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조총을 만들려고 딸을 팔아넘긴 이유
南
南森町 (172.♡.206.201)
2024년 3월 30일 PM 04:45 · 수정됨(17:13)
조회 1,244 공감 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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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늘기억
24.03.30 · 172.♡.222.83
오늘도 남삼정님 덕분이 지식 1 습득입니다. -
코코미
→ 하늘기억 작성자
24.03.30 · 172.♡.206.201
듣기로는 그 딸을 기리는 제사 겸 축제가 지금도 다네가시마에서 열린다고 해요. -
하하늘기억
→ 코미
24.03.30 · 172.♡.222.175
찾아보니 다네가시마는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섬이고, 일본 우주센터가 여기에 있네요.
역시 권력에서 제일 멀어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나 봅니다. -
HHTTR
24.03.30 · 172.♡.207.138
원나라 시절이면 1300년대에 이미 중국하고 조선까지 나사 제조 기술이 전파된건데 1500년대까지 일본에 그 기술이 전파되지 않은 게 이상하군요. -
코코미
→ HTTR 작성자
24.03.30 · 162.♡.90.60
고려와 원나라는 사실상 연결되어 있어서 문화교류가 잦았는데, 그 원나라로 유럽과 이슬람 기술이 유입되면 바로 고려에도 퍼졌어요.
일본은 1543년까지 그런 유럽이나 이슬람계를 만날 기회가 없었죠. -
PPINECASTLE
24.03.30 · 172.♡.233.63
나중에 대포 내경 파는 작업할 때도 서양은 이미 증기기관이 나와서 강한 힘으로 기계를 이용해서 내경을 파내는데, 일본은 그 사이에 쇄국(물론 이것도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지만...)으로 제대로 된 기술을 들여올 수 없어서 수차를 이용해서 파냈습니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으면서 정교하게 내경 가공을 할 수 있었는데, 일본은 수차로 하므로 정밀하지도 않지만, 수차의 힘이 한계가 있어서 한 50여 일이 걸리면서도 내경이 정밀하게 가공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게 화승총에서는 그나마 손으로 해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었는데, 대포까지 가면 문제가 심각해서... 이런 부분만 봐도 기술적 취약성이 많이 드러납니다.
물론 저 일화는 딸을 팔아넘겼다기 보다는 딸을 이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지만(계약 사위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어차피 기술 부족이 문제이니까요. -
코코미
→ PINECASTLE 작성자
24.03.30 · 162.♡.90.60
그러다보니 일본에서 대포를 가장 적극적으로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조선과 유럽에서 가져온 대포 몇 문에 오오즈츠(대조총)을 썼다고 하더군요. 당시 기술로 자체제작이 가능한 게 오오즈츠나 소구경 불랑기포 정도였답니다. -
HHTTR
→ 코미
24.03.30 · 172.♡.211.126
임진왜란때 해전은 대포로 승부를 본건데 일본이 대구경 대포가 모자란채로 해전에 임해서 이순신장군한테 연전연패한것 보면 역시 군대는 기술입니다 - 볼
볼테리언
24.03.30 · 172.♡.210.84
과학 기술은 한 시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것의 효용은 경제와 정치에 의해 결정되죠. -
코코미
→ 볼테리언 작성자
24.03.30 · 162.♡.90.112
저 조총의 도입으로 서로 비등비등하던 다이묘 간 역학관계가 깨지고, 조총을 적극 받아들이고 보급할 수 있던 오다 노부가가에게 힘이 쏠리게 되죠.
반대로 조총을 적극 활용할 여건이 못 되던 다케다 신겐 등은 피눈물을 흘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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