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호의 추억 *^^*..
달과바람

Lv.1 달과바람 (14.♡.23.97)

2025년 2월 2일 AM 02:41 · 수정됨(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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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호를 유튜브로 처음 봤다는 분이 계서서 아주 간혹 꺼내는 추억을 적어 봅니다.

 기차 이용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느림에도 불구하고 다시 타 보고 싶은 기차입니다.
 개인적으로 수인선 협궤열차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정겨운 기차였습니다.

 가장 느린 완행열차였죠.



 지금은 추억이 되어 버린 비둘기호를 처음 탄 것은 꼬꼬마시절이었습니다.
 소백산 골짜기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단양역에서 탔었죠.

 보통은 버스를 타고 다녔었는데요.
 다니는 길이 만만찮았습니다.
 그 당시에 비포장은 당연하고, 험한 급경사지를 구불구불 지나는 길이었죠.
 요즘이라면 산악지역 여행 유튜브에서나 볼 수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날따라 어머니께서는 버스가 못마땅하셨는지 기차 타고 가자 하셨죠.
 가장 가까운 단양역까지는 역시 험한 비포장길을 지나야 했습니다.

 조그만 단양역에서 시간표를 보시더니 '비둘기호'를 찾으신 겁니다.
 마침 곧 도착하는 기차였었죠.
 그날 이후로 추억 이야기를 할 때면 어머니께서 이름이 비둘기호니 통일호나 무궁화호보다 빠를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헌데, 도착한 객차에 올라 보니 통일호와 비슷한데 좌석 번호도 없고 아무 데나 앉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꽤 많아서 한동안 서서 가야 했고, 여기저기 곳곳에서 정차하면서 한 번 서면 한참 서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기차 타면 꼭 만나게 되는 복도를 지나다니는 간식 카트도 없었습니다.
 꼬꼬마였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게 신기했고 먹을거리를 나눠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주 젊으셨던 어머니께서는 엄청 지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동대구역까지 대략 너댓 시간을 타고 가야했거든요.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는 고속버스로 갈아탈 수 있는 동대구역에서 탈출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어린 시절에는 비둘기호를 타지 못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종종 지리한 비둘기호 탔던 이야기를 하곤 하셨죠.



 다시 비둘기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된 이후였습니다.

 청량리에서 춘천 가는 경춘선을 많이 탔는데, 주로 통일호를 이용했습니다.
 간이역 같은 작은 역에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비둘기호를 타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비둘기호나 통일호나 객차 분위기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기차가 달리는 중에도 승하차 계단에 앉거나 서서 바깥 풍경을 보거나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도 있어서 좋았죠.

 어느 해 마지막 날을 해운대에서 지새고 새해 첫날 첫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기 전 여명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이었습니다.
 서울로 가기 위해 해운대역에 가니 비둘기호가 보였습니다.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해운대에서 청량리까지 11시간 반인가 걸린다고 되어 있었는데 타 보고 싶어졌습니다.

 달랑 3량의 객차를 단 비둘기호는 부산에서 출발해 청량리까지 내륙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해운대역을 출발해 송정을 지나 해안을 달리는 동안 바다 위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죠.
 울산, 경주를 지나며 내륙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내륙을 달리는 비둘기호는 곳곳에서 다 섭니다.
 역사가 있는 간이역 뿐만 아니라, 여기가 역인가 싶은 곳에서도 섰습니다.

 어디에선가 다른 비둘기호 객와 합쳐져서 길어졌다가 또 어디선가 떨어져서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역에 한참 서서 더 빠른 다른 기차가 지나가기를 가만 서서 기다리기도 하는 기차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한적할 때면 그리 편하지 않은 각지고 초록색 천이 덮힌 벤치 모양 의자에 옆으로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속도도 아주 느려서 쇠사슬이 쳐진 객차 끝에 서면 천천히 멀어져가는 풍경이 영화 속 장면이나 그림 같습니다.
 겨울이라 내륙을 지날 때면 뻥 뚫린 객차 끝에 서서 흑백 영화를 보는 듯 했죠.
 선로 주변의 사람들과 웃으며 서로 손 흔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저녁이었죠.

 이 기차를 탄 이후로 비둘기호를 타고 전국 여행을 해 봐야겠다 했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비둘기호는 사라졌습니다.
 통일호로 바뀌기도 했지만, 그 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사라져 버렸죠.

 바쁘게 살아야 하는 동안 다 사라지고 이젠 정겨운 추억으로 남아 있네요.


*^^*..

댓글 (4)

  • 달짝지근

    달짝지근 Lv.1

    25.02.02 · 125.♡.218.23

    비둘기호가 느려서 그렇지 기차 여행으로만 치면 참 운치있고 낭만있죠
    저는 기차여행 패키지로 만들어서 주요 역에서 20분~30분 정차하면서 하루 풀로 여행을 하고 하차했다 다시 다음날 부터 이어지는 여행 패키지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싶더군요
    말 그대로 경치 감상과 지역 특산물 즐기는 정도의 여행 패키지죠 ^^
    휴가철 2박3일 정도의 국내여행 패키지로 멋지지 않을까요? 봄이나 가을에 참 멋질텐데~
  • 달과바람

    달과바람 Lv.1 → 달짝지근 작성자

    25.02.02 · 14.♡.23.97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요즘의 기차와는 전혀 다른 감성의 공간이었습니다.
    비둘기호 청량리-부산 노선 곳곳의 작은 역에 내려서 하루 씩 여행해 보는 꿈이었었죠. ^^
  • 노브렌

    노브렌 Lv.1

    25.02.02 · 14.♡.45.123

    청량리-춘천역 구간에 비둘기도 있었군요.
    제 초등학교 시절엔 통일호, 무궁화호 열차 두가지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두 열차 간 소음이나 좌석 편안함이나 무궁화가 너무 좋아서 통일호 왜 타나 싶었는데
    나름 기억해보면 통일호만의 분위기나 느낌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 달과바람

    달과바람 Lv.1 → 노브렌 작성자

    25.02.02 · 14.♡.23.97

    혹시나 해서 찾아 보니 경춘선 노선은 제가 타던 시절에도 이미 오래전에 비둘기가 운행종료 된 이후였네요.
    제가 탔던 건 모두 통일호였나 봅니다. ^^

    경춘선 통일호에는 대학생들이 많았죠.
    기타 들고 노래 부르는 이들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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