 청렴한 공직 후보자로 드러나 화제가 됐다.다음은 백혜련 국회의원과 후보자의 질의응답.


* 백혜련 위원
여태까지 저희 몇 번의 청문회를 했지만 이렇게 암기해 가지고 인사말을 하는 후보자는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만큼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이고요.
도덕성과 관련해서는 정말 야당 위원님들이 하실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청문회를 했던 후보 중에서 가장 훌륭하지 않은가 그렇게 보입니다.
헌법재판관들 기본 평균 재산이 제가 보니까 한 20억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후보자 재산을 보니까 6억 7545만 원이에요. 이렇게 신고해서 만약 헌법재판관이 되신다면 가장 적은 재산을 가진 헌법재판관이 되실 것 같 은데, 그래도 27년 동안 법관생활 하셨는데 너무 과소한 것 아닌가.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최근 통계를 봤는데 평균 재산이 가구당 한 3억 남짓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재산은 한 4억 조금 못되는데요 •·····


* 백혜련 위원
신고하신 건 한 6억•••··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그건 아버지 재산이고요. 제 재산은 4억이 안 됩니다. 


* 백혜련 위원
아, 본인 재산은······ 그러니까 이건 직계존속 재산까지 포함한 금액이고.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예, 평균 재산을 좀 넘어선 것 같아서 제가 좀 반성하고 있습니다.


* 백혜련 위원
청문회를 하는 저희들이 오히려 좀 죄송한 느낌입니다.
이어 표창원 의원이 그렇게 청렴하게 살아온 이유를 묻자 후보자는 다시 김장하 선생 이야기로 답변한다. 


* 표창원 위원
우리 누구나 다른 사람의 흠결을 지적하는 것은 쉽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청렴 요구하는 것도 쉽고요. 그런데 문형배 후보자님은 계속 여야 위원들 다수가 말씀하시듯이 재산 형성 과정의 흠결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보유하고 계신 재산도 청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고요. 아파트 한채, 차량 하나, 예금 일정 부분 정도밖에 없고요. 그런 부분에서 일단 존경의말씀을 드리고.

어떻게 본다면 우리 고위공직자들이 입법부, 국회에도 48% 정도의 국회의원들이 다주택자로 확인이 되고 있고요. 최근에 장관 후보자들의 그런 부동산 문제로 국민들께 많은 우려를 끼쳐 드린 것도 있고요. 그런 가운데 본인스스로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재판하는 판사로서 철저하게 청렴 관리를 해오신 것은 높이 평가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저는 사실 김장하 선생이 안 계셨더라면 저는 판사가 못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가는 것은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것,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저는 살아왔습니다.

법조계에 만연한 전관예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면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에도 문 후보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 표창원 위원
전관예우에 대해서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한데 저나 일반 국민들께서 가지고 계신 기본적인 인식은 이런 겁니다. '사법농단이다' 그런 큰 단위 것은 제쳐 두고요. 왜 판사들께서 퇴직하신 이후에 대형 로펌에 가시느냐, 혹은 개업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1년 사이에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받으시느냐, 전관이 아닌 일반 판사들은 허덕허덕 대면서 사무실 운영비용 내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그게 단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전관예우의 현실 아니겠습니까? 동의하십니까?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예.


* 표창원 위원
그러면 지금까지는 청렴하게 살아오셨는데 앞으로 후보자께서는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나신 이후의 인생 설계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제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영리 목적의 변호사 개업 신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 표창원 위원
지금 약속을 해 주시는 겁니까?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예, 합니다.


* 표창원 위원
ユ 모범을 후배 판사들도, 후배 재판관들도 좀 따르셨으면 감사하겠고요.


급기야 이 대답을 들은 박지원 의원은 그의 노후를 걱정해주기까지 한다. 아마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장면은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 박지원 위원
거듭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해서 존경을 표합니다.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부끄럽습니다.


* 박지원 위원
그런데 후보자께서 헌법재판관이 끝나더라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변호사활동은 하지 않겠다'라고 하셨지요?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예.


* 박지원 위원
지금 부친 재산을 포함해서 후보자는 6억 7500만원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예, 맞습니다.


* 박지원 위원
부친 재산을 빼면 후보자 재산은 부인과 함께 4억입니다.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4억,예.


* 박지원 위원
이것 가지고 애들하고 먹고살겠어요, 일생?


* 헌법재판소재판관후보자 문형배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것은 시니어 법관 같은 그런  제도가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지원 위원
물론 연금도 타고 그러니까 그러시겠지요. 그렇지만 진짜 우리 사회에서 왜사법부 법관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일부 인사들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저는 우리 문형배 후보자만은 그 길을 가실 것 같아요, 과거의 경력을 보면 또 그렇게 삶을 보면.
그래서 제가 한번 국민들한테 재산 4억밖에 없는 헌법재판관도 임기가 끝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겠다 하는 것을 약속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컨펌하기 위해서 제가 질문드린 겁니다. 



물론 이런 문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진주문고 강연을 트집 잡은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를 초청한 여태훈 사장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은 것이다. 여기서도 김장하 선생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데, 기록삼아 옮겨두면 다음과 같다. 


* 장제원 위원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여태훈 씨 아세요?


장제원의 색깔들먹이기는 빤한 스토리라 생략.  



댓글 (4)

  • 버미파더 Lv.1

    25.01.27 · 217.♡.255.211

    그냥 존경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그 자체인 분이네요...
    세상이 썩어보여도 더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기둥들 중 하나시네요... 감사합니다.
  • 초코바

    초코바 Lv.1

    25.01.27 · 211.♡.99.184

    민주계열에 보내는 사람들의 시선에 돈이 많은 사람은 능력과 출신을 떠나 당연히 부적절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렸을 것이라는 부적절한 시선을 보냅니다.

    반대로 재산이 적으면 적은대로 그 사람의 능력을 폄하하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능력이 없으니 돈을 못 번 거 아니냐는 것이죠.

    반대로 저쪽은 고위공직자 출신이나 (사실 공무원 월급으로 그런 재산을 형성한다는게...) 전문지식인으로 많은 재산을 형성한다는거 자체를 높은 능력으로 봅니다.
    투기의혹과 편법증여같은건 뭐 그럴수도 있지라는 식이구요.

    참 세상 편하게 사는 족속들입다.
  • N

    Nalto Lv.1 → 초코바

    25.01.27 · 122.♡.32.25

    자신들이 그렇게 쉽고 편한 편법을 사용하는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것이죠.
    우리가 2찍을 이해 못 하듯, 그 들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겁니다.
  • PeterOtter

    PeterOtter Lv.1

    25.01.27 · 118.♡.83.226

    저도 얼마전에 알게되었는데 문 재판관님이 제 고등학교 11년 선배님이시더군요.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진주에 살면서 사진작가를 하고있는 친형과 김장하 선생님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됐는데, 위에서 언급된 생신잔치에 진주문고 사장님의 부탁으로 형도 그 자리에 가서 사진을 찍어 나중에 액자로 만들어 김 선생님께 드렸다더군요.
    그후 어느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를 드렸고, 당연히 스친 인연이라 기억을 못하시길래 그때 사진찍어드렸던 사람이라고 하니 고마웠다고 대답하셨다네요.
    세상 참 좁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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