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남학생들의 우경화 현상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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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남자 아이들의 우경화를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정리해볼 겸, 구속기소 기념 긴 글 남깁니다.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요인이 워낙 다양하여, 절대 '이 것 때문에 이렇다!'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제 경험과 주변 사례들을 기반으로 구축된 한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 미흡한 부분이 많겠습니다. 다만 이런 흐름으로 극우에 빠지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하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밝힙니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갈라치기라는 오해를 살까 사실 쓰기 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성별에 따른 차이를 분석 기반으로 삼고 있는데 누가 더 낫다 못하다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성별에 따라 어린 시절에 드러나는 성향차이라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새 아이들 참 귀합니다. 어느 시대이건 귀하지 않은 아이란 없습니다만, 좌절과 포기 등을 잘 겪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귀합니다. 간단히 말해 예전에는 가지고 싶어도 돈이 없어 포기하던 경험, 한정된 자원을 형제와 나눠야만 했던 경험, 지루함을 견뎌내야 했던 경험 같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경험할 소소한 시련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아이들이 하나나 둘이 대부분인지 꽤 오래됐고, 부모들의 마음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능하면 들어주는 편으로 허용적입니다. 할 수 있다면 많은 걸 해주고, 경험시켜주고, 아이를 세상의 나쁜 것들로부터 보호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부모의 당연한 소망 아니겠습니까. 저부터 그렇습니다.
다만 가정의 따뜻한 보호를 받던 아이가 학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자잘한 좌절과 포기, 양보, 갈등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게 아이들 입장에서 나름 큰 충격인데, 가정에서 경험해 본 일이 적어서 그런지 요새 아이들에게는 우리 때 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야 하네?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네? 놀고 싶은데 못 노네? 맛있는데 못 먹네?
간단하고 귀여운 문제가 발생하죠. 친구와 다툼도 생기고요.
여기서 성별에 따른 아주 작은 차이가 발생합니다.
아닌 아이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발달이 빠릅니다. 특히 언어 쪽에서는 여자아이들이 훨씬 말을 잘 하고, 의사표현도 확실합니다. 관계에 있어 눈치도 빠른 편입니다.
오죽하면 "엄마 아파"라고 아이에게 얘기하면, 여자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공감하고 남자아이들은 자기가 아팠던 경험을 얼마나 아팠는지 얘기하는 데 열중한다는 농담이 있겠습니까.
남자애와 여자애가 싸우면, 여자애들이 확실히 더 또박또박 자신의 입장을 잘 밝힙니다. 그게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반면에 남자애들은 두서없이 말하는 편이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여자애의 말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긴 합니다. 여자애 말이 진실이라도 남자애 입장에서는 딴에는 억울한 자기 변호가 있을 수 있고, 거짓말이라면 사실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모릅니다.
교실에서 '아주 조금' 떠들었는데, 여자애들이 자신을 이릅니다. 근데 방금 걔네들도 떠들었거든요. 억울합니다.
물론 여자애들이 말을 하던-떠들던 상황 및 내용이 남자아이가 떠들던 상황과 달라 정말 남자아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어린 마음에 '억울함'과 '답답함'이 남는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이 감정에만 집중해 주세요.
여자애들에 대한 '억울함'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여자애들만 예뻐해"가 됩니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게 아니지만, 한두번의- 혹은 세네번의- 아니라면 대여섯번의- 경험들이 이 판단에 크게 작용합니다. 우리가 어린시절 부모님께 섭섭했던 기억을 더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요.
일단 이렇게 인식하게 되면 생각이 점점 더 그 쪽으로 굴러갑니다.
사실 남자애들이 혼날 일이 좀더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위험한 모험을 좋아하는 남자의 본능같습니다. 눈치도 조금 부족합니다.
아이들이란 자신의 위험한 도전 때문에 혼났다는 건 까먹고, 우리반 남자애가 10번 혼날 때 여자애는 1번 혼났다는 걸 뇌리에 남기죠.
이렇게 아이들은 커가며, 중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를 맞이합니다. 성적표를 받아들게 되는 시기가 된 거죠.
귀한 우리 아이들은 기대를 받으며 자랍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와보니 성적에 대한 압박감은 생겼고, 열심히 하고 싶은데... 꼼꼼함과 계획성에서 또 약간 차이가 발생합니다.
딸 가진 부모는 학부모 상담 때 '아이의 교우관계'를 물어보고, 아들 가진 부모는 '애가...학교는 다니고 있나요'를 물어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1학년 1학기에 받은 상장이 학년 올라갈 때 사물함 구석에서 다 구겨진 채 나온다는 시기죠.
(물론 아닌 아이들도 당연히 있지만, 전반적인 성향 얘기라는 걸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수행평가를 칠 때, 여자애들은 비교적 준비를 잘 해옵니다. 일정도 알고 있고, 프린트물도 잘 챙기며, 글씨도 읽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남자 아이들은 까먹거나 놓치는 아이들도 있고, 구겨진 프린트를 가방 구석에서 발굴하기도 하며, 글씨가 해독이 필요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슬프지만요.
그렇다보니, 여학생들이 점수를 잘 챙겨가게 됩니다.
억울함이 계속 적립되어 가는데, 거기에 성적도 추가 되는거죠.
여기에서 몇몇 일부 남자애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여자들이 뭘 차별 받아. 남자가 오히려 더 차별 받는데."
여기서 잠시 다른 흐름의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사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려 중인 그 것.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게임, 또래집단 등 다양한 경로로 아이들은 그것들에 접점을 만들어 갑니다.
빠른 아이들은 훨씬 어릴 때 부터 단순히 재미있고 웃겨서 일베계열의 말투와 밈을 사용합니다. 정말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서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커뮤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친구에게 듣고 쓰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욕을 재미삼아 배웠듯이 그런 거죠. 친구들 사이에서 쓰는 자극적인 말은 나를 강해보이게 하고, 재미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가끔은, 다들 쓰는데 나만 안 쓰면 이상한 것 같아 쓰기도 합니다. 또래 집단은 중요하니까요.
그러다보니, 과격한 말투들에 대한 거부감 장벽이 좀 낮아지는 면도 있습니다. 극우계열 커뮤니티의 말투와 논조가 자극적이고 재미있고, 쿨해보이거든요.
여기서 다시 "여자들이 뭘 차별 받아. 남자가 오히려 더 차별 받는데."로 돌아옵니다. 극우계열 커뮤니티에 만발한 여성혐오에 후련한 느낌이 듭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인 거죠.
그 쪽 커뮤 특유의 혐오 정서는 제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분석하시는 분들이 많아, 저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시기 남자아이들이 구직 중인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면서- 본격적으로 남녀에 대한 역할 차이를 체감할 때가 아닌데 왜 이렇게 여혐-여가부 폐지에 몰입하지?라고 느끼셨다면 저는 이러한 흐름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10대, 나아가 20대가 된 10대였던 남자아이들이 밑도 끝도 없이 '여가부 폐지'를 원툴로 이야기 한 저변에는 이런 배경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 번 물꼬가 트이면 그 다음부터는 물이 쏟아지듯 빠져들어갑니다.
혐오란, 약자에 대한 공격은 자극적이고 재미있거든요. 약자는 사회가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 빌붙어 사는 존재가 되어 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강자처럼 이용하는 자'가 되고 '원래 누렸어야 할 것을 빼앗긴 나'는 그들에게 화를 내는 게 당연한 일이죠.
커뮤에 올려진 다른 사람의 글들은 그들만의 논리구조를 갖추는데, 허점이 많더라도 미숙한 아이들은 그 논리구조를 그대로 믿습니다. 아이가 신뢰하는 어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억울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곳'의 글은 믿고 따라도 되는 겁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정치와 사회에 관한 부분도 신뢰하는 거죠. 가짜 뉴스와 자료는 어른들도 구분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그걸 전문적이라 생각하고 믿는 겁니다. 식견을 넓혀 똑똑해지는 느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가 익숙해지면, 다른 것들도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커뮤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그 논리와 사상을 말하는 사람이 늘다보면, 한 번은 더 그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점점 우경화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대한 한쪽성별에 비판적이지 않게 써보려고 했는데,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 조금 걱정됩니다.
사실,
- 혼낼 때 대들어서 더 혼나는 남학생과, 앞에서는 수긍하니 덜 혼나는 여학생(뒤에서 불만을 말하긴 합니다만)
- 사춘기 이성에 대한 관심
- 여학생들이 우경화된 남학생들을 보며 민주쪽으로 가는 이유
- 감정을 특정한 프레임으로 포장하여 제공하여 아이들을 유혹하는 온라인 콘텐츠
등등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있지만 흐름상 생략한 부분도 있습니다.
곰곰히 고민해 봐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이 잘 안나오는 부분이긴 합니다. 말 그대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많고.
한 아이를 키우는 건 온 동네가...아니 국가가 다 영향을 미치니 한두가지 수정해 본다고 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역시. 극우 커뮤니티와 유튜브에 대한 손질만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들은 '쿨'한게 아니라 '찌질'해 보였으면 합니다.
열심히 '민주주의'와 '올바름'에 대해 가르치며 키워왔던 아이가 순식간에 극우 논리에 물들어서, 그걸 깨부수는데 고생하셨다는 한 교수님의 글을 보고 언제 한 번 써 봐야지 했던 생각 정리입니다.
제가 쓴 글 또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의 시각일 뿐입니다만, 아이가 왜 극우에 빠지는가, 10대 들은 왜 그런가-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문제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기쁘겠습니다.
함께 고민하다보면, 보다 나은 방법들이 찾아질거라 믿으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풍압님의 댓글의 댓글
그게 의외로 인성과 사회성을 함양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맞을 때는 나름 울적하고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형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네요.
췌장님의 댓글의 댓글
아기고양이님의 댓글

제 초딩 조카는 그래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유치원때는 가위바위보만 져도 울고 불고 난리였는데 지금은 지는 게 늘상 있는 일이라 이길 때도 질 때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자기의 한계를 알게 되기도 하고, 대충 보기에 쉬워보이는 일도 얼마나 어렵고 고된 훈련이 따라야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아직 여자 남자 갈라서 노는 나이인데 남자와 여자는 원래 다른 존재라고, 사람마다도 다 다르고 각자의 특성이 다르다고 틈나는대로 얘기해줍니다.
사춘기를 잘 넘기는 게 중요할텐데 다모앙에서도 보면 초딩들에겐 “너 윤석열!”이 최고의 욕이라는데 중딩때부터 흑화되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말씀하신대로 또래 집단의 영향이 가장 큰 사춘기 시기에 이상한 유튜브를 보는 게 멋지고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더 없이 찌질하다는 걸 아이들이 판단할 수 있게 어른들이 많이 도와줘야할 것 같습니다. 유해한 컨텐츠는 뭔가 조치들이 필요할 것 같구요.
췌장님의 댓글의 댓글
아기고양이님과 같은 어른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잘 크는 아이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기고양이님의 댓글의 댓글
글도 찾아읽고 육아 관련 유튜브도 보다보니 신체활동도 그렇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더라구요.
gsmini님의 댓글

췌장님의 댓글의 댓글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은 말씀처럼 혐오들을 멈추게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의꿈님의 댓글

그렇다면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남학생들이 피해의식 없이 자랄 수 있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다같이 할 필요가 있겠네요.
생각나는 대로 써보면 어릴 때 체육 교과과정을 크게 늘린다든지, 공동 수행평가를 통한 협력의 기회를 늘린다든지, 합창단과 같은 특별활동을 늘리는 것 등이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췌장님의 댓글의 댓글
정말 여러방면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이를 대체 어찌해야 할지...
스네이프님의 댓글

아이들이란 자신의 위험한 도전 때문에 혼났다는 건 까먹고, 우리반 남자애가 10번 혼날 때 여자애는 1번 혼났다는 걸 뇌리에 남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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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의 경험이 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문제상황을 하나하나 짚기에는 시간이 없고,
기질 탓인지 성적에서도 여학생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으니 노는 것 외에 학교에서 즐거운 경험이 많이 없다보니 피해의식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옳다고는 하지 못해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요.
췌장님의 댓글의 댓글
여러모로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세상이 좀 더 넓어지고 즐거운 경험이 더 많아진다면 피해의식도 어느 정도 희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췌장님의 댓글의 댓글
슬플 정도로 어려운 문제네요ㅠㅠ
희어늬님의 댓글
저 때는 문 밖을 나가면 항상 대기?타던 친구들 형 동생들이 있었고(납치!) 없으면, 학교 운동장 그도 아니면 오락실! 이라는 문화공간이 있었죠. 익명의 공간에서 활동이 주가 아니었어요. 밥은 친구집 옆집에서??
현재는 학원차가 대기타다가 픽업하고 그나마 문화 공간이 온라인 입니다? 딱히 주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죠(현피하쉴?)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유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줄어드니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