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집에서 거지에게 음식을 챙겨주지 않으면

Lv.1 아스트로라이너 (106.♡.3.174)

2025년 1월 29일 PM 07:44 · 수정됨(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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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질문을 퍼플렉시티에 물어보니 답이 이렇습니다. 

대감집에서 거지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지 않는 상황은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거지는 생존을 위해 의존할 자원이 부족했으며, 대감집 같은 상류층의 지원은 이들의 생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지원이 거부되면, 거지는 생존을 위해 절도나 폭력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물론 비할바는 아니지만 자칭 비명계라고 불리는 이들이 끝까지 분탕질할것 같아 정말 짜증이 너무 올라오네요. 그냥 싫은게 아니라 너무나도 싫으네요.

댓글 (4)

  • sinoon

    sinoon Lv.1

    25.01.29 · 59.♡.151.61

    거지는 구걸이라는 순종적인 행위라도 하지만 저것들은 앞뒤없이 협박질이죠
    그런짓하는건 동네 양아치들뿐이 없는데 양아치는 잡아서 치워야지 공존의 대상이 아닙니다 ㅋㅋ
  • 아스트로라이너 Lv.1 → sinoon 작성자

    25.01.29 · 106.♡.3.174

    그쵸 생존과 관련된 것과 비교하기 어렵겠네요. 대감집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런데 스멀스멀 나오는 사람들이 참 양심도 없고 생각도 없는것 같아서 너무 싫습니다.
  • 쟈나저씨

    쟈나저씨 Lv.1

    25.01.29 · 221.♡.152.50

    양아치가 삥 뜯는 걸 굳이 거지가 하는 행동으로 표현하자면 '(협박에 가까운) 강압적 구걸'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세이투미 Lv.1

    25.01.29 · 117.♡.80.26

    12대 300 년에 걸친,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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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양반으로서 과거는 보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는 일가의 곧은 마음가짐에 있다.
    벼슬을 하여 조정에 나아가면 당쟁에 휘말릴 우려도 있고
    탐욕을 부릴 우려도 있기 때문에 선조들이 철저하게 막았던 것이다.

    2. 재물을 모으되,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
    최부잣집은 만석 이상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당시 통상 70%대에 이르는 소작료를 관례로 했는데,
    남들 같이 받으면 만 석을 초과했기 때문에 소작료를 낮춰야 했다.
    대체적으로 소작료는 40% 이하로 받아
    소작인들은 최부잣집의 논이 늘어날수록 혜택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불어 기뻐했다고 한다.
    부도 지나치게 축적하면 재앙이 된다는 경계로써
    만 석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3. 찾아오는 과객은 귀천을 구분하지 말고 후하게 대접하라.
    최부잣집이 만석꾼이라는 소문이 조선팔도에 알려지면서
    영남을 오가는 과객들은 반드시 한 번씩은 들렸다가 갔다.
    하루에 머물 수 있는 과객 수용수가 일백 명이나 되었으나
    어떤 사람도 문전 박대를 당하지 않았다.
    대접을 후하게 받은 과객들은 최부잣집의 덕망을 칭송하고 다녀
    동학과 같은 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도 최부잣집은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최부잣집은 1년에 3천석의 쌀을 소비하였는데
    1천 석은 집안에서, 1천 석은 과객과 이웃을 위해 각각 사용했다.

    4.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부자가 되겠다는 이들은 사람이야 어찌 되든 시기를 보고
    값이 폭락할 때 물건을 사들이겠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심지어 기근이 들어 굶주림이 극심해지면
    쌀 한 말에 논 한마지기를 넘기는 사례도 빈번했다.
    그러나 최부잣집은 이러한 행동은 가진 사람의 도리가 아니요,
    양반의 처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금기로 정해 그 시대에 모범이 될 수 있었다.
    이 가훈 속에는 흉년에 논을 사면 원한을 사게 되어
    훗날 다시 원한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이치를 담고 있다. ​

    5. 가문에 시집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만석꾼의 부자가 며느리들에게 무명옷을 입게 하는 것은
    인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으나 며느리들은 가풍을 잘 지켰다.
    춘궁기에는 누구도 쌀밥을 먹지 않았다.
    그들은 은수저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부자라고 해도 철저하게 절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부잣집은 이웃의 고통을 모른척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웃에서 굶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쌀을 내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적선지가(積善之家)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부자들이 대부분 인색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은 어떤 면에서 부호라기보다 자선사업가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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